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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길 잃은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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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론/칼럼

    [사설]길 잃은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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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사진=미국 국무부)

     

    북한의 돈줄과 물자의 이동을 차단하는 내용의 강도 높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마련됐다. 미국과 중국의 합의를 토대로 작성된 결의안 초안은 15개 안보리 이사국의 회람을 거쳐 늦어도 오는 29일까지 최종 결의안으로 탄생할 전망이다.

    미.중 외교장관들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세차례나 담판을 할 정도로 이번 대북 제재 결의안은 철저히 미중 두나라가 주도했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무역의존도가 90%에 이르는 만큼 제재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핵심 키는 중국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의 태도변화에 매달렸다.

    제재안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도 극약처방에 가까운 조치를 동원했다. 바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공식화와 개성공단 폐쇄조치가 그것이다. 그동안 ‘3불(사드 배치에 대한 요청도, 협의한 적도, 결정된 바도 없다)’ 원칙을 유지하던 정부는 미국과 사드배치 논의를 개시한다고 공식 선언해 중국을 크게 자극했다.

    또 남북간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경제통일의 출발점으로 여겨졌던 개성공단 마저 전격 폐쇄하자 북한은 자산동결과 함께 군 통신선을 비롯한 남북간 연락망을 끊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결의안 합의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미묘한 변화의 흐름이 나타났다.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드에 ‘올인’했던 우리 입장로선 어찌보면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지난 23일 미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급급해하지 않는다”고 밝히더니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은 25일(현지시간) “한미가 사드 배치 문제를 협의하기로 한 것이지 사드 배치를 확정지은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층방어를 위해 사드 한반도 배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던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과 비교하면 확인히 변화가 감지된다.

    이 때문에 강력한 대북제재안과 사드 배치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빅딜을 한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결국 중국의 제재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미국이 속도조절론을 통해 사드 배치를 카드로 활용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주목할 만한 또다른 변화는 평화협정 문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방미 직전인 지난 17일 북핵문제의 새로운 해법으로 북핵 해결과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묶어서 논의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후 전례없이 강력한 제재안에 양측이 합의한 점으로 미뤄 미국이 중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했을 개연성이 크다.

    앞서 미국과 북한은 지난 연말 뉴욕에서 비밀회동을 통해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그동안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 태도를 고수했던 미 국무부는 “평화협정 회담이 비핵화 회담과 병행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우리도 모르게 북한과 접촉하고 중국과는 빅딜로 손잡은 미국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 즉, 핵포기 전에는 일체 대화가 없다는 기존의 태도에서 벗어나 북한이 핵활동을 중단하면 평화협정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후퇴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나온 우리 정부의 극약처방은 중국을 압박하는데 일조했을지 모르나 반대급부가 만만치 않다.

    우선 외교적 소외다.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 질서를 둘러싼 대화를 주도하면서 우리가 설 땅이 극히 좁아졌다. 북한과 대화의 끈이 끊어지면서 대화의 주도권은 사라지고 외교적 입지는 축소될 수 밖에 없다.

    한중관계 훼손도 무시 못한다.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지켜볼 정도로 박근혜 정부는 3년 동안 한중관계에 공을 들여왔는데, 사드배치 추진으로 균형외교가 허물어지는 계기를 초래했다.

    국내적으로는 개성공단 폐쇄 조치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거나 근로자들이 실직하게 되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대북 소통채널도 끊겼고 심지어 국방부는 민간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의 대북전단살포를 계획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임에는 틀림없으나 비핵화에만 매달리다 대화를 소홀히한 것은 국내외 정세의 변화를 못읽은 탓이다. 미국을 믿고 강경책으로 나가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처지다.

    대북정책도 외교정책도 길을 잃은 형국이다. 변화를 못읽은 외교안보라인은 책임을 통감하고 대북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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