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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조선인을 죽여라" 90년 전 구호가 왜 이 시점에 나올까



정치 일반

    "불온한 조선인을 죽여라" 90년 전 구호가 왜 이 시점에 나올까

    [CBS 라디오 주말 시사자키 윤지나 ]

     

    ■ 방송 : 29일 CBS 라디오 FM 98.1 (토 16:00~18:00)
    ■ 진행 : 윤지나 기자
    □ 대담 : 역사문제연구소 후지이 다케시 연구원

    ■"좋은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모두 죽여라" 2013년 도쿄 신오쿠보 거리에서 벌어진 혐한 시위를 점령한 함성은 "죽여라"다. 현수막에는 90년 전을 떠올리게 하는 글자가 써 있다.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수천 명이 일본 군경은 물론 민간인들에게 학살당할 때 나왔던 말이다. 왜 지금. 왜 저 단어가. 여기서 오싹함을 느낀 저자 가토 나오키 작가는 학살 현장의 취재를 통해 '9월, 도쿄의 거리에서'로 엮었다.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역사문제연구소 후지이 다케시 연구원은 일본이 패전 뒤 전후 민주주의 체제를 마련하긴 했지만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외면한 채 시간이 흐른 것에 주목했다. 덮어지고 외면된 채 '건드리지 말아야 할 영역'으로 남은 역사가 자극을 받는 순간, 일본은 90년 전으로 순식간에 돌아가는 셈이다. 이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역사 문제를 푸는 것에서부터 접근하기 보다는 일본인 맹인안마사가 조선인 엿장수의 시신을 수습한 사례를 보듯, 개별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각은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바로 앞의 현실을 외면할 수 있지만 청각은 그렇지 않다. 상대를 비인간화하는 것에 저항하자는 것이다.

    ■신오쿠보 거리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알고 있는데. 그래서 재특회가 왜 거기서 그렇게 험한 구호를 외친건가.

    □원래 재일조선인이 많이 사는 동네지만 요즘은 오히려 한류 한국문화 소개하는 동네라는 설명이 더 맞다. 한류팬이 많이 다니는 동네이고 재특회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다. 한류팬은 매국노이고. 저자는 90년 전 섬뜩한 구호가 이 시점에 그대로 나온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90년 전으로 간토대지진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간토대지진 이후 90년이란 세월 동안 일본에서 많은 진전들, 그러니까 여러 논의가 있어 성숙한 측면 있지 않은가. 재특회 현상은 이를 역행하는 것인가?

    □역행이라기 보단 덮어놨던 것이다. 패전이후 일본이 많이 변하긴 했다. 소위 말하는 전후민주주의도 있고 평화헌법이라든지. 하지만 재일 조선인들은 이런 변화나 제도에서 다 배제됐었다.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이 대표적이다. 참정권도 없어서 80년대 들어 보장받았다.

    ■당시 조선인들이 학살의 대상이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차별의식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자기들보다 열등하니까 지배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919년 3.1 운동에서 ‘저항하는 조선인’을 본 것이다. 일본인들 입장에선 분명히 자기보다 아래에 있어야 되는 사람들이 대들었다 이 말이다. 또한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전쟁에서 활약했던 군인들이 재향군인회 소속으로 제대 후 지역에서마다 활동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람을 죽여본 경험도 있는 사람들이었겠지. 그들이 군과 경찰을 제외한 일반인 학살참여자라고 보면 되나?

    □기본적으로 군이나 경찰의 역할이 중요했겠지만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거기 가담했다는 것을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한다.

    ■심지어 어린이도 학살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그 순간을 '집단광기'라고만 설명하는 건 부족해 보인다.

    □단지 광기라고해도 안되고 일본사람의 특성이라고 해도 안된다. 이 비극은 폐허에서 비롯됐다, 모든 게 무너져 내린 데서 생겼다는 것을 봐야 한다. 어떤 사람이 가해자기 됐는지 보면, 책에서 필자도 묻는다. 학살이 왜 일어 났는가. 어떤 장면을 보여준다. 불타는 다리 아래서 칼을 든 한 남성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너네가 우리 다 죽인거지, 어서 살려내"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온다. 대지진, 화재 후에 일본이나 조선인을 떠나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느꼈던 막막한 상실감, 어딜 향해야 될지 모르는 증오심, 그런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감정들이 정부에 대한 폭동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치안을 담당했던 군과 경찰은 증오들을 약자를 향하게 만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이 2013년에, 실제 살인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수준의 적대심과 증오심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특회가 활동을 하는 시점에는 무엇이 방아쇠가 됐길래 그런 무시무시한 언어들이 나오게 된 것일까.

