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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60년 미스터리…윤치호 VS 안창호 '끝장 토론'



문화 일반

    애국가 60년 미스터리…윤치호 VS 안창호 '끝장 토론'

     

    60년 째 '미상'으로 남은 애국가 작사자의 정체는 밝혀질 수 있을까. 애국가 작사자를 규명하기 위한 끝장 토론이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윤치호 작사설을 지지하는 김연갑 선생은 국가상징연구회에서 애국가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안창호 작사설을 지지하는 안용환 교수는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한국사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들은 애국가 작사를 두고 양분된 가설을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 판가름나지 않은 애국가 작사자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이 벌인 토론을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 이미 1955년 '윤치호'로 결론…'친일' 문제로 미확정

    김연갑 선생은 과거 이미 한 차례 윤치호가 작사자임을 국가기관이 인정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1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회'가 3차에 걸친 조사 끝에 '윤치호로 결론, 문교부에 보고하리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문교부는 확정을 미뤘다.

    김 선생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윤치호를 작사자로 결론 내렸지만 문교부가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확정을 하지 않았다"면서 "그 상태로 지금까지 '애국가'는 작사자 미상으로 온 것이다. 문교부는 윤치호에 얽힌 친일 문제 때문에 '개작'하자는 여론이생겨 국론이 분열된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윤치호가 애국가의 작사자라는 역사적 증거는 산재해 있다는 것이 김 선생의 주장이다.

    함께 작사자로 거론되는 안창호가 대성학교 시절 수학교사인 채필근에게 "애국가는 교장인 윤치호가 지었다"고 증언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실제 당시 발간됐던 신문들에 소개된 윤치호 작사 노래는 애국가의 현재 가사와 일부 똑같다.

    독립신문은 1897년 현 애국가와 후렴이 같은 '무궁화가'를 윤치호가 작사했다고 보도했고, 1910년 미주 신한민보에서는 애국가 4절을 윤치호가 작사한 '국민가'로 소개했다.

    그런가하면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일본 유학생들을 감찰하면서 유학생들이 윤치호 작사 애국가를 부르기로 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윤치호 본인이 남긴 기록들 역시 존재한다.

    김 선생은 "4절 애국가가 방서된 자필 '가사지'는 지난 1955년 조사 당시 윤치호 친필 여부에 대한 수사를 마쳤다"며 "그가 1908년 발행한 '찬미가'는 찾지 못해 자료로 채택되지 못했지만 무궁화가와 애국가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 두 자료에는 '하나님'이라는 용어 등이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 안창호의 친필 '무궁화가 2' 발견…안익태를 비롯한 증언들

    안용환 교수는 안창호의 친필 '무궁화가 2'를 결정적 근거로 제시했다.

    안 교수는 "이 발견으로 자연스럽게 앞의 '무궁화가'는 '무궁화가 1'로 간주된다. 따라서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라며 "애국창가집 제12편의 안도산 작 '권학가' 제목 밑에 '무궁화가와 한곡조'라고 명기돼 있어 안창호 작사임을 확실히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안창호 주변 인물 그리고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의 증언이 안창호 작사설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다.

    안창호, 이광수, 이정화 등의 자녀는 각기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라는 얘기를 들었고 안창호의 딸인 안수산 커디는 사망하기 5일 전인 지난해 6월 19일 안 교수에게 이 같은 칼럼을 보내왔다.

    안익태의 증언에 대해서는 "누구의 씨인지 가장 확실히 아는 사람은 산모인 아내이다. 안익태는 자기의 남편(작사자)이 안창호라는 사실을 수차례에 걸쳐 자백했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애국가 가사가 안창호로부터 황사선 목사를 거쳐 안익태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전달 과정은 다음과 같다. 안익태는 샌프란시스코 한인 교회의 황 목사를 만나 안창호가 지었다는 애국가 가사를 접했다. 황 목사는 이를 '안창호가 지은 시'라고 했고, 안익태는 가사를 정확히 베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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