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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좌파운동의 역사를 담은 기념비적인 소설



책/학술

    유럽 좌파운동의 역사를 담은 기념비적인 소설

    신간 <저항의 미학 1·2·3>, 페터 바이스 지음

     

    "지배 계급애 대한 '저항'은 연대를 통해 가능한데,

    연대는 무엇보다도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다.

    그리고 상상력은 무엇보다도 문학과 예술을 통해 가능하다."

    제국주의적 억압과 착취를 고발했던 독일 작가 페터 바이스의 마지막 역작 <저항의 미학="">이 출간되었다.

    페터 바이스는 정치적 참여와 행동을 작가적 의무로 생각하고 <마라와 사드=""> 등 여러 정치·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희곡을 썼다. 그리고 그가 생의 마지막 10년을 바친 역작, 무려 6,700매에 달하는(번역 원고 기준) 장편소설 <저항의 미학="">은 1972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981년에 완간되었다.

    1980년대 서독의 진보적 지식인과 시민들, 대안적 사회주의를 꿈꾸던 동독의 반체제 지식인들은 이 소설에 열광했다. 사회주의 동구권의 몰락 후, 이 소설은 과거로서 잊히는 것 같았으나, 1990년대 후반 홀로코스트와 희생자 중심의 기억문화가 새롭게 부상하고, 21세기에 이르러 가속화하는 세계자본주의의 파괴적인 독과점을 목도하면서, <저항의 미학="">이 던졌던 물음과 대답들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저항의 미학="">은 1937년에서 1945년까지 유럽 전체를 휩쓸었던 파시즘의 파괴 전쟁과 그에 대한 사회주의 세력의 저항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독일 반파시즘 역사를 바라보는 페터 바이스의 관점은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데,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파국의 순간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소설은 노동자이자 반파시즘 저항운동가인 스무 살의 젊은 주인공이 국제여단에 입대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자 고향 베를린을 떠나기 하루 전인 1937년 9월 22일에 시작되어 스페인과 파리, 망명지인 스톡홀름, 베를린에서의 저항운동을 기록하고, 1945년 세계대전의 파국적 종말과 함께 끝난다.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들은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는 노동운동 및 공산주의 계열의 반파시즘 저항세력이다.

    바이스는 무수한 일차 기록과 이차 자료들을 조사 ․ 연구하고, 생존자 및 목격자들과의 수많은 인터뷰, 현장 답사를 통해 이 소설을 완성해냈다. 소설에 기록된 모든 사건은 역사에 실제로 있는 사실이며, 묘사된 장소와 인물들은 화자인 나와 나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재했으며, 언급되는 책과 미술작품들은 실제 비평으로 손색이 없다.

    사실일 뿐 아니라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한 보고와 고백들, 권력에 저항하다 고문당하고 학살된 희생자 관점에서 이루어진 이 과거에 대한 성찰은 역사 속에서 순수한 이타심과 열정으로 자신을 희생한 이름 모를 사람들의 얼굴을 되찾아주었고, 남은 자를 각성시켰다.

    1930~40년대의 사회주의 ․ 공산주의 계열의 반파시즘 저항의 역사는, 서독에서는 외면되거나 망각되었고, 구동독은 자신들을 반파시즘 투쟁과 승리의 주역으로 단정한 채 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왜곡, 미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반파시즘 저항운동의 역사를 그 과정에서 희생된 평범한 익명의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1945년 5월은 승리의 순간이라기보다 오히려 대파국의 순간이다.

    화자 '나'에게 1945년은 파시즘에 저항했던 수많은 진정한 사회주의자들, 모든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꿈꾸었던 저항의 역사의 진정한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파시스트들에 의해서, 아니면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서 거의 처형되었거나 사라져버린 절망의 시점이었다.

    페터 바이스는 자신은 살아남은 자로서 그 무시무시한 폭력에 '저항'하고 '희생'되었던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품었던 꿈과 희망, 그들이 느꼈던 공포와 절망, 그들이 보았던 역사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고 전달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저항의 미학="">은 인간성 회복을 위해 파시즘에 저항했고, 그로 인해 학대받고 살해되었던 (살해될 뻔했던) 모든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또 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애도의 소설'이다.

