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대학로 배우들 “우리가 돈이 없지, 투지가 없냐”



공연/전시

    대학로 배우들 “우리가 돈이 없지, 투지가 없냐”

    [노컷 인터뷰] 스탠딩 뮤지컬 ‘화순’ 류성 연출

    “우리끼리 있으면 종종 이런 얘기를 해요. ‘우리가 돈이 없지, 투지가 없냐’고.”

    스탠딩 뮤지컬 ‘화순’의 류성 연출은 이 말을 하면서 엷은 미소를 뗬다. 미소에는 자랑스러움이 섞였다. 그럴 법도 했다. 소재부터가 성공을 예측할 수 없는 흔치 않은 것이었다. 1946년 일어난 ‘화순탄광사건’이 모티브다.

    * 화순탄광사건 = 1946년 8월 15일 화순탄광 광부들이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 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다가 미군정에 의해 진압당하고 끝내 죽게 됐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 중 하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스탠딩 뮤지컬 '화순'. (제공 사진)

     

    가볍지 않은 이 소재로 지난해 9월 초연을 올려 6회 전 공연 전 석 매진, 유료 객석 점유율 120%를 기록했다.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세종문화회관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한국의 레미제라블", "고맙고 감사하다 그리고 기쁘다 매년 이 공연이 지속되길", "터지는 에너지를 가진 ‘화순’에 지하 소극장은 너무 좁다", "대학로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기적 같은 공연", "집단적 에너지라는 게 이런 거구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등의 극찬이 쏟아졌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재공연 요청이 이어졌다. 지난해 11월에 앙코르 공연을 올렸고, 오는 14일부터 세 번째 공연을 진행한다.

    하지만 류 연출이 자랑스러워하는 주된 이유는 ‘소재’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 공연에 참여한 배우·스태프 들 때문이다.

    지난해 공연 대본을 쓴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화순탄광사건’을 소재로 공연을 올리려 한다. 그런데 출연료를 줄 여력이 없다, 그래도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부족한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다같이 아르바이트를 한 배우들. (제공 사진)

     

    안 그래도 벌이가 부족해 소위 투잡, 쓰리잡을 뛰는 연극인들인데 한 푼도 못 줄 거라니, 이 무슨 끔찍한 소리인가. 그런데 이 허무맹랑한 메시지를 보고, 배우와 스태프를 합쳐 총 60여 명이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메시지를 올린 지 1주일 만에 50명이 지원을 했어요. 이러다 감당 못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끊을 정도였지요.(웃음)”

    60명이 초연과 재공연, 그리고 이번 세 번째 공연까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 푼도 받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공연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못해 넘치는 대학로 연극인이라 할지라도, 흔치 않은 일이 분명하다.

    그 비결을 듣고자 지난 10일 저녁 합정동 인근에서, 공연 준비로 바쁜 류성 연출을 만났다.

     

    다음은 류성 연출과 나눈 일문일답.

    ▶ 한국 현대사를 아주 모른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화순탄광사건’은 솔직히 생소하더라. 어떤 사건인가.
    = 1945년 해방을 맞은 화순 탄광촌 사람들이 즉시 자치위원회를 건설하여 탄광을 직접 운영한다. 그러나 미군정은 자치위원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해산시킨다. 탄광은 미군정의 소유로 넘어가고, 광부들의 불만은 높아간다.

    그리고 1946년 8월 15일 광부들은 해방 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로 향하지만, 미군의 탱크에 의해 가로막힌다. 기념대회는 강제해산당하고, 너릿재에서 미군의 토끼몰이 식 진압에 수많은 광부들이 죽고 다친다.

    광부들은 미군정의 폭정에 항의하며 파업을 준비하고, 경찰은 노조 지도부들을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노조와 미군정간의 협상은 결렬되고, 광부들은 파업에 돌입한다.

    미군정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탄광촌을 포위한다. 광부들은 탄광촌으로 들어오는 다리를 폭파하며 격렬히 저항하고, 미군은 특무대를 투입하여 지도부 체포 작전을 벌인다. 파업은 완전히 진압당하고 살아남은 이들 중 일부는 빨치산이 되어 산으로 올라간다.

