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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인생 20년 이정현…'꽃잎'으로 수놓은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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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인생 20년 이정현…'꽃잎'으로 수놓은 '앨리스'

    [노컷 인터뷰] 영화 '성실한 나라의…'서 행복 찾아 세상에 맞서는 수남 연기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주연배우 이정현이 최근 서울 신당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배우 이정현(36)은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영화 '꽃잎'(1996)을 통해 잔인한 국가권력의 폭력 앞에서 넋을 잃어가는 소녀를 연기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감독 안국진)를 통해 오로지 '행복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메마른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는 여성 수남으로 분했다.

    영화 꽃잎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사이 20년의 간극은 한 여배우에게 어떠한 성장의 밑거름이 됐을까. 최근 서울 신당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현은 "그동안 연기에 무척이나 목말라 있었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꽃잎을 통해 연기의 맛을 느낀 뒤로 갈증이 컸는데, 들어오는 역할이 몹시 한정적이었어요. 그러던 중 테크노 음악에 빠졌죠. 가수 활동은 제가 좋은 곡을 받아서 콘셉트를 잡아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죠. 이후 중국에서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는데, 연기에 대한 목마름은 해소가 안 되고 그리움은 여전했죠. 긴 슬럼프였어요. '은퇴한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는데, 너무 속상했어요."

    이정현은 배우로서 다시 한 번 설 수 있는 힘을 준 사람으로 베를린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금곰상을 받은 '파란만장'(2010)을 통해 만난 박찬욱 감독을 꼽았다.

    "박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단편영화를 찍는데, 여주인공을 맡아줄 수 있느냐'고요. 전화를 끊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 뛰어다녔죠. 감독님도 연락하기까지 고민이 많으셨다더군요. 제가 연기를 그만둔 걸로 아셨던 거죠. 파란만장 덕에 '범죄소년'(2012) 등에 연이어 캐스팅 될 수 있었어요. 박 감독님은 항상 '연기해야 한다'고 말해 주셨어요. 멘토 같은 분이죠."

     

    ▶ 주연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어떻게 봤나.

    = 사실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될 때도 관객 반응을 살피느라 몰입하기 힘들었다. 영화 상영 뒤 "잘 봤다"고 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 시나리오를 한 시간 만에 읽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들었다.

    = 한국영화에서 여배우 원톱 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내용도 재밌을 뿐더러, 철저하게 여성 캐릭터가 혼자 극을 이끌어간다는 희소성에 끌렸다. 박찬욱 감독님이 칭찬을 아끼시는 분인데 "근래에 본 최고의 각본"이라며 출연을 권하셨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 순수와 잔혹의 경계를 허무는 수남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 흥미로운 캐릭터다. 한 여성이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이들을 응징하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초반 한 남자와의 사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만큼 로맨틱하면서도 아이 같은 여성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극중 수남의 글씨체도 실제 다섯 살 조카가 한글 공부하는 걸 보면서 접목시킨 것이다.

    ▶ 작업화를 신고 오래된 휴대폰을 쓰며 거리를 누비는 수남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감독님은 수남이 꽃무늬 옷을 입는 걸로 설정하셨었다. 캐릭터를 예쁘게 보이도록 배려해 주시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머릿속에 그려 온 수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 컸다. 첫 만남부터 그런 얘기하는 게 월권인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첫 촬영 때 "예쁜 옷을 입고는 촬영하기 힘들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 "생계 잇는 데 급급한, 외모에 신경을 쓰기 힘든 생활의 달인 같은 모습으로 가면 좋겠다"고 말이다. 감독님도 "같은 마음"이라고 하시더라. 바로 촬영을 한두 시간 늦추고 조끼 등 의상을 준비했다. 그런 식으로 현장에서 캐릭터에 대한 소통이 꾸준히 이뤄졌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사진=KAFA FILMS 제공)

     

    ▶ 약자에게 더욱 잔인한 사회를 무미건조하게 표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 처음 접했을 때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떠올랐다. 잔인하지만 카타르시스를 전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롤러코스터 타듯이 소리지르고 웃고 하시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다.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관객 반응에 감동받았다.

    ▶ 극중 수남이 자살을 기도한 남편을 붙들고 "살려 주세요" "도와 주세요"라고 오열하는 장면은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는 캐릭터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감독님이 컷을 끊지 않으시고 계속 이어가는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대사다. 베테랑 연기자들과 함께한 덕에 특별한 리허설 없이 한두 테이크 만에 찍을 수 있었다. 감독님