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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리덤' 보편적 가치 노래…'자유'란 복음적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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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리덤' 보편적 가치 노래…'자유'란 복음적 혁명"

    [노컷 인터뷰] 대한성공회 김근상 의장주교 "혐오로 물든 한국사회 떠올라"

    대한성공회 김근상 의장주교가 최근 서울 정동 서울주교좌성당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인류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자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아마도 흑인 노예를 대하던 당대 일반 백인들의 인식은 이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현재 다문화국가인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제3세계 사람들을 억압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 걸 보면, 영화가 자유를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전하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프리덤'(수입 CBS시네마)을 미리 본 대한성공회 김근상 의장주교의 감상평이다.

    영화 프리덤은 노예제가 존재하던 1850년대 미국의 흑인 노예 사무엘(쿠바 구딩 주니어)과, 그로부터 약 100년 전의 시간을 사는 백인 항해사 존 뉴턴(베르나르드 포처)이 시공을 초월해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최근 서울 정동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서 만난 김 의장주교는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물론 흑인들의 고통에 눈이 갔다"며 "그 시절 (노예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어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는 백인들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답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권이라는 문제로 보면 결국 복음이라는 가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극중 흑인 노예 사무엘을 맞이하는 목사님의 시선이 그 단적인 예죠. 다른 사람들을 막 대하던 그 목사님이 사무엘을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며 안아 주는 걸 보면서, 복음이 전하는 실질적인 가치는 상대를 어떻게 환대하느냐, 영접하느냐에 있다는 걸 새삼 떠올렸어요."

    극중 항해사 존 뉴턴(1725~1807)은 실존 인물이다. 그는 노예를 실어나르는 배의 선장을 맡고 있던 중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나온 뒤, 16세기 종교개혁 때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된 영국성공회의 신부가 돼 노예 해방 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김 의장주교는 "노예상에서 사제가 된 뉴턴의 경험보다는, '성서가 어떻게 그 사람을 바꿔놓느냐'라는 관점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영화는 과거 뉴턴이 흑인 노예만큼이나 정신적·육체적 핍박을 받았다는 흔적을 바닥에 깔고 있어요. 그러한 고통이 없었다면 뉴턴이 성서를 통해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제대로 받아들였을까요? 스스로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그분이 지닌 신앙적 성찰, 곧 고통을 씻김 받는 것이 복음의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차별의 고통 아는 데서 신앙적 성찰 시작…혐오문화는 극복 과제"

    영화 '프리덤' 스틸컷(사진=CBS시네마 제공)

     

    "뉴턴의 자기성찰은 차별에 대한 경험, 그러니까 그 차별의 고통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중요한 건 차별을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결국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본능적인 고민이겠죠. 영화 속 사무엘이 원초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면, 스스로 자유를 습득해 가는 길은 아닙니다.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제 경우에는 '이 땅을 살아가는 100만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라는 문제로 환치되더군요. 수백년 전에는 그들을 도우려면 이 영화에서처럼 비밀조직을 통해야 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충분히 도울 수 있는데도 돕지 않는 건 큰 범죄와 다름없습니다."

    김 의장주교는 이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엄혹한 세상에서 인종·계급을 초월해 흑인 노예를 돕는 비밀조직이 존재했던 데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자유를 이야기하는 성서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00년 전 종교개혁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성서를 통해 얻은 자극이었어요. 성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평등하다고 전합니다. 현실에서 군주로부터 핍박 받던 농노들에 대해 성서는 '옳지 않다'고 말했던 거죠.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1800년대 미국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던 이들 역시 성서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는 이렇듯 당대 부조리한 인식을 뛰어넘는 가치에 대해 '복음적 혁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노예제라는 부조리를 품은 영화 프리덤 속 세상은, 자기성찰 없이 타인을 공격하는 '혐오문화'가 자리잡은 한국 사회와 겹쳐진다. 김 의장주교가 이에 대한 해법으로 내놓는 것이 복음적 혁명이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 탓에 이상한 편견을 지녔어요. 그런데 우리는 절대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중국의 종 노릇을 하면서 살았기에 상당수 중국인의 피가 섞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죠. 우린 스스로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 등을 돌리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어요. 혐오문화는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 "획일화된 갈등 구도로 내모는 사회…있는 그대로의 가치 인정해 줘야"

    대한성공회 김근상 의장주교(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김 의장주교는 "지금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흔히 말하는 선진국 대열에 한국이 올라섰다는 말들이 나오지만, 제 눈으로 보면 결코 아닙니다. 전 국민의 5% 밖에 안 되는 장애인을 어떻게 보살피고 있느냐가 선진국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들이 불편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 전반이 신경을 쓰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람들을 획일화된 갈등 구조 안에 내버려 두고 있어요. '의사·판사가 돼 갑의 위치에 서야 한다'고 모두에게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셈이죠. 바람직한 사회 시스템은 평범한 삶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사람에게 갑의 위치로 올라가라는 대결 구도는 결국 큰 상처로 남기 마련입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다양한 입장을 볼 수 없도록 하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주요 방송, 신문들은 이미 현재의 역사교과서를 편향된 교과서라고 규정해 버렸어요. 대통령도 '비상식적인 역사관'을 지적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십수년 간 비상식적인 역사를 배우고 가르쳐 왔다는 말인 거죠. 이런 말을 하도록 만들면 안 됩니다.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생각이 있다면 대통령부터 손을 떼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학생들 잘 배운 것 같아요. 저도 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데, 역사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결국 학생들에게 가장 큰 애정을 가진 사람은 교사들입니다. 정치인들이 나서서 얘기할 게 아니라, 그러한 교사들에게 맡겨야죠."

    김 의장주교는 "이제부터라도 역사학자, 교사, 인문학자 등 전문가들을 모아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역사관을 만드는 길인지 토론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토론을 하려는 노력은 비단 역사교과서 문제에만 국한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지닌 가치 체계의 문제는 무한경쟁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아이들에게도 끊임없이 경쟁논리를 가르치죠.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토론 문화가 없어요. 국회에서도, 영수회담에서도 토론을 안합니다. 상대를 설득하는 게 토론이 아니잖아요. 토론을 하면서 울분을 토하더라도 잠자리에 들어 생각해 보면 상대를 이해하는 구석이 생깁니다. 그 다음날, 또 다음날 만나서 토론을 하다보면 접점이 만들어질 거라 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테니까요."

    {RELNEWS:right}김 의장주교는 영화 프리덤을 보게 될 관객들에게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잔잔한 감동에 젖어드는 느낌으로 관람할 것"을 당부했다.

    "이 영화에는 일반 상업영화가 지닌 선정성이 없죠. 소위 클라이맥스라고 말하는 걸 만들지 못한 게 약점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잔잔함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박약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충격, 쟁취 등의 자극에 익숙하도록 강요받고 있으니까요. 소나기가 지나간 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기대하는 분들은 프리덤에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그야말로 가랑비에 몸 젖듯이 잔잔한 감동이 이끌어내는 눈물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대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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