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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부'(國父) 없는 '사생국'(私生國)의 고아들



칼럼

    [칼럼] '국부'(國父) 없는 '사생국'(私生國)의 고아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그의 소설 <눈>에서 ‘케말 파샤’(Mustafa Kemal 1881-1938)의 서구화 정책 과정에서 일어난 공화파와 이슬람세력 간의 충돌을 섬세하게 그렸다. 하얀 눈 위에 뿌려진 붉은 피를 통해 터키가 이슬람의 닫힌 문을 열고 유럽으로 걸어 나가야 했던 고난의 시대를 묘사했다.

    케말 파샤는 그 시대를 변화시킨 터키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망하자 열강에 의해 사분오열될 뻔한 조국 터키를 독립전쟁을 통해 구해낸 영웅이다. 이후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그는 이슬람권에 속한 터키 여성들을 법률과 관습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터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케말 파샤

     

    1930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면서 ‘히잡’ 착용을 금지시키는 혁명적인 법안을 제정했다. 히잡을 금지하면 이슬람 국가의 반발이 클 것이라고 우려하자 “‘모든 창녀’는 히잡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법안을 제정하도록 했다. ‘모든 여자’가 아니라 ‘모든 창녀’라고 했으니, 터키 여성들은 그 순간부터 수백 년 동안 써야했던 ‘히잡’을 착용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그가 터키의 모든 공공건물은 물론 화폐에 까지 초상이나 조각상으로 부활돼 국민들로부터 숭배를 받는 이유다.

    대한민국에서는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국부(國父)가 없는데도 국부 논쟁이 끊일 날이 없다. 한상진·김종인의 국부 논쟁에 좌우 지식인까지 합세하면서 나라가 시끄럽다. '국부다' '국부가 아니다'를 놓고 공방을 벌이며 상대진영의 상처내기로 번진다. 조국 교수까지 등장해 국부 논쟁을 거들 정도로 민감한 문제가 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부다"라고 발언한 사람이 자신을 비난한 상대를 향해 "당신은 독재자 전두환 시절 국보위에 참여했던 인물"이 아니냐고 되받아친다.

    저마다 ‘우리의 아버지는 이승만이다’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김구다’ 하고 싸운다. 우리 아버지가 박정희라는 사람도 있고, 김대중이라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믿는 아버지를 부정하는 상대방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공격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도 있다.

    김구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왼쪽), 이승만 초대 대통령

     

    국부 없는 나라는 ‘사생국’(私生國)이다. 사생국은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에 의해 건국된 나라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난 사생아(私生兒)와 똑같다. 사생국에 사는 국민은 버려진 사생아처럼 고아다. 아버지가 없으니 고아다. 고아들끼리 모여 살면서 자기가 아는 사람이 진짜 아버지라고 목청 높여 싸운다.

    언제 태어났느냐를 두고도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1919년에 태어났다는 사람과 1948년 태어났다는 두 부류가 이를 드러내며 싸운다. 가문의 내력만 보자면 콩가루 집안이다. 서로 주장하는 아버지가 다르고 태어난 때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하에 불쌍한 고아들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믿음과 신념만 중요하다.

    일본은 천황이라는 신(神)적인 국부가 있고, 중국은 쑨원이라는 국부가 있다. 베트남은 호찌민, 미얀마는 아웅 산, 몽골은 수흐바타르, 싱가포르는 리콴유, 프랑스는 드골, 이탈리아는 가리발디가 국부다. 하물며 북한은 김일성이 국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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