    ▶ 이 이야기를 왜 무대에 올리겠다고 생각했나.
    = 이 사건을 알게 된 건 7~8년 전이다.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는데 기구하고, 충격적이었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에도 짤막하게 이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언젠가 이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라디오 드라마로 썼다. ‘라디오 반민특위’라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1시간 40분 정도 방송했다. 공연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작년이 해방 70주년을 맞으면서다. 내가 속한 극단에서 할까 하다가, 우리 단원끼리만 하지 말고 뜻 있는 여러 배우와 스태프를 모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같이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아마 그 글을 본 사람들은 웃겼을 거다. “페이 없습니다. 변명도, 해명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올렸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 많이 몰렸다. 일주일 만에 50명인가. 그 이상은 책임을 못질 것 같아서 끊을 정도였다.

    스탠딩 뮤지컬 '화순'. (제공 사진)

     

    ▶ 지원한 배우와 스태프들은 이 사건을 알고 있던가.
    = 아는 사람도 있고, 이런 내용으로 한다고 하니 검색해 본 뒤 지원한 사람들도 있다. 밴드를 만들었는데 각자 자기가 조사한 자료 올리고, 같이 보고 그랬다.

    ▶ 본인들이 돈 안 받아도 괜찮다며 지원했다 하더라도, 연출자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 같은데.
    = 처음엔 고통스러웠다. 제작비도 없고, 솔직히 막막했다. 또 잘 먹이지도 못하니 너무 미안하더라. 조그마한 마약김밥이나 햄버거 먹이면서 공연장에 들여보내고 그랬다. 초연 공연장이 100석 규모로 좁았는데, 안에서 먹으면 냄새 나니까 공연장 밖에 일렬로 앉아서 식사했다.

    그래도 이들 중에 고생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행복한 기억들이 많다. 누구는 연습하러 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 먹을 것을 챙겨왔다. 누구는 목에 좋다는 차나, 한약사탕도 챙겨와 나눠먹고 그랬다. 다들 가족 같았다. 화순탄광사건이 마을 공동체 얘기인데, 우리도 연습하면서 그런 공동체가 됐다고 할까나.

    공연장 안이 비좁아 쉴 공간이 없어 밖으로 나온 배우들. (제공 사진)

     

    ▶ 그래도 ‘노 페이’ 제안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서 그런지 내놓을 것도, 아까운 것도 없고, 오히려 사념 없이 그런 제안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사람들 중에 돈도 안 되고 힘들지만, 자기 재능을 의미 있게 쓰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 공연 후 관객들 반응은 어떻던가.
    = 첫 공연 후 관객 반응이 너무 좋아 깜짝 놀랐다. 입소문이 퍼지고 다음 날부터는 미리 예매를 못 해 현장에서 발길을 돌리는 분들도 있었다. 관객들의 요청이 계속 들어와 앙코르 공연까지 결정했다.

    처음에는 의미 있는 공연 한번 한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두 번째 공연을 하려니까 조금 걱정되더라. 초연 때보다 객석도 2배이고, 사실 10월~11월이 연극 성수기라 공연이 많다. 그래서 배우들 빠지면 공연 못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모두 참여했다. 재공연 때도 매진이었다.

    ▶ 공연 후 배우들이 느낀 게 많았을 것 같다.
    = 우리가 연습할 때 많이 울었다. 장면마다 감정이 격해지니 많이 울게 되더라. 사실 일부러 울게 한 것도 있다. 공연 때 울지 말라고. 그런데 공연 때는 더 울게 되더라. 관객들 표정이나 눈빛에 닿으니 더 감정이 격해졌다.

    우리가 재공연이나 광주 지방 공연까지 가는 건 이런 것도 있다. 초연 후 관객이 보낸 박수에서 진심을 다하는 게 느껴졌다. 그냥 수고했다고 쳐 주는 박수가 아니란 걸 느꼈다. 관객 평에 이런 말이 있더라. “연기가 아니라 실제 그 사건에 있는 사람들 같다고.” 아마 배우들도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라 힘이 됐을 것이다.

