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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의 '배신론'이 유승민의 '정의론'에 완패 당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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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대통령의 '배신론'이 유승민의 '정의론'에 완패 당한 전투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시속 100km로 달리는 전차의 기관사가 앞쪽 선로에서 작업 중인 다섯 명의 노동자를 발견했다. 그대로 달리면 다섯 명의 노동자는 전차에 치어 죽는다. 그때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비상 선로가 눈에 들어왔다. 그쪽 선로에서는 마침 한 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이었다.

    그대로 달리면 다섯 명의 노동자가 죽지만 비상선로로 방향을 돌리면 한 명의 노동자만 죽는다. 기관사는 혹독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과연 어느 쪽이 정의로운 선택일까.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이 던진 '정의'에 관한 질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다섯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다. 다수의 법칙을 정의라고 믿는 '공리주의'적 사고다. 반대로 다수에 속하지 않은 소수의 목소리도 존중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믿는 '자유주의'가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섯 사람의 목숨을 건졌다고 해서 만인이 행복할 수 있을까?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희생양이 된 한 사람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부분에 이르면 '정의'는 딜레마에 빠진다.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킨 기관사의 판단이 정말 정의로운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유승민 의원이 지난달 23일 저녁 대구 동구 화랑로 자신의 의원 사무실에서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유승민 의원은 지난달 23일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정의'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배신자'로 낙인찍힌 동지들에 대해 공정하지 않은 룰을 적용해 광야로 내쫓으려는 수작에 대한 지적이었다. 그리고 끝내 홀로 섰다. 유 의원은 비상 선로 위의 한 사람이 '배신자'로 찍힌 자신이라고 확신한다. 달리는 전차의 기관사는 이한구 공천위원장이지만, 그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전차의 오너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짐작한다. 기관사는 '진실한 사람'으로 상징되는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배신자'로 찍힌 자신이 서 있는 선로 쪽으로 전차의 방향을 돌린 거라고, 유 의원은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선로 위를 달리는 전차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사실에 공감하리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다섯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희생되는 것이 낮다는 보편적인 인식을 믿었기 때문이다. '진박'을 국회에 입성시키기 위해서는 '배신자'는 희생되어도 무방하다는 논리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속지 않았다. '기관사 딜레마'의 배경을 알고 있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무서운 노림수까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는 본래 '정의'가 없었다는 것과 이한구 기관사는 처음부터 두 갈래 선로 앞에서 어느 방향을 선택할지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는 것 까지도 안다. 왜냐하면 이미 가야할 선로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정의'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배신자 심판론'과 '진실한 사람을 국회로 보내 달라'는 호소는 국민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주지 못했다.

    유승민의 '정의'는 누구나 동등한 선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무론적 '정의'인데 반해 박 대통령은 '기관사 딜레마'를 동원한 공리주의적 '정의'를 통해 자신을 배신한 자를 단죄하려 했다가 역습을 당한 꼴이다.

    유권자들은 빨간 옷을 입고 나와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대통령보다, 흰옷을 입고 나와 '정의'를 심판해 달라는 유승민의 손을 들어줬다. '여소야대'로 판가름 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의 '배신론'이 유승민의 '정의론'에 완패 당한 전투였다. 이 전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확전되었고, 새누리당이 야당에게 참패당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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