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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에서 만난 감독] 난민 생활 700년…쿠르드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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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에서 만난 감독] 난민 생활 700년…쿠르드를 아십니까

    [노컷 인터뷰] 바흐만 고바디 감독 "무기 판 강대국, 난민 돕겠다고 나선 것은 게임"

    영화 '나라없는 국기'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우리는 바다에 휩쓸려 온 세 살 난민, 쿠르디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쿠르디의 국적은 시리아이지만 그 안에는 쿠르드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들에게 국가가 없는 상황은 가장 익숙한 슬픔이다.

    700년 전 나라를 잃고, 지금도 박해 속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는 민족. 쿠르드인들은 오랫 동안 네 국가(터키·이라크·이란·시리아)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왔고, 아직도 그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도에는 없는 '쿠르디스탄'(쿠르드인의 땅)은 네 국가의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쿠르드인이 밀집해 살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 이라크 쿠르드 난민캠프의 모습을 기록한 특별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감독 역시 이라크에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인이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이라크인이자 쿠르드인 최초로 세상과 소통하는 영화 감독이기 때문이다.

    영화 '나라없는 국기'의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2년 전 아이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러 난민캠프로 향했다. 그는 '난민캠프'를 '난민수용소'라고 칭했다.

    "처음 갔을 때는 영화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아마 실제로 그곳에 가보면 놀랄 겁니다. 아이들은 감옥 같은 곳에 살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학교나 TV, 책도 없이 땡볕에서 지내고 있으니까요. 100만 명의 아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영화인으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죠. 제가 영화 감독이지만 그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선생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가진 목표는 하나였다. 아이들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러다가 아이들의 삶 자체가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이 도시에 돌아가도 카메라를 어떻게 만지고 비디오를 어떻게 촬영해야 하는 지 알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언론이 기록하는 방식이 아닌,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세계와 나누고 공유하고 만들어 주는 게 제 목표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의 삶 자체가 장편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많은 예산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됐고, 상업적인 작업을 할 바에야 저희 특징을 영화 속에 심어넣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7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별을 준비하면서 감독도, 아이들도 한참이나 눈물을 쏟았다. 아직도 아이들은 그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서 각자가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봤어요. 카메라가 총이나 전쟁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예술의 도움으로 이런 생각이 세대와 세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죠.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좋은 영화를 소개하거나, 극장도 세우려고 하고 있어요."

    영화 '나라없는 국기'의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에는 쿠르드인 파일럿과 가수가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 난민캠프 쿠르드인 아이들에게 비행법과 음악을 가르친다. 처음 아이들에게 비행기는 전투기고 노래는 군가일 뿐이지만 두 사람으로 인해 서서히 변화한다. 전쟁의 상흔은 지독할지언정, 그 과정은 아프지도 비참하지도 않다.

    "비극으로 가려면 한 없이 비극적인 이야기죠. 그렇지만 영화를 힘들지 않게, 너무 울기만 하지 않고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저는 좋아요. 보는 동안은 영화 그 자체로 느끼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쿠르드인을 위해 싸우고 연대한다. 몇 번 스쳐지나가지만 만나지 못한 이들이 결국 마주치는 공간은 IS(이슬람국가)와의 전투를 위해 떠나는 군용트럭 안에서다. 사담 후세인에서 IS로 이어지는 박해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삶과 역사를 돌아보면 가끔 저는 괴로워요. 쿠르드인으로서 행복할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죠. 엄청난 고통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쿠르드인의 삶인 것 같아요. 행복했던 기억, 좋았던 순간은 거의 떠올릴 수 없어요. 밤낮으로 겪어야 했던 전쟁을 떠올리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파일럿이 비행기에, 가수가 뮤직비디오에 쓸 15m짜리 쿠르드 국기를 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상점에서 국기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들과 그는 서로 닮아 있다.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면 쿠르드가 아닌, 이라크 영화라고 써서 보냅니다. 그게 제 콤플렉스죠. 제 나라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명시할 수 없다는 게 굉장한 슬픔입니다.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터키는 쿠르드인을 몰아내려고 심한 공격을 하고 있고 이런 바보 같은 역사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없는 국기'라는 영화 제목은 바흐만 고바디 감독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쿠르드 민족의 역사적 비애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게 국기란 기억과 협동을 상징합니다. 원래 땅이 있으면 그 후에 국기를 만드는데 쿠르드 민족은 그게 반대가 된 경우죠. 국기를 먼저 만들고 꽂을 땅을 찾아간 경우니까요. 쿠르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제목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비애를 떠올리며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그게 제 역할이고 제 영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나라없는 국기'의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그는 쿠르드 민족을 '천막에 발을 잘못 디딘 소녀'에 비유했다. 국경 지역에 모여 살고 있긴 하지만 네 나라로 뿔뿔이 흩어져 점점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쿠르드는 어떤 곳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천막에 발을 잘못 디딘 소녀'같다고 답했죠. 그 소녀가 발을 헛디뎠기 때문에 다리가 다친 겁니다. 쿠르드는 네 구역으로 쪼개져 있습니다. 그 경계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나눠져 있어요. 세 가지 이상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와 정서의 차이가 다름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터키나 이란, 이라크에 가고 싶어도 정부는 받아주지 않습니다. 집이 없는 부랑자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정치적 발언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에 대해서는 '정치가 이면에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쿠르드인 중에서 이름이 노출되거나 알려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때문에 쿠르드인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발언할 기회도 별로 없죠. 사실 저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 영화가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역사와 정치가 이면에 있는 거죠. 정치가 항상 공격하기 때문에 쿠르드인인 저는 정치가를 싫어해도, 비극도 있고 벗어날 수 없는 문화적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비극을 지우려고 하고, 그게 잘 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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