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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영복의 '감옥'과 우리들의 '감옥'



칼럼

    [칼럼] 신영복의 '감옥'과 우리들의 '감옥'

    혼자가 아닌 '함께의 꿈'으로 세상 살아가야

     

    1991년 가을쯤으로 기억된다. 당시는 언론사 입사시험 응시자격에 연령제한이 있을 때였다. 조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한 신문사의 '독후감 공모'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작문능력도 시험해볼 겸 '어떤 책들이 있나' …스무권 남짓한 독후감 대상 서적 목록을 훑어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발견했다. 기뻤다. 한 번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잊혀졌던 감동이 되살아났다. 똑같은 곳에 겹겹이 두 번째 밑줄을 그을 수 밖에 없었다. 우편으로 200자 원고지에 글을 담아 보냈지만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만이 말하고 쓸 수 있는 그의 '언어'를 접하면서 또 한 번 진한 감동을 느꼈다. 참 감사했다. 선생께 많은 빚을 졌다.

    안타깝게도 신영복 선생이 향년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에 떨리는 손과 슬픈 눈으로 누렇게 변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만지고 또 만지며 읽었다. 내가 가진 그의 책은 1988년 9월 5일 발행된 3,500원짜리 단행본으로 그 해 8월 14일 가석방된 뒤 첫 출판물이다.

    신영복 선생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모든 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신영복의 '2020'은 '감옥삶의 더미'인 20년 20일이다.

    과연 그에게 '감옥'은 무엇이었을까? 조금이나마 선생께 '감사의 빚'을 갚기 위함으로 감히 '신영복의 감옥'을 생각해 본다. '신영복의 감옥'은 계수씨에게 보내는 편지, 형수님에게 보내는 편지, 어머님 아버님께 보내는 편지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편지'가 아무려면 '만남'에 비길 수 있으련만은 그의 감옥은 말라버린 눈물의 승화이며 간절한 삶의 소망이다. 봄을 그리워하며 겨울을 받아들이는 숭고함이다. 부정이 아닌 긍정이며, 빼기가 아닌 더하기이며, 혼자가 아닌 함께의 꿈이다.

    무엇보다 '(으)로부터'는 출발이고 비롯됨이다. 벽으로 갇히지 않은 넓은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공간이다. 모든 것을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케 하며 그것을 위해 우선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게 하는 계기의 장소다.

    '신영복의 감옥'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숙제를 안겨준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닫힌 감옥'에서 벗어나라고 말이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가? 욕심과 이기심에 매몰된 우리는 과연 열린 삶을 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 그가 경험했던 '여름 징역'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 바로 옆 사람을 단지 섭씨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고 증오하게 만드는 감옥말이다.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이라도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신영복 선생은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정적평면(靜的平面)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라고 강조했다.

    20년 20일을 어둠속에 갇혀 지냈지만 선생은 그 누구보다 환하고 열린 삶을 꿈꾸고 또 그렇게 살았다. 넓은 세상에서는 크게 살아야 한다. 혼자 빨리 가기 보다는 함께 멀리 가는 게 어떨까…

    신영복 선생은 겨울철 추운 냉기 속에서도 자신의 숨결로 스스로를 데우며 봄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교도소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신문지 크기만한 '겨울 독방' 햇볕의 따스함이었다고도 했다.

    어쩌면 그는 '겨울'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는 그가 사랑한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 한 해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과 대한(大寒)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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