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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라는 허위의식과 싸우다… 39살의 자기 역사 쓰기



책/학술

    전라도라는 허위의식과 싸우다… 39살의 자기 역사 쓰기

    [신간]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

    사진 제공 = 교보문고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올해 39살(1976년생)의 저자 오윤이 자기 역사 쓰기를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기록이다.

    이 제목이 주는 인상 때문에 내용이 다소 무겁지 않을까, 다 알고 있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가졌지만 책을 잡은 후 진솔한 얘기에 빠져들어 단번에 읽기를 마쳤다. 그건 개인사에 가족사와 사회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사회 속의 개인, 인간 내면의 성찰이라는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리라. 저자가 살아오면서 피할 수 없는 환경, 즉 가족, 결혼, 고향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핀다. 아울러 선택의 기로에서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심리적 배경을 따져본다. 예컨대 학창 생활에서 학업과 취미활동의 선택, 연예과 결혼에서 여성의 선택, 진로와 직업의 선택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파헤친다. 과연 이러한 선택과 결정의 밑바탕에서 작동하는 힘은 무엇인가?

    저자는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도가 아버지 본인 뿐 아니라 아들에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아버지는 전라도 출신으로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대 중심의 주류사회에 끼지 못한 채 비주류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아들에게는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 주류사회에 낄 것을 희망한다. 그러나 아들은 고교 이전에는 전교 1등을 한 모범생이지만, 고교 시절엔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방송반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를 등한시한다. 이후 아버지의 설득으로 마음을 다잡고 서울지역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직장을 잡는다. 그러나 만족이 없다. 사회 구조적 문제 때문인가, 개인적인 문제 때문인가. 그 원인을 따져보고자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 쓰기에 수년간 매달린 끝에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짓눌렀던 아버지의 고향 전라도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그것은 타인의 시선에 의한 인정받기가 아니라 주체적인 당당함이었다. 그것을 깨치고 나서야 저자는 아버지 · 연인과의 화해, 아버지 고향과의 화해를 이루게 된다. 학업·취업 등 진로, 연애 · 결혼생활, 삶에서 방황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오윤의 자기 역사 쓰기는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전라도는 아버지 수혁에게 부정하고 싶은 공간이었고 아들인 내개는 도망치고 싶은 공간이었다. 전라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놀림 받고 차별당했다. 조롱과 차별의 벽은 탄탄했고 나도 아버지도 그 벽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중략)

    잊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전학 간 낯선 교실에서 남보다 눈에 띄기를 원했던 어린이, 전교 1등에 집착했던 중학생, 튀고 싶어 방송반에 들어갔던 고등학생, 지적 열등감 때문에 도서관을 오가던 대학생, 그들 배면에서 공통된 동인 타인들의 호감을 얻으려는 욕망이었다. 2009년의 내가 분주하고, 인정받고 싶고, 예스맨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285~286쪽

    "물론 이 변신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권력과 자본의 중앙에 편입되기를 욕망한다. 알 수 없는 죄책감, 불안, 인정받고 싶은 욕망 역시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새롭게 편입한 윤(저자 오윤)들이 변하지 않는 오래된 윤을 바라보게 되면서 지금 여기를 대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의 오늘은 자주 과거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거나, 그곳을 기반으로 살아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복원한 과거는 기껏해야 나, 아버지, 어머니 고작 백여 년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의 오늘은 우주가 생성되고 인류가 탄생한 수억 년의 이야기, 가족 너머에 자리한 무수한 윤들의 이야기를 등에 업고 있다. 앞으로 오윤이 만들어갈 삶의 이야기는 개인과 가족과 서울의 기억을 넘어 바로 그곳에서 창조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연인이었고 엄마였고 아내였던 반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2010년 겨울 그녀를 떠난 이후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들의 잠정적 결론으로 그녀는 내 가장 친한 벗이 되어 있다. 그 겨울 이후 나는 '자기 역사 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별의 원인이 그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음을 마음 깊이 인정하게 되었다." "-296~297쪽

    이 책 끝부분에 며느리가 전주로 학교를 옮겼다는 소식에 아버지가 며느리와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인상적이다. "<혼불> 읽어봤니? 한옥마을에 가면 <혼불>을 쓴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 한 번 같이 가자꾸나. 이 작가가 전주를 일러 꽃심의 땅이라 불렀다. 전주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운을 다해 꼿꼿이 버텨온 땅이라는 거다. 세상은 자주 이 꼿꼿함으로 비웃고 탄압한다. 나 역시 이 기운을 무시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돌아보니 분명 삶에 대한 좋은 태도이고 기운이다. 우리 아들과 며느리가 그곳의 꼿꼿함과 인간다움을 배웠으면 좋겠다. 너희들 때문에 한참 동안 발길을 끊었던 고향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 298~299쪽

    "나와 반야는 그 마음을 배우는 중이다,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온 전라도의 기운을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언제일수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주말부부 생활이 끝나고 다시 같은 공간에 살게 된돠면, 그 때 그 집에는 알 수 없는 불안, 죄책감, 인정에 대한 욕망, 사랑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한 뼘쯤 멀어진 새로운 인간이 자리하고 있기를 바란다.그리고 이 여백에 자리 잡은 것은 오직 하나, 티끌도 안 되는 어제의 기억과 정념으로부터 벗어난 좀 더 넓고 좀 더 자유로운 인간, 바로 오윤답고 그래서 오윤답지 않은 인간이다." -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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