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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왜 조롱 당할까…'혐오'로 얼룩진 방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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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은 왜 조롱 당할까…'혐오'로 얼룩진 방송가

    [문화연예 연말정산 ⑦] 경쟁 밀린 男 탈출구…상식 밖 성평등 인식 눈총

    CBS노컷뉴스가 2015년의 끄트머리에서 올 한 해 문화·연예계를 달군 굵직한 사건들을 되짚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차곡차곡 모아 온 관련 자료와 정교한 시선으로 사건의 현재와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유병재·최민수·김미화와 함께 기록한 '세월호 1주기'
    ② 승자 없는 서울시향 사태, 남은 건 언론의 마녀사냥
    ③ 네 번 터진 '천만영화'…그 이면의 '양극화'
    ④ "빼앗긴 '볼 권리' 되찾자"…영화계·국회는 '불구경'
    ⑤ 가요계 덮친 '음원 사재기' 의혹, 그 뒷이야기
    ⑥ 왜 '쿡방' 보면서 배달앱을 누를까
    ⑦ 여성은 왜 조롱 당할까…'혐오'로 얼룩진 방송가
    (계속)

    (사진=SBS '한밤의 TV연예' 캡처 화면)

     

    #1. 지난 16일 방송된 SBS '한밤의 TV연예'에서는 가수 아이유와 윤아의 사진을 조작하면서, 신체의 앞뒤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식의 성희롱 발언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방송 직후 제작진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2. 지난 10월 13일 전파를 탄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여자 아역 배우가 성인 남성들로부터 윤간 당하는 장면을 내보내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이에 제작진은 "그 장면은 땅새(남자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으로 논란을 키웠다.

    #3. 지난 7월 10일 방송된 Mnet '쇼미더머니4'는 그룹 위너 송민호의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랩 가사를 여과 없이 방송했다. 며칠 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여성에게 성적인 모욕감을 주고 산부인과 의사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유감을 나타냈고, 제작진과 송민호는 사과했다.

    올해 방송가는 여성 혐오·비하 논란으로 얼룩졌다. 파급력이 큰 매체로서 방송이 지녀야 할 책임은 뒷전이었다. 위의 세 가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의 일각'이다. 논란이 불거지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해명으로 논란을 더욱 키우는 모양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하는 지금 방송의 태도는 상식 밖이다. 성평등에 대한 인식 역시 저급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는 "인터넷에서 큰 문제가 되는 여성 비하·혐오 문화를 방송이 걸러낼 생각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대중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는 방송윤리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방송은 사회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매체인 만큼, 방송 종사자들은 보통 사람보다 더욱 엄격한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하 씨의 설명이다.

    그는 "방송계에서 상식 밖의 여성 비하가 끊이지 않는 것은 종사자들의 사회·문화적인 소양이 부족하거나 이를 외면하는 상태에서 시청률에만 신경쓰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며 "이러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생기면 방송사에서 교육을 시키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징계를 하든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는 식의 해명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을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손희정 연구원은 "대중문화에서 드러나는 지배적인 사고방식을 문제삼을 때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반응이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는 것'"이라며 "예컨대 뚱뚱한 사람에 대한 농담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웃음은 뚱뚱한 사람을 비하하는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그저 농담일 뿐'인 농담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여성 주인공의 강간 장면이 꼭 필요했느냐'는 시청자들의 문제제기에 제작진은 '남성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필요한 설정이었다'고 대답했는데, 이런 경우는 대중문화에서 매우 흔하다"며 "남성 주인공의 어떤 변화를 위해서, 혹은 남성 중심 서사를 끌어가기 위해서 여성들은 그저 액세서리나 '사라지는 매개'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여성 혐오에 둔감한 방송…"제도적 차별·물리적 폭력 양산하는 선동행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포스터(왼쪽)와 그룹 위너의 송민호(사진=SBS·Mnet 제공)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와 혐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주대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강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현실에서 강자가 되지 못할 때, 감정적으로 자신을 강자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강하고 잘난 사람이 되려는 것인데, 약자를 찾아내 혐오하는 일이 발생하는 근저에는 '강한 자아'만이 용납 되는 시대적 환경이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강한 자아만이 용납되는 사회에서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얼마 안 되는데, 현실에서 강한 자아를 구성하지 못할 때 약자에 대한 혐오를 통해 상대적 지위를 얻는다"는 것이다.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 된 데 대해 노 교수는 "남성 입장에서 여성은 예전에 직접적인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최근 대학 진학률에서 여자가 남자를 앞지르고, 학업 성취도 면에서도 여자가 높다"며 "경쟁에서 탈락한 남성들이 취약하게나마 심리적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이 상태로 몰아낸 것으로 지목한 여자에게서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특히 "문제는 이때 여성에 대한 혐오의 근거가 '억지'로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여성에 대한 혐오는 경험적인 근거 없이 하나의 관념으로서 '나쁜 여자'를 만들어 두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여성을 재단하는 식"이라며 "흔히 말하는 '김치녀' '된장녀' 등은 여성의 실체와 관계 없는 허상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제대로 된 실체조차 없는 여성 혐오가 방송가를 배회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선정성을 좇게 된 방송'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최 교수는 "현재의 방송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시청률을 높이려 하는데, 이는 여성 비하·혐오를 상품화하고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행태로서, 방송이 할 일이 아니다"라며 "방송 프로그램이 많아져 경쟁이 심해지면서 선정성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는데, 공영성을 높이기보다 시청률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방송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공영성·공정성이라는 가치보다 경쟁에 매몰돼 있는 셈이다. 경영진은 아침마다 직원들을 불러 시청률을 들이대고 나무라면서 경쟁을 부추긴다"며 "여성 혐오 논란 탓에 시청자들로부터 뭇매를 맞더라도 시청률을 얻으면 면피가 된다. 현재 방송 종사자들의 가치관이 그렇다"고 꼬집었다.

    그는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내보내기 전에 시사회를 하는데, 여기서 문제의 소지가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경영진부터 담당 PD까지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방송의 여성 비하·혐오 문제를 개선하려면 보다 철저한 방송심의를 통해, 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에 대한 벌점을 강화함으로써 방송국이 직접적인 불이익을 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우리는 여성 혐오를 경계해야 할까. 손희정 연구원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하는, 곧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와 인식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여성 혐오는 그저 인터넷을 달구는 유희나 낄낄거리며 웃고 넘길 농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차별을 만들어 내고 물리적 폭력을 양산한다. 일종의 차별 선동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헬조선'을 살아가면서 정신승리하고 위안을 받기 위해 누군가를 혐오하는 행위는 서로의 서로에 대한 증오와 혐오만을 낳고, 실제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을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사회는 점점 더 악화될 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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