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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트라우마…애도가 절실한 이유



책/학술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애도가 절실한 이유

    [신간] '트라우마 이후의 삶'…"균열은 우리 삶에 변화가 만들어지는 지점"

    지난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선수쪽 선저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모두 침몰해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노컷뉴스)

     

    '배의 유리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들, 배의 끝자락이 바닷속으로 미끄러지듯이 사라지는 장면, 또 배가 사라지고 없는 곳을 중심으로 구조선들이 맴도는 장면들. 그 장면들 앞에서 인간이라는 지위에 대해 절대적 무력감을 느꼈고, 결국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에 응답할 필요가 있었다. (중략) 모든 애도의 출발점은 말하고 쓰는 과정이다.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더듬는, 늘 현재형이 될 수밖에 없는 과정.' - 신간 '트라우마 이후의 삶' 들어가는 말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8분,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일반인 탑승객, 선원 등 476명을 태운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울돌목에서 표류하기 시작한지 2시간 만에 침몰했다.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컸다. 단원고 학생 246명이 죽고 4명이 실종됐다.

    참사 뒤 1년하고도 8개월이 흘렀지만, 세월호는 여전히 차디찬 바닷속에 있다. 한국 사회는 "잊지 말자"고 끊임없이 되뇌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지겹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왜일까.

    신간 '트라우마 이후의 삶'(지은이 맹정현·펴낸곳 책담)은 정신분석학을 발판 삼아 참사를 기록하고 애도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지은이가 서울정신분석포럼에서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2014년 5월 19일부터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벌인 강의를 묶은 결과물이 이 책이다. '세월호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그 출발점이었다.

    지은이는 "트라우마는 우리가 지닌 통념과 믿음이 해체되는 순간에 출현하는 일종의 균열"이라고 설명한다.

    '트라우마는 주체성의 문제다. 단순히 폭력이나 전쟁과 같이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체가 그것에 대해 어떤 포지션을 취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중략) 예컨대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마치 자신의 삶이 연루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건의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죄의식이나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정머리가 없기 때문도 아니고 공감능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주체의 포지션 자체가 그 일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22, 23쪽)

    지은이는 트라우마를 탐구하는 두 가지 축으로 앞서 언급한 '주체의 포지션'과 함께 '언어와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말은 하나의 장막이어서 충격적인 현실을 감추면서 그 현실의 흔적이 남도록 한다. 그 흔적 덕분에 우리는 애도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본다면 트라우마적 경험이란 언어의 장막이 벗겨지는 경험과 다르지 않다. 언어의 장막이 벗겨지면서 우리가 무뎌져 있던 현실, 우리가 무감각해져 있던 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언어가 현실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고 그려낼 수 있는 것으로 구성한다면, 뜻밖의 순간에 벌어진 의외의 사건이 그것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고, 그려낼 수 없는 것으로 되돌려버린다. 언어의 마스크가 벗겨지는 경험, 탈상징화의 기능을 하는 뜻밖의 경험이 바로 트라우마적 경험이다.' (23, 24쪽)

    ◇ 트라우마 이후의 과제…"우리 삶에 최대한의 가능성을 되돌려주는 것"

    트라우마 이후의 삶ㅣ맹정현ㅣ책담

     

    결국 트라우마는 우리를 기억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 자신이 트라우마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우리를 기억하고 유령처럼 기습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이 유령을 만나는 것은 곧 애도가 실패했음을 의미하며, 그래서 유령은 늘 되돌아온다"고 전한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 곁에서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 그리고 시신을 찾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든 잠수부들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상을 잃었다는 슬픔일까? 그들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본 장면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연관이 있다. 자신이 마주쳤던 시선을 꿈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애도는 그렇게 자신들이 마주친 끔찍한 장면을 희석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다. 그들은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애도한다. 대상을 잃은 슬픔을 공유해야 한다는 대의가 없다면, 잠수부들은 차디찬 바닷속에서 죽음의 시선에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81, 82쪽)

    지은이는 "트라우마의 핵심은 단순히 나쁜 경험이 아니라 나쁜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반복한다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트라우마는 경험하는 자를 대상으로 만들어 집어삼키고, 우리가 믿는 현실을 파괴할 만큼 더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배의 침몰이 우리에게 트라우마가 된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사건 속에서 목도한 것은 바로 타자의 죽음이다. 애초부터 타자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이다. 트라우마는 바로 그 진실과 맞대면하도록 하는 불쾌한 경험이다. (중략) 트라우마적인 경험의 중심에는 바로 결렬이 있다. 타자에 대한 믿음의 결렬, 즉 뭔가를 알고 있는 타자, 우리를 구할 줄 아는 타자, 우리를 지킬 줄 아는 타자, 우리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타자에 대한 믿음의 결렬이다.' (97쪽)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에게 삶은 절박하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트라우마에 의해 삶이 잠이 되거나, 아니면 불면에 빠져 죽음만이 성공이 되는 삶,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 이후의 삶, '비참함'이라는 이름의 삶"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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