    ▶ 공연 보도자료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이나 지금의 일본군 ‘위안부’ 사태가 자연스레 떠오르더라. 당시 광부들도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아닌가.
    =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부터는 작품을 쓰고 연출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세월호 생각이나 이미지가 들어간다. 이 작품 쓸 때도 그랬고.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용산참사도, 쌍용자동차 사태도 그렇고 얼마나 절망적인가.

    광부들도 그랬다. 첫 장면이 탄광 사고가 나서 광부들이 갇히는 거다. 탄광 밖 광부들은 안에 사람들 구하려고 애쓰는데, 관리자들은 “위에 신고했으니 조치할 거다. 기다려라”고 말한다. “허가 없이는 장비 못 쓴다”고도 하고.

    또 미군과 국방경비대가 탱크랑 수많은 병력을 보내서 탄광촌을 포위하고 진압하려 할 때 광부들이 느꼈을 절망감, ‘해방이 됐는데, 조국이 우리를 버렸구나’를 느꼈을 거다. 지금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건들이, 국가가 책임을 안 지고, 국민을 구하지 않으니까.

    스탠딩 뮤지컬 '화순'. (제공 사진)

     

    ▶ 그래서일까. 한국판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라는 평도 있던데.
    = 그런 느낌이 오나 보더라. 어쨌든 민중의 이야기이니까. 그래도 레미제라블은 외국 이야기이고, 러브 스토리가 감동적인데, 이건 우리 실제 이야기이니까 더 공감을 일으키는 게 아닐까.

    ▶ 배우 중에 아기가 있는 걸 팸플릿에서 봤다.
    = 이번에 돌이 된 아기이다. 최연소 배우지. 아기 엄마와 아빠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둘 중 한 명이 오르면 한 명은 아기를 봐야 할 텐데, 아기 엄마가 자기도 꼭 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아기도 함께 오르자고 했다. 화순 사건 때 아기도 있었을 테니.

    관객이 꼽은 명배우 박서인 군(오른쪽 아기). (제공 사진)

     

    그런데 연기를 참 잘한다. 밝고 신나는 장면 때 아기가 손뼉을 치더라. 그러면 관객도 같이 치고. 슬픈 장면에서는 아기가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면 관객도 울고. 관객들이 꼽은 최고의 명배우이다.

    ▶ 그런데 왜 스탠딩 뮤지컬인가. 관객이 서서 보는 건가.
    = 사실 우리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일반 뮤지컬은 동선을 많이 쓰는데, 우리는 잘 안 쓴다. 그리고 스탠딩 마이크를 무대 앞에 쫙 깔았다. 형식적으로 보면 일반 뮤지컬과는 많이 다른 거다.

    동선을 많이 안 쓰는 이유는 관객이 배우의 눈빛과 호흡 많이 보게 하려는 의도이다. 움직임이 많으면 사람들이 집중을 잘 못한다. 그리고 우리 공연은 주인공이 따로 없다. 집단이 주인공이라, 그 집단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야 했다.

    공연을 본 관객들이 일어나고픈 기분이 들게 하고 싶었다. “나도 동참한다, 나도 일어서겠다, 나도 변화를 이끌고 싶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 그럼 이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일어서자’인가.
    = ‘멋있게 살자’는 거다. 공연을 본 분들이 그런다. “계속 죽고, 쫓기고,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사람을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광부들이 “허나 이 비는 그치리라, 내일은 꼭 오리라, 이 밤 이 고통 이 슬픔 모두 지나가리라”며 노래를 한다. 절망의 끝까지 간 사람들은 일어서는 것 같이, 지금 우리 삶도 절망적이지만 뚫고 일어서자는 거다.

    단원들에게도 하는 얘기가 있다. “지금 세상이 내가 노력한다고 잘 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환상은 가지지 말고, 절망적 상황이라는 걸 뿌리까지 인정해라. 그러고 나면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은산철벽 같은 사회를 바꾸고, 뛰어넘자”고.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런 게 필요한 시기 같다.

    ▶ 공연을 통해 생각이 바뀐 배우들도 있을 것 같은데.
    = (휴대전화를 보여주면서) 김한봉희라는 배우가 이렇게 후기를 남겼다.