    피카소의 찌그러지고 터진 몸뚱이들, 일그러진 얼굴들은 그 시대에 대한 증언이기도 했다. 그림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지나간 억압의 시대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_1권 505쪽

    "우리 안에 종합예술, 종합문학이 있는 거야. [……] 예술의 어머니인 므네모시네는 기억을 뜻해. 므네모시네는 예술적 업적 전체에 스며 있는 우리의 자기 인식을 지켜주지."_1권 116쪽


    '근대'라는 프로젝트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삶과 예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지양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 가능성의 역사적 사례를 <저항의 미학="">에 등장하는 젊은 노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_위르겐 하버마스(독일 철학자)

    <저항의 미학="">의 의미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3권이 완간되고 작가가 사망한 후인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68운동의 정치적 에너지가 소진되고 주관적인 미학이 다시 부상한 1970년대를 경험한 독일의 좌파 학자, 예술가, 지성인들에게 이 책은 비판적 예술의 지향점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이 작품에서 "오늘날 예술이 어떻게 사회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구체적 답을 보았던 것이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저항의 창조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예술과 미적 상상력의 본질에 대해 고찰한다. 예술과 문학에 내재된 본질적인 창의성, 대상을 인식하는 새로운 감수성으로서의 미적 능력이 계급 해방의 잠재력이 된다고 보는 주인공은 예술과 문학, 역사와 신화에 내재된 계급적 감수성을 이해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소외되고, 억압받고, 투쟁하는 계급의 집단역사를 기록함으로써 그 투쟁에 동참하고자 한다. 정치적 결정과정에서 소외된 다수가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 다수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으려면, 자기 잠재력을 믿고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문화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과 친구들은 저항의 역사를 담당했던 그 사회의 가장 아래에 있던 사람들에 관한, 또 그들에 의해 생산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서구 문화사를 재구성한다. 헬레니즘 미술의 최고봉 '페르가몬 신전 부조'부터 헤라클레스 신화, 지오토의 벽화, 앙코르와트,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게르니카」 「메두사 호의 뗏목」 「멜랑콜리아」 「죽음의 무도」, 단테의 『신곡』, 카프카의 『성』,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까지. 노동하는 계급의 입장에서 예술과 문학에 깃든 대안적 인식과 저항의 잠재력을 읽어내는 이런 방식의 예술 비평은, 그 계급적 관점에 공감하는 순간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체험을 열어주는 마법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

    갇혀 있는 아픔이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이 신음 소리가 언어로, 다시 이 언어가 글로 옮겨질 수 있을 때, 이것이 바로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저항'의 단초가 된다. 예술작품 속에 표현된 '고귀한 것들'이 지배자 자신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면, 그 속에 표현된 '무릎을 꿇고 있는 동물적인 존재들'이 바로 피지배자인 '우리'의 모습이었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될 때, 이러한 연대의식이 바로 '저항'의 시작이 된다. 페터 바이스는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사회적 상상력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며, 이것이 바로 '저항'을 담보하는 '미학'의 원천이자, 지배를 종식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이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르가몬 제국의 절정기가 지난 지 2천 년이 흘렀다. 『공산당 선언』 이후 거의 1백 년이 다 되도록, 상류층은 문명의 모든 발전을 여전히 독점했다. 그리고 그 권력의 유지에 우리는 늘 공조해왔다. 붕괴의 싹은 옛날 옛적에 태동했지만, 타고난 신분이라는 생각의 힘과 복종의 계율은 늘 막강했다. 사회 발전 단계의 이행을 추진하는 동력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노동하는 다수는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_1권 64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자유란 스스로 얻어낼 수 있을 뿐이다._2권 142쪽

    <저항의 미학="">이 나온 지 이제 3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동구 사회주의 체제는 무너졌고,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 역시 심대한 지각변동을 겪었다. 1980년대까지의 비장했던 민족・민중・계급 논의는 경쟁력・성장・취업・평가 따위의 각박한 신자유주의적 광고문구들에 밀려났다. 나치 체제의 패권주의, 유대인 대량 학살은 이미 몇 세대 지나간 과거사지만, 인종차별과 학살,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는 지금도 세부 양태만 바뀐 가운데 인류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 점에서 파시즘 극복 문제는 당대성을 잃지 않고, 아직 강고하게 존속하는 시대적 잔혹에 진지하게 맞서는 <저항의 미학="">은 오늘 우리에게도 현재적이다.

    이 책은 파시즘 세력의 잔혹성에만 한정되지 않고 반파쇼 저항운동 내부의 잔혹성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민중들은 좌파들의 그런 모습에 실망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페터 바이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폭력 앞에서의 저항이 어떻게 가능하고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지극히 진지한 어조로 풀어낸다. 저항세력 내의 반목과 갈등, 모순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열정과 사회주의적 도덕으로 신념을 지키는 비쇼프나 로스너 등의 모습에 우리는 희망을 걸게 된다. 이 작품은 저항 운동을 비현실적으로 미화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허무주의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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