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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빨간 원숭이 해, '빨간 피터의 고백' 떠올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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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빨간 원숭이 해, '빨간 피터의 고백' 떠올리는 이유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은 암울했던 1980년대 ‘숨구멍’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인간화된 한 마리 원숭이로부터 인간의 부조리와 욕망, 문명에 대한 비판을 들으며 카타르시스와 위로를 받았다. 어두웠던 시대 말 못하고 끙끙대야만 했던 속앓이를, 원숭이의 장광설을 듣고 가라앉혔다.

    ‘빨간 피터의 고백’은 유신정권의 몰락과 신군부 독재의 서슬이 시퍼런 시절, 시민과 지식인, 대학생들에게 얼음장에 뚫린 숨구멍 같은 연극이었다. 폭력의 시대를 침묵으로 견뎌야 했던 시민들은 ‘빨간 원숭이’가 고매한 인간들을 향해 내뱉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원숭이를 우스꽝스러운 독재자로 혹은 어리석은 자기 자신으로 접목시켜 울화를 풀었다.

    ‘빨간 원숭이 피터’의 원작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원숭이는 아프리카 황금해안에서 사냥 탐험대의 총을 맞고 생포된다. 원숭이는 빠져나갈 구멍이 아무데도 없는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인간 세계에 적응하기로 결심하고 인간의 말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한다. 차츰 원숭이의 본성을 잃어가나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된 것도 아닌 ‘인간화’된 원숭이로 변한다. 밀림에서 잡혀와 서커스의 스타가 된 빨간 원숭이가 학술원 회원 앞에서 그가 ‘인간화’되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하고 좌절을 맛보았는지 보고한다. 그리고 문명사회와 인간세계에 대한 환멸을 쏟아낸다.

    1980년대 군인 출신 독재자는 ‘추송웅’이라는 연극인이 토해내는, 인간화된 원숭이가 주인공인 모노드라마가 자신들이 세우고 개조해가고자 하는 정의사회구현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불온한 사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예술이 지니고 있는 고도의 상징체계와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안개 같이 서려 있는 진실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빨간 피터의 고백’은 그러한 우매 덕분에 계엄령 아래서도 계속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군홧발에 짓밟혀 슬프기만 했던 시민들에게 ‘빨간 피터의 고백’은 묘한 위로를 줬다. 고도의 상징을 통해 폭력 국가에서 살아가느라 질식 직전인 시민들의 숨통을 열어주었다. 거세된 듯 패기를 잃어버린 대학생들은 삼삼오오 명동 삼일로에 있는 창고극장을 찾아왔고, 그 안에서 빨간 원숭이로 분장한 추송웅씨의 열연을 보며 위로를 받고 슬픔을 달랬다.

    “저는 근본적으로 늘 혼자였습니다. 함께했던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주변의 풍광에 불과했고 나무 울타리처럼 그저 멀찍이 서 있을 뿐이었으니까요"

    ‘빨간 원숭이 피터’의 독백처럼 객석에 앉아 있는 이들은 늘 혼자였고, 함께 했던 친구와 선후배들은 풍광에 불과했던 쓸쓸한 시절이었다.

    30여 년의 길고 긴 세월이 흘러온 지금 불쑥 ‘빨간 피터의 고백’이 그리운 것은 무슨 이유인가.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독재시절은 오래 전 옛이야기다. 지금은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나라를 통치하는 민주국가 시대다. 그런데 이 좋은 시절에 ‘빨간 원숭이’의 장광설이 듣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1980년대 군인 출신 독재자의 강철통치와 2015년 민간 출신 대통령의 독선정치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총으로 위협하지 않을 뿐 실은 더 무서운,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폭력과 위협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무대 위의 ‘빨간 원숭이’를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다.

    추송웅은 1977년 8월 20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서울 명동에 있는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빨간 피터의 고백’을 선보였다. 이후 8년간 총 482회에 거쳐 15만2천여 명의 관객이 찾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한 마리 ‘빨간 원숭이’가 무대 위에 올라와 장광설을 늘어놓는 동안 10,26 사건과 12,12 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이한열의 죽음 등이 깊고 무거운 강물처럼 소리 없이 흘러갔다.

    {RELNEWS:right}내년 2016 병신년(丙申年)은 ‘빨간 원숭이 해’다.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이 독재 권력의 폭력 아래 시민들의 숨통을 트게 해준 지 30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민주화를 이루었고 국민투표에 의해 대통령이 뽑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자부심도 지니게 됐지만, 고도의 정치력과 진화된 문명, 그러니까 감시·홍보·통제·조작·여론 등으로 시민들은 국가 혹은 정당 권력에 피로와 절망 그리고 분노를 넘어 좌절하고 있다.

    며칠 후면 2016년 ‘빨간 원숭이 해’다. ‘빨간 원숭이 해’에는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이 보고 싶거나 그립거나 하는 감정이 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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