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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마불사' 법칙 못 깬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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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대마불사' 법칙 못 깬 구조조정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구조조정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정부가 8일 조선·해운 등 한계산업 구조조정과 소요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우선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총 1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가 조성되고 이와 별도로 정부는 1조원을 직접 출자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는 10조 35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이행하기로 했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등 조선업 및 유관산업에 대한 다양한 고용지원방안도 마련된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지만 몇 가지 점에서 중대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시장논리가 배제됐다. 조선업의 위기는 중국의 거센 도전 속에서 과거 7~8년간 국내 산업의 과잉공급이 원인이었다. 때문에 시장논리에 따라 좀비기업을 퇴출하는 강력한 구조조정이 단행돼야 산업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데, 정리가 결정된 곳은 STX조선 1곳에 불과하다.

    업계 내부에서는 "M&A방식도 대책에서 빠져있고, 대우조선해양의 방위사업 부문을 떼어내 현대나 삼성에 통합하는 사업별 통폐합 방식도 제외된 채 자구계획안에 너무 초점이 맞춰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운업의 경우도 용선료 협상이나 해운동맹 가입 등 개별 이슈에 매몰돼 기업의 생사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정치논리와 온정주의, 그리고 근본적인 수술보다는 급한 불만 끄고 보자는 심리가 결합된 결과다. 이러다보니 큰 기업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법칙이 또다시 입증됐다.

    STX조선은 그동안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법정관리의 수순을 밟게 돼 자율협약의 효용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회생가능성이 낮은 기업을 연명토록 함으로써 구조조정의 적기도 놓치고 부실규모를 키운 우를 범한 것이다.

    빅3 조선사에 대한 은행권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는 50조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이 22조 8천억원으로 가장 많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에 4조2천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이번 대책에도 회생에 방점이 찍혔다. 대마불사다. 회생하면 다행이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를 허공에 날릴 수 있다.

    둘째,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이번 대책은 민간기업의 부실을 혈세로 메운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부실대출로 국책은행마저 부실해지자 정부는 보유중인 공기업 주식을 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하고, 한국은행은 대출방식으로 자본확충펀드에 참여하기로 했다. 나라 살림에 쓰여야 할 돈이 결과적으로 민간기업의 부실을 메우는데 투입되고 중앙은행은 발권력까지 동원함으로써 추후 손실이 발생한다면 부담은 최종적으로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셋째, 정부의 이날 발표에는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빠졌다. 업계의 고통분담, 국책은행의 철저한 자구계획은 거론됐지만, 제때 메스를 가하지 못한 정책결정권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언론인터뷰에서 "대우조선 4조2천억원 지원은 청와대와 정부가 결정했다"며 관치금융의 실상을 낱낱이 증언한 바 있다.

    관치금융과 정치논리는 작은 부실은 큰 부실로 키웠다. 이 때문에 이번 대책발표가 "기재부와 금융위, 청와대 등 의사결정권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주인없는 부실기업과 국책은행이 낙하산들의 놀이터였다면 댓가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 기왕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다면 부실을 초래한 배경을 밝히고 관련자들에 대해 책임을 추궁해야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구조조정 실패와 관련해 정부와 국책은행 전현직 임원들이 벌써부터 책임 떠넘기기에 나선 조짐도 보인다. 감사원 감사와 국회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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