    □2013년이라는 시점에 주목하기보다, 그보다 앞선 시점을 봐야 한다. 일단 전후 민주주의가 서서히 붕괴했다. 결정적인 큰 계기가 된 것이 95년쯤이라고 본다. 오움진리교 사건(1995년 3월 20일 동경 지하철 지요다 노선외 2개 노선에서 오움진리교도에 의한 출근길 독가스 살포사건이 일어난다. 12명이 사린가스 중독으로 사망하고 500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사건 직후 13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을 겪은 뒤 ‘그런 인간들은 죽여도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생명, 인권에 예외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한번 그렇게 되니, 어떤 사람이 사회에서 위협적인 존재라고 인정이 되는 순간 그런 존재는 배제시켜도 된다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사형제 얘기가 다시 나오고, 결과적으로 낙인 찍히면 바로 배제시켜 버리는 세태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으로서, 한국과 일본 상황의 결이 좀 다르다고 볼 수 있는 측면 있나?

     

    □일본은 과거에 제국주의 국가였고, 간토대학살처럼 실제로 죽인 적이 있고. 그걸 일부러 외면한 역사가 있다. 지금 '조선인 죽여라'고 외치긴 하지만 실제로는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그랬던 역사가 있으니 굉장히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는 않다. 독재정권이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심 정도가 있다.

    ■이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우리가 재특회만 보고 일본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재특회를 보며 위기의식 느끼는 사람 많이 있다. 이후에 추모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그리고 무엇보다 책에도 있지만 그때 당시부터 조선인 보호하려는 사람들 있었다.

    ■책은 칼과 낫을 들고 조선인을 죽이는 상황에서 조선인 보호하려고 했던 일본인들은, 조선인과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구학영이라는 학살 피해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묘비를 세운 사람 중에 미야자와 기쿠지로라는 맹인안마사가 있었다. 구하경은 엿장수였는데 이 안마사가 길거리에서 만났었다고 한다. 이 안마사는 낭랑한 목소리로 "엿사세요~" 했던 엿장수를 기억 했던 것이다.

    ■내가 생명을 앗아간 사람이 나랑 같이 거리에서 있었던 사람이라는 인식만 있어도 조금 더 인간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다.

    □맹인안마사였기 때문에 어쩌면 가능했던 일이다. 외면 할 때는 눈을 감으면 되지만 귀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눈으로 볼 때는 일본인, 조선인 구별을 했겠지만 맹인안마사는 편견 없이, 외면 없이 조선인 엿장수를 본 것이었다. 결국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감수성의 문제에 가깝다.

    그리고 구별해야 될 것은 재특회를 조직하고 주도한 사람과 거기 그냥 가담한 일반적인 가담자는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각자가 가지는 개인적인 원한 같은 게 있었을 것이고 그건 개별적으로 풀어낼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걸 활용한 사람, 선동한 군이나 경찰의 역할은 다르다.

    ■예를들면 재특회의 열렬한 지지 받았던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쿄도지사(위안부 망언 등을 쏟아낸 대표적인 일본 극우 인사)가 됐다는 것에 한국인들은 충격을 받았었다. 일본 대중의 평균적인 한국에 대한 인식이 저런건가, 하는. 간토대학살 당시 군경이 일본 민중들을 선동했듯이 이런 정치인들이 재특회 같은 세력을 이용하는 건 알겠는데, 선거에서 지사가 되는 건 다르지 않나.

    □갈라진 틈이 있다. 일본인들 개별적으로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역사적 사건이나 정치적 문제와 관련되면 갑자기 변한다. '역사에 대한 외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간토대학살 같은 역사를 그동안 덮어 왔던 것. 역사가 여기서 그런 갈라진 틈을 만들어 낸다. 건드려서는 안되는 영역을 자극하면 그 옛날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그럼 풀기가 쉽지 않겠다. 역사 문제만 나오면 한일 관계는 경색국면으로 간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 차원에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개별적인 만남 등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각각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국가차원에서 할 수 없다. 만남을 반복하면 달라지는 부분이 있음. 그리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이좋게 지내자고만 하면 오히려 그 당시의 감정을 계속 덮어놓을 수 있다. 간토대지진 때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서 누군가를 죽였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이후에 어떤 식으로 수습 직시 사죄하는지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 가이드를 해 주신다면.

    □책의 앞부분 보면 지도가 있다. 어떤 지역에 대한, 실제의 구체적인 현장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은 과거의 것이지만 장소는 지금도 있는 것. 지금도 갈 수 있는 그런 장소에서 그런 일이 벌어 졌다는걸 생각하며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점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한국. 전쟁 과정에서 학살이 워낙 잦다보니 한국은 무덤 아닌 곳이 없었다. 60년대 이른바 조국근대화 과정에서 심하게 재개발이 이뤄진 것도 그런 역사를 덮으려고 하는 측면이 있다.

    ■간토대학살을 거울로 한국 상황까지 볼 수 있는 독법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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