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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지 않은 '사람'



문화 일반

    이세돌,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지 않은 '사람'

    이세돌 9단이 지난 15일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제5국에 앞서 딸 혜림양과 함께하고 있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 안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니체

    최근 개봉한 영화 '너를 기다리며'를 보며 새삼 되새긴 말. 연쇄살인마로부터 아버지를 잃은 한 여성의 처절한 복수를 그린 이 영화가 니체의 말을 주요 메시지로 다루면서도, 이를 극에 얼마나 잘 녹여냈느냐의 문제는 다른 데서 따져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영화가 끝난 뒤 이세돌이 떠오른 까닭을 짚어보려 한다. 최근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벌인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 말이다.

    이세돌 9단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제5국을 지면서 종합전적 1승 4패로 대회를 마쳤다. 그는 대국 뒤 기자회견에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나?'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번 대국만은 마음껏, 원없이 즐겼다"고 소감을 전했다.

    '인간 대 기계'의 대결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탓에 어깨에 짊어진 부담감이 몹시 컸을 텐데도 그는 다섯 차례의 대국 내내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번 패배를 자성의 계기로 삼겠다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이번 대국 전, 지난해 10월 진행된 알파고와 유럽 챔피언 판후이 2단의 기보를 본 바둑 전문가들은 "알파고의 바둑 실력이 이세돌 9단과 같은 최고수에는 크게 못 미친다"며 이세돌 9단의 압승을 점쳤다. 이세돌 9단 역시 자신의 5대 0 승리를 자신했다. 표면에 드러난 알파고의 자료를 통해 얻은 객관적인 판단이 그러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자 알파고에 관한 모든 판단이 잘못됐다는 게 드러났다. 알파고의 실력은 5개월 전 판후이 2단과 대국을 벌일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세돌 9단은 지난 9일 열린 알파고와의 첫 대국에서 186수 만에 불계패를 당하며 충격을 안겼다. 당시 이 9단은 "알파고에 너무 놀랐다. 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서도 "오늘 바둑은 초반의 실패가 끝까지 이어진 것 같다. 프로그램을 만든 분들께 깊은 존경심을 전하고 싶다"며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했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이 2, 3국에서도 잇따라 알파고에 지면서 3연패를 당하자, 대국장 밖에서는 '불공정 게임' 논란이 일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최근 기보 등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점, 알파고가 CPU(컴퓨터 중앙처리장치) 1202개·GPU(그래픽처리장치) 176개를 탑재했다는 점 등을 들며, 이 9단에게 극도로 불리한 대국 환경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국에 임하는 이세돌 9단은 대국 뒤 기자회견을 통해 끊임없이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세를 보였다. "굉장히 놀란 것은 어제로 충분하고 오늘 바둑은 초반부터 앞선 적이 없는 완패였다. 알파고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오늘은 알파고의 완승이자 완벽한 바둑이었다(제2국)."

    "결과적으로 1국은 승리하기 어려웠다. 알파고의 능력을 오판했다. 승부는 2국에서 난 것 같다. 초반 의도대로 흘렀지만 기회를 많이 놓쳤다. 3국은 바둑적 경험이 많은 저도 심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이겨내기엔 능력이 부쳤다(제3국)."

    ◇ '인간' 이세돌, 인공지능과의 대결 통해 '공존' 위한 '자성'의 가치 보여 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마지막 5국 대국이 펼쳐진 지난 15일 서울 행당동 이세돌 바둑연구소에서 연구생들이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과학자들은 알파고를 두고 "기존에 빠른 연산을 하던 컴퓨터와는 달리, 인간이 지닌 직관과 통찰을 흉내낸 인공지능"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스로 학습하고, 바둑에 이기기 위해 한 수 한 수의 가치를 판단하는 알파고. 이 바둑 인공지능은 개발자조차 그 한계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 '괴물'이라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실체를 확실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 괴물인 까닭이다.

    알파고라는 괴물과 싸우는 와중에도 이세돌 9단은, 니체의 표현대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줬다. 자신의 패배를 합리화할 목적으로 상대의 실력을 결코 폄훼하지 않았으며, 주변에서 일던 불공정 게임 논란에 기대어 승부를 변질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3연패 뒤 밤을 지새우며 동료 바둑기사들로부터 알파고를 이길 해법을 듣던 그는 말미에 "자기 바둑을 두면 되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드디어 알파고와의 제4국에서 백 불계승으로 첫 승을 따낸 이세돌 9단은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백으로 이겼기 때문에 5국은 흑으로 이기고 싶다"며 승패를 떠나 자신이 원하는 가치 있는 도전에 임하는 태도를 보였다. 언론에서는 "인간이 기계로부터 승리했다"며 대서특필할 때 이세돌 9단은 자신의 도전을 이어간 셈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모두 끝난 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인공지능이 미래 문명에 미칠 다양한 시나리오를 접하며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다" "인간이 기계의 판단에 의존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는 등의 우려를 내놨다. 인공지능이 또 하나의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져 가는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

    미래학자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일단 인간들부터 자성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인상적인 말을 했다.

    "지금까지는 경쟁을 통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왔어요.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탐욕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왔잖아요. 결국 상생, 공생과 관련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시각이 중요해 보입니다. 기술 개발도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된다면 코드 하나를 짜더라도 만드는 사람들의 의도가 스며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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