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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코커스 현장을 가다…신뢰와 존중의 '동네 회의'



미국/중남미

    美 대선 코커스 현장을 가다…신뢰와 존중의 '동네 회의'

    • 2016-02-04 09:08
    지난 1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어반데일시 어반데일 고등학교에서 실시된 공화당 코커스

     

    지난 1일(현지시간) 저녁 6시 30분쯤. 미국 아이오와주 어반데일시 어반데일 고등학교에 지역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민주, 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를 결정할 첫 경선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위해서다.

    이곳은 어반데일 제2선거구로 민주, 공화 양당의 코커스가 동시에 열렸다. 미 대선 '풍향계'로 온갖 시선이 집중된 행사지만 주민들은 마치 동네 반상회 나오듯이 편안한 옷차림에 여유 있어 보였다.

    공화당 코커스가 열린 곳은 학생 식당. 250여명의 당원이 모이자 7시쯤 행사가 시작됐다. 이날 의장을 맡은 데이비드씨는 인사말을 마친 뒤 곧바로 후보 지지 연설을 진행했다.

    참석자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 등을 설명하며 다른 당원들을 설득하는 자리다. 테드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 랜드 폴, 젭 부시의 지지자들이 잇따라 연단에 나와 지지 이유를 밝혔다.

    지난 1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어반데일시 어반데일 고등학교에서 실시된 공화당 코커스에서 개표가 이뤄지고 있다.

     

    이윽고 마지막 도널드 트럼프 차례. 의장이 "트럼프 지지 연설할 분 있습니까?"라고 묻자 장내는 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10여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중년의 한 남성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는 "지금 미국은 엉망진창"이라며 "나는 트럼프가 이런 미국을 확실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의장은 "사전에 특별 발언을 신청한 사람이 있다"면서 50대 남성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어반데일 토박이라는 이 남성은 한마디로 '트럼프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어떤 후보를 선택해도 다 존중한다. 그러나 트럼프만은 (공화당의) 가치를 공유하지도 않을 뿐 더러 백악관을 다시 찾아올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막말과 기행으로 '본선' 경쟁력이 없는 트럼프를 공화당 후보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게 요지였다. 참석자들은 이들의 발언을 조용히 경청했고 특별히 환호하거나 야유하지 않았다.

    이어서 투표가 실시됐다. 참석자들은 투표 용지에 저마다 지지자의 이름을 쓴 뒤 5~6개의 페인트 통에 집어 넣었다. 기표소도 없었고 자기 펜으로 이름을 쓰는 것이었다. 개표는 더 엉성했다. 주민 5~6명이 한쪽 테이블에 앉아 표를 세기 시작했다.

    이 때 지켜보던 한 남성이 테이블에 손을 짚다가 투표 용지를 흐트러지게 했다. 하지만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실수한 남성은 두 손을 번쩍 올리면서 "제 손은 깨끗해요(부정행위 아니예요)"라고 웃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냥 웃어 넘겼다.

    이름 철자가 잘못 쓰여진 용지도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냥 크루즈, 트럼프, 루비오 등 이름만 알아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됐다. 서로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게 중요했지 나머지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크루즈'라고 쓰여진 용지는 수북히 쌓이기 시작했고 '트럼프'는 저조했다. 이곳의 결과는 아이오와 전체 1681개 선거구의 개표 집계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같은 시간. 이 학교 미디어센터(시청각실)에는 민주당원들이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공화당에 비해 더 자유로웠다. 아이들을 데려 오기도 했고 3~4명씩 모여 큰 소리로 웃고 떠들기도 했다. 이날 의장을 맡은 존 삭스씨는 후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귀띔 해줬다.

    지난 1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어반데일시 어반데일 고등학교에서 실시된 코커스에서 민주당원들이 등록을 하고 있다.

     

    민주당 코커스는 생각 보다 간단했다. 참석자들은 테이블과 의자를 다 치우고 선 채로 회의를 했다. 삭스 의장은 모두 254명이 참석했다고 밝힌 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지하는 사람은 왼쪽으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각각 모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금방 두 그룹으로 나눠졌다.

    다만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 지지자와 아직 의사를 결정하지 못한 10여명은 어느 쪽으로 가지 못한 채 중간에 남았다. 이들은 20분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뒤 각자 양측의 지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제각각 클린턴, 샌더스 측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부는 기권한 채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민주당의 경우 지지율 15%를 넘기지 못하는 후보의 지지자들은 다른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바로 이때 격렬한 '토론'과 ‘로비'가 이뤄지기도 하는데 이날의 선택은 조용히 끝났다.

    민주당도 인원수 집계는 허술했다. 5~6명이 나눠 양측의 사람 수를 세더니 더할 뿐이었다. 참석자들이 여기저기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고 인원 수를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의를 재기하거나 재검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날 클린턴 지지자는 129명, 샌더스 지지자는 124명이었다. 그 결과 이곳에 할당된 9명의 대의원 가운데 클린턴측은 5명, 샌더스는 4명을 확보했다. 의장은 이같은 결과를 발표했고 모두 박수를 치며 자리를 떠났다.

    지난 1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어반데일시 어반데일 고등학교에서 실시된 민주당 코커스.

     

    사실 이날 코커스를 이끌어간 삭스 의장은 하늘색 셔츠에 '버니' 뱃지를 달고 있는, 누가 봐도 열렬한 샌더스 지지자였다. 기자가 한 클린턴 지지자에게 "의장이 샌더스 팬인 것 같다"고 말하자 돌아온 답변은 "그래서요?"라는 것이었다. 그가 누구를 지지하든 회의만 잘 진행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삭스 의장은 시종 활달하게 웃으며 코커스를 공정하게 이끌어갔다.

    코커스는 인디언 부족회의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직접 지켜본 코커스는 작은 마을 회의, 또는 동네 반상회 같은 느낌이다. 인상적인 것은 자기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분위기다.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야유하거나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인원수 집계와 개표 과정은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 같았다. 상대 후보 지지자가 회의를 주관한다고 해서 공정성을 문제 삼지도 않았다. 그리고 모두 깨끗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코커스는 허술하고 시대에 뒤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신뢰와 존중의 정신이 미국 정당 정치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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