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광주광역시 중외공원에 핀 홍매(사진=이광이 제공).
매화
-권필 (1569-1612)
매화
얼음 뼈
옥같은 뺨
섣달 다 가고
봄 오려 하는데
북쪽 아직 춥건만
남쪽 가지 피웠네.
안개 아침엔 빛 가리고
달 저녁엔 그림자 배회하니
찬 꽃술 비스듬히 대숲 넘나고
暗香은 날아서 금 술잔에 드누나.
흰 떨기 추워 떠는 모습 안쓰럽더니
바람에 날려 綠苔에 지니 애석하도다.
굳은 절개 맑은 선비 견줄만 함 이로 아니
우뚝함 말할진대 어찌 보통의 사람이라 하리.
홀로 있음 사랑해도 시인이 보러 감은 용납하지만
들렘을 미워하여 狂蝶이 찾아옴은 허락치 않는도다.
묻노라,廟堂에 올라 높은 정승의 지위에 뽑히는 것이
어찌 옛날林浦 놀던 西湖의 위, 孤山의 구석만 하겠는가.
*暗香(암향), 綠苔(녹태), 狂蝶(광접), 廟堂(묘당), 林浦(임포), 西湖(서호), 孤山(고산).
매화 소식이 남쪽에서부터 전해오고 있다. 지인들의 페이스북에는 1월 말일경 광주 중외공원에 핀 홍매, 한 주 전 지리산 자락의 눈속에 핀 백매, 홍매를 담은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주중엔 5년만에 만난 지인과 창덕궁 낙선재의 수양매를 즐기던 추억담을 나눴다. 서울의 회사 옥상정원 매화나무도 곧 꽃망울을 터뜨릴 태세이다.
여기에 소개된 권필의 매화 시는 보탑시, 층시라고도 하는 잡체시의 한 형식이다. 그 형태가 탑의 층을 이루듯 형상미를 지니고 있다. 권필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술과 시를 즐기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명성을 듣고 몰려온 많은 유생들을 가르쳤다. 시인은 추위에 꽃을 피워내고 은은한 향을 드리우는 매화를 선비의 굳은 절개와 맑은 품성에 비유했다. 시인은 그 우뚝함이 홀로 있어도 스스로 여유롭다. 자기를 알아주는 시인과는 교류를 허락하지만,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자들은 나비때들이 달려들듯이 와도 범접하지 못하게 한다.
옛 선비들이 추위와 눈속에 피는 매화를 찾아다니며 그 운치를 즐기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세속의 풍파에서 지켜야 할 가치와 자존을 매화의 기상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리라. 요즘은 모든 게 돈으로 가치가 평가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매화향 같은 가치는 어떤 것일까? 그건 인간으로서 품격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을 갖추는 것이이라. 그 요건을 충족하도록 사회환경을 개조할 '혁신의 매화'는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