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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기억교실, '416'에 멈춰버린 시간표…가슴저미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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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고 기억교실, '416'에 멈춰버린 시간표…가슴저미는 '그리움'

    주인없는 텅빈 책상에는 가족, 친구들의 절절한 편지, 꽃다발, 과자 등 수북

     

    "오늘 졸입식이야. 미안하구나 이쁜아들, 늦은시간이라 정문에 고리를 걸어놓아 못들어올줄 알았어. 국화꽃으로 소중한 졸업식조차도 가족들과 부모님들을 아프게 했어. 캄캄한 이 어둠에 교실 형광등 하나 켜고 너를 보고 또 보고 눈물만 나는구나. ㅠㅠ 이 모든 아픔하나 차곡차곡 쌓아둘것이야. 내 이쁜아들아 이 세상 내 눈앞에 사라진 이후 고통들 ㅠㅠ…" (중략)

    그날이후, 아이들이 모두 떠난 이른바 '기억교실', '존치교실', '416교실'로 불리는 10개의 방에는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구구절절 눈물로 쓴 편지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이들의 책상에는 생전에 활짝웃고 있는 사진과 평소 좋아하던 음료와 과자, 캐릭터, 문구류, 손거울, 화장품 등 다양한 소지품들이 가득히 쌓인채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얼마나 무서웠니… 희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꽃피우지 못하고 저 머나먼 하늘로 서럽게 날아간 진경아… 미안하고 미안해… 마음속에 고이 묻고 저 머나먼 하늘을 향해 편지를 보내… 고통없는 천국에서 우리 꼭 만나자. 하늘에서 정부, 언론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고 있을 너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파. 며칠전 화랑유원지 분향소를 다녀왔어 끝도없이 놓여져 있는 희생자 사진을 보고 또다시 가슴이 무너져 내렸어…" (중략)

    "얘들아… 얘들아…돌아와라 겨울 이기고 봄이 돌아오고 밤을 새워 아침이 돌아오고 받지못한 편지마져 돌아오듯 그냥 돌아와라!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나의 아들들아 따들아 내가슴속에 같혀만 있지말고 내 눈 앞에 돌아와라. 보고싶다는 말은 싫다, 잘 다녀왔다는말 한마디 들려다오. 말 안듣는 아들, 심술많은 딸로 돌아와… 그냥 돌아와!!…"

     

    "2학년 7반 오영석 학생도 그날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19일 오후 4시. 영석 학생의 어머니 권미화씨가 아들의 교실을 찾았다.

    "영석아 잘 지냈니? 오늘은 국회에 갔다왔어. 엄마가 감기몸살이 심해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걱정마."

    권씨는 책상에 놓여있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손수건으로 연신 거울을 닦고 또 닦았다.

    생전 아들과의 추억을 말할때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밝고 환한 미소를 띠며 이내 생전의 추억속으로 빠져들었다.

    "단 하나 외아들로 우리부부의 모두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어려서부터 비밀이 없이 밝았고, 사춘기도 모르고 지나갔어요. 아들 때문에 맘이 상한적은 없었고, 아들이 어디를 갖다오면 거울이나 악세서리 등 작은 선물이라고 꼭 챙겨오던 다정다감한 아들이었어요."

    권씨는 여행전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제주여행 전날 온 가족이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었는데 영석이가 삽겹살을 가위로 잘라서 할머니한테 먹여주는 등 기대감에 마음이 들떠서 좋아했다"며 "사고당일 오전 6시 '아들, 잘 잤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없었다. 사고소식도 회사 동료들이 TV뉴스보도를 보고 알려줘 오전 10시에 알았다"고 말했다.

    "뉴스에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순진하게 돌아올거라고 믿고 학교정문에서 오후 6시까지 아들을 기다렸어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팽목항에서 3일간은 살아있을거라고 믿었어요. 아기가 5일만에 물에서 나왔는데 찬물에 샤워하고 금방 나와 잠든아이처럼 자고 있었어요. 손으로 얼굴을 만지니까 놀랍게도 창백한 얼굴에 혈색이 돌더라고요."

    단원고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씨가 아들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권씨는 영석이가 생각날때마다 늦은밤 학교로 찾아와 그리움을 달랜다고 말했다. "학교에 오면 아무도 없는데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소리,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더라고요."

    "아이가 전부였어요. 힘든 직장생활도 전혀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적 없고 부모님 모시고 경제문제도 없었고 아이가 밝아서 재미있게 살았는데 그날 아이가 떠난후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어요. 시댁, 친정식구, 친구들과도 왕래가 끊겼고 가끔 안부전화만 하는 정도죠. 부부간, 엄마로써의 역할도 멈춰버렸죠. 13년 다니던 직장도 모두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은 호수처럼 흘러내렸다.

    "가장 힘들때는요. 애기생일… 사람들이 즐거워할 때… 가장 많이 생각나는때는 5월달, 발렌타인데이, 기념일, 거리에서 가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모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권씨는 "얼마전 핸드폰 기계를 바꾸던날 영석이가 찾아와 '엄마 어디야?'하고 물었는데 답변을 못했어요. 제가 '밥 먹었니?'라고 물으니 대답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권씨는 지금도 떠난 아들이 곁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의 방에는 전기장판도 늘 켜 놓고 잠잘때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꼭 껴않고 같이 잔다. 아직은 아들의 죽음을 인정할수 없다. 세월호의 사고원인이 반드시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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