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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한일청구권협정 위헌여부 판단 안해(종합2보)



법조

    헌법재판소, 한일청구권협정 위헌여부 판단 안해(종합2보)

    강제징용 미수금은 "시혜적 급부" VS "못 받은 급여" 엇갈려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한일 청구권협정 위헌 여부 선고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이 일본 측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른바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한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가 각하했다.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의 개별 사건이 구체적으로 한일청구권협정의 조항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 합헌인지 위헌인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헌재는 또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로금 등 각종 지원을 규정한 규정이 물가상승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불합리하다는 유족 등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 "한일청구권협정, 심판 대상 아냐"

    헌재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양국간 청구권 문제가 협정으로 종결됐다는 2조 1항 등에 대해 "심판 대상이 아니다"면서 23일 각하 결정했다.

    헌재에 따르면, 헌법소원은 ▲구체적인 사건의 존재 ▲위헌 여부가 문제되는 법률이 구체적인 사건의 재판에 적용 ▲법률의 위헌 여부에 따라 법원이 다른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요건을 채우지 못해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앞서 강제징용 피해자의 딸인 이윤재씨는 2009년 11월 부친이 받지 못한 금액을 정당하게 지급받게 해달라는 이유로 행정소송을 냈다.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가 부친의 미수금 5828엔을 1엔당 2천 원으로 계산해 1165만6천 원을 지급하자 낸 소송이었다.

    헌법재판소가 한일청구권협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한일 청구권협정 위헌 여부 선고를 마치고 나서는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 유족 신경분(83)씨가 취재진을 향해 선고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그런데 헌재의 이번 결정은 이씨의 소송이 한일청구원 협정의 위헌 여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봤다.

    헌재는 “한일청구권협정은 지원금 지원 결정의 근거규정이 아니고 당해 사건에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이 협정조항이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 한일청구권 조항은 두 나라와 법인을 포함한 국민의 재산·권리·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의 의무가 없다고 버텨왔다.

    ◇ 강제징용 미수금은 "시혜적 급부" VS "못 받은 급여"

    헌재는 이날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받지 못한 노무 제공의 대가를 1엔당 2천 원으로 계산해 지급하도록 한 규정에 대해선 재판관 6(합헌)대 3(위헌)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은 ‘미수금 피해자나 유족에게 일본이나 일본 기업 등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던 미수금을 1945년 당시의 일본국 통화 1엔에 대해 대한민국 통화 2천 원으로 환산해 지급한다’고 규정했다.

    보상이 시작된 1975년을 기준으로 1945년부터 1975년까지의 일본 소비자물가상승률인 149.8배에 1975년 당시의 엔화 환율인 1엔당 1.63원을 곱하고, 다시 1975년부터 2005년까지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인 7.8배를 곱한 수치인 1904원(약 2천 원)을 근거로 해 산출된 것이다.

    헌재는 "국외강제동원자지원법에 규정된 위로금 등의 각종 지원이 태평양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시혜적 조치"라며 "인도적 차원에서 지급하는 위로금임을 밝히고 있다"고 전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일청구권협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한일 청구권협정 위헌 여부 선고에 참석한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 유족 신경분(83)씨가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그러면서 "인도적 차원의 시혜적 급부를 받을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이라고 할 수 없다"며 "산정방식은 그 나름의 합리적 기준으로 화폐가치를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박한철·이정미·김이수 재판관은 "미수금 지원금은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돼 노무를 제공받지 못한 급료 등에 관한 것으로 전적으로 시혜적인 성격만 갖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국가는 피징용자 등에 대한 각종 지원 법률을 제정할 헌법상 의무가 있고, 지원금 산정도 마찬가지"라며 "1엔당 2천 원의 기준은 미수금의 현재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위헌"이라는 입장을 냈다.

    1945년 당시 1엔과 1원은 1:1 비율로 교환됐고, 1953년 대비 2007년 1인당 명목GDP 상승률은 약 1만 배, 1945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약 9만3천 배에 이르는 점 등이 고려됐다.

    앞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부인 김모씨는 2009년 미수금 270엔을 우리 돈 54만 원으로 지급받자 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와 함께 헌재는 귀환하지 않은 강제동원 피해자를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2항 a호에 대해서도 각하 결정했다.

    이 조항에 근거해 한일청구권협정 전까지 일본에 거주한 이들에 대해 위로금 지급을 제외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7조 제3호는 합헌이라고 헌재는 결정했다.

    헌재는 "이들에 대한 보상이나 지원은 1차적으로 일본 정부가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또 대한민국 국적이 없는 피해자를 위로금 지급대상에서 제외한 법 조항도 합헌으로 결론 내렸다.

    ◇ 6년 지나…결론은 無판단

    청구된 지 6년 1개월 만에 내려진 한일청구권협정 자체에 대한 헌재의 ‘판단 없음’ 결론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비판도 있다.

    훈시적 성격이지만, 헌재는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을 선고해야 한다.

    헌재 측은 이 사건의 심판 대상 여부를 비롯해 미수금 환산 규정과 유족 범위 등 대상까지 따지는 증거조사, 결정이 미칠 파급력 등을 검토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이와 별도로 현재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2012년 바뀌면서 사건 심리가 다소 지연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유족 이윤재씨와 함께 소송을 진행해온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이국언 상임대표는 헌재 결정 뒤 기자들과 만나 "착잡하고 아쉽다"며 "70년 기다려온 유족으로서는 한두 마디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헌재가 미수금에 대해 '시혜적 급부'라고 본 것을 한국 정부가 아닌 일본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해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정부에 피해자들의 공탁금을 현재 가치로 즉각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이행하도록 외교권을 발동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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