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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과를 둘러싼 YS와 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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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사과를 둘러싼 YS와 朴의 차이

     

    '비는 데는 무쇠도 녹는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솔하게 사과하면 아무리 완고한 사람이라도 용서함을 일컫는다.

    다양한 공과가 부각되며 현재 재평가작업이 한창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사과에 인색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꼽힐만 하다.

    1993년 2월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1년차부터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바로 쌀시장 개방문제였다. 1992년 대선때의 공약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을 막겠다"는 것. 그러나 2차대전 이후 40년 동안 국제무역질서를 지탱해온 가트(GATT) 체제가 사라지고 세계무역기구(WTO)를 출범시키기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의 거센 파고가 몰아닥쳤다. 10년동안 쌀 관세화 유예를 받긴 했지만 농산물 개방은 기정사실화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12월9일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국민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약속파기에 대해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고 양해를 구한 것이다. 담화에서는 사과와 죄송, 죄책감이라는 용어가 십 수번이나 사용됐다.

    문민정부 당시에는 유난히 사건·사고가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자고 나면 항공기가 추락하고 다리와 백화점이 붕괴되고 가스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해 국민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이 때문에 문민정부는 '사고공화국'이란 오명을 감수해야 했다. 93년 7월의 아시아나항공 보잉 737기 추락사고에 이어 그해 10월에는 서해 페리호가 침몰한다. 급기야 이듬해인 1994년 10월, 출근길에 성수대교가 무너져 직장인과 학생 등 수십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국민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그리고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당시 대형참사가 부실설계와 부실시공, 리베이트관행 등 70~80년대 압축성장기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건만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으로서 먼저 자신을 질책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한 것이다.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통령으로 불렸던 차남 현철씨가 정권 말 한보비리에 연루돼 1997년 2월 구속되기에 이른다. 부친이 대통령으로 재임중에 아들이 구속되는 당시로서는 사상 최초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자식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비의 속이 얼마나 쓰릴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그는 대국민 사과성명을 주저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 제 자신의 불찰입니다."

    20년이란 시차가 있지만 비슷한 사안을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어떨까.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기초연금이었다.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게 후보토론회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진 공약의 골자였는데 임기 첫해에 대폭 후퇴됐다.

    박 대통령은 2013년 9월 국무회의에서 "어르신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국민의 약속인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신념엔 변함이 없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부분들은 임기내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과 발언은 했지만 문제는 내용과 형식이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주겠다는 약속이 하위 70% 노인에게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대폭 수정됐는데 기자회견도 아닌 국무회의 석상에서 약식으로 사과하는데 그쳤다.

    뜻하지 않게 정권 2년차를 뒤흔든 건 세월호 참사였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박 대통령은 사고 발생 34일 만에 대국민사과를 했다. 사과는 진심이 전달돼야 본래의 의미를 지킬 수 있건만, 시기도 늦은데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직접 어루만지는데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컨트럴타워 부재를 드러낸 메르스 사태때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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