    “연기를 한 지는 6년 정도 됐는데, 대학로에서의 활동은 이제 막 1년을 넘기다 보니 앞으로의 제 활동에 대해 막막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화순’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어요. 연극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믿는데, ‘화순’을 통해서 그 힘을 확인했어요. 그 꿈을 함께 이루어 갈 많은 동료를 만난 것이 행복해요.”

    스탠딩 뮤지컬 '화순'. (제공 사진)

     

    ‘화순’ 배우들 중에 ‘마로니에 촛불’(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대학로 예술인들의 행동)에 참여하는 분들도 있지만, 안 그런 배우들도 있다. 그 친구들이 많이 바뀌었다. 한 번도 시위 안 나갔던 배우가 ‘화순’ 참여한 후에는 민중총궐기에도 나가고.

    작품도 작품이지만 예술운동의 측면도 있다고 본다. 우리끼리 있으면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투지가 없냐”고. 돈이 없다고 정신까지 쪼그라들지 말자는 거다. 이 시대에 예술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할지, 예술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 있는 일을 돈이 없다고 못하면 그렇게 묻히는 거다.

    ▶ 말이 나왔으니 묻는데, 이 시대에 예술의 역할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 돼야 할 때도 있고, 등불이 돼야 할 때도 있다. 거울이 반영이면, 등불을 밝히는 거다.

    내 개인적인 예술관인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서문을 보면 ‘인간의 진짜 척추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문장이 있다. 척추가 휘면 몸이 굽어진다. 부러지면 일어설 수 없다. 공연이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나는 ‘인간의 진짜 척추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침반이 바들바들 떨리면서도 극을 향하듯, 망설이고 겁이 나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을 택하는 그런 얘기를 많이 하고 싶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 세월호 의인이라는 분도 있고, 학생들 먼저 내보내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자기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준 학생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진짜 척추를 가진 사람’이다. 나는 예술이 그런 역할 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지금 시대에는 더 더욱.

    ▶ 각본을 쓰면서 어려운 것은 없었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라 자료도 부족했을 텐데.
    = 정부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화순탄광사건은 접수가 안 돼 있다고 한다. 신청한 사람도 없다고. 그래서 우리끼리 하는 추측인데 그분들이 싹쓸이 당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더라.

    살아남은 광부는 빨치산이 되고, 남은 가족은 좌익이 됐으니, 동네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려 하고, 보지 않으려 했을 것 같다. 그래서 공적 기록으로 남기에는 부족하고, 주로 구전으로 전해진다. 뮤지컬 ‘화순’은 팩션 드라마이지, 사실 그대로의 재현은 아니다. 기록이 없으니 오히려 상상력을 키우게 됐다.

    ▶ 서울 공연 이후 광주에서도 공연한다.
    = 원래 앙코르 공연으로 끝을 내려고 했는데, 올해가 ‘화순탄광사건’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딱 한 번만 더 하자고 했다. 그리고 광주에서도 또다시 해보자고 했다. 화순은 직접적인 아픔이 있는 곳이니 광주로 정했다. 광주 공연은 민주노총 광주본부에서 주최·주관겠다고 했다. 1946년의 광부들이 2016년의 광주 노동자를 만나는 거다.

    공연 후에는 배우와 스태프가 너릿재에 갈 예정이다. 너릿재가 극 중 주요 무대인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옛날에는 ‘널재’라고도 불렸다. 널이 ‘관’, 재가 ‘고개’라는 의미이다. 갑오 농민 전쟁 때에는 농민군들이 무더기로 처형돼서 관을 끌고 왔다는 곳이다. 광부들이 이곳에서 많이 죽었다. 광주항쟁 때도 그랬고. 역사적으로 아픔이 서린 곳이다.

    그리고 팽목항에도 찾아갈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광주’, ‘너릿재’, ‘팽목항’ 등 한국 현대사에서 의미가 깊은 곳을 가게 되는 것이다.

    스탠딩 뮤지컬 '화순'. (제공 사진)

     

    ▶ 그러면 이번이 마지막 공연인 건가.
    = 오늘(10일) 연습할 때 얘기할 건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할 거다. 언제 어떻게 하게 될지 모를 공연을 계속 하자는 것 아닌 것 같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