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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받이'로 맺어진 모진 인연…늙어 벗이 된 두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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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받이'로 맺어진 모진 인연…늙어 벗이 된 두 여성

    다큐 영화 '춘희막이'…한 영감의 두 마누라 얄궂고도 가슴 찡한 46년 동행기

    다큐 영화 '춘희막이'의 주인공 막이(오른쪽)와 춘희 할머니. (이하 사진=㈜하이하버픽쳐스 제공)

     

    "아들만 하나 낳으면 보내 버리려 했지. 그랄 수가 없더라, 그랄 수가 없어. 내 양심에…."

    최막이(90) 할머니가 두 아들을 잃은 때는 마흔세 살. 1950년대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사라호 탓에 세상을 떠난 첫째 아들을 가슴에 묻은 뒤, 얼마 되지 않아 둘째 아들까지 홍역으로 잃었다.

    막이는 그때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였다. 그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스스로 남편의 둘째 부인을 물색했고, 당시 스물네 살이던 김춘희(71)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당시 춘희는 어린 시절 사고 후유증으로 정신연령이 8, 9세 정도로 멈춰 버린 상태에서 부모의 보살핌에 의존해 살고 있었다. 막이는 춘희를 둘째 부인으로 들이기 위해 9번이나 찾아가 춘희의 부모를 설득했다.

    춘희는 그렇게 후처로 들어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차례로 낳았다. 막이와 춘희의 남편은 그로부터 10년 뒤 세상을 떠났다. 숨을 거두기 전에 남편이 막이에게 남긴 말은 "춘희 잘 보살펴라"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막이 소생의 큰딸이 막이를 모시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춘희는 어떡하냐?"라며 거부했다. 그렇게 막이는 말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며 지금까지 46년 동안 춘희와 함께 살고 있다.

    ◇ 허리가 'ㄱ' 자로 꺾인 두 할머니…서로 의지하며 보내는 여생

     

    위 이야기는 오는 3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춘희막이'(감독 박혁지, 제작 ㈜하이하버픽쳐스)에 담긴 삶이다.

    영화는 '1960년대까지 씨받이는 흔한 일이었다' '아이를 낳은 뒤 돌아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라는 내용을 담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씨받이,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할 때 다른 여자를 데려와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대신 낳게 하는 일을 일컫는다. 아들을 선호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이 제도 안에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게 더욱 큰 몫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경우는 그 시대를 살아낸 영화 속 두 할머니에게도 오롯이 적용된다. 하지만 모진 인연은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깎이면서 '벗'이라는 이름으로 두 여성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한다.

    자신이 떠난 뒤 춘희의 삶을 걱정하는 막이의 모습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여생을 보내는, 허리가 'ㄱ' 자로 꺾인 두 할머니의 현재와 겹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극중 매일 저녁 힘겹게 늙은 몸을 씻은 뒤, 등 뒤로 말려 올라간 서로의 윗옷을 내려 주는 장면은 그 단적인 증거로 다가온다.

    ◇ '왜 이들은 같이 살까?'…4년 제작기간으로 길어 올린 삶의 통찰

     

    춘희막이의 연출을 맡은 박혁지 감독은 지난 2009년 TV 방송사에서 휴먼 다큐멘터리 2부작을 제작하면서 두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당시 2주가량 촬영을 하면서 일회성 방송으로 끝나는 것이 아쉬웠던 박 감독은 '왜 이들은 같이 살까?' '춘희 할머니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그렇게 2011년 12월부터 시작된 촬영은 이후 2년간 이어졌고, 총 4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작품이 완성됐다.

    촬영은 순탄치 않았다. 시골 노인들이 사는 현장은 늘 일상의 반복이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질 수도, 벌어질 리도 없었다. 그 안에서 찰나의 순간을 찍고 싶던 감독은 매일매일 두 할머니의 일정을 오전에 여쭤본 뒤 미리 동선을 파악하면서 시나리오를 짰다. 직관적인 판단에 따르는 수밖에는 없었던 셈이다. 이는 깊이 있는 통찰을 길어 올리며 값진 열매를 맺기에 이른다.

    이 점에서 카메라에 담긴, 마을에서 치러지는 한 주민의 장례 행렬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다. 다소 먼발치서 행렬을 지켜보는 그들은 "잘 가시소…" "좋은 데 가소…"라며 더는 말을 잊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힌다.

    오랜 시간 부대끼며 함께 산 이웃을 먼저 보내는 일이기에, 그것이 자신들에게도 머지않아 닥쳐 올 일이기 때문이리라. 이는 지금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를 반추하도록 돕는 미덕이다.

    ◇ 상반된 성격의 두 할매가 빚어내는 따뜻한 유머…"쉽고 평범한 진리"

     

    퉁명스러운 막이 할머니는 항상 해맑게 웃는 춘희 할머니를 구박하면서도 무심한 척 살뜰히 챙긴다. 두 할머니의 대조적인 모습은 일상의 유머를 오롯이 품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결국에는 남아 있는 이들이 매듭지어야만 할 인연의 끈은 그렇게 한 올 한 올 촘촘하게 엮여 온 셈이다.

    박 감독은 "시대가 그러해서 엮여 버린 두 여자의 일생은 대단히 일방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며 "그러나 결과적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두 여자는 오롯이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춘희 할머니는 사람들과 살이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남자와의 접촉은 지극히 꺼린다. 하지만 촬영을 모두 마치고 떠나려는 감독을 꼬옥 안아 주었고, 오랫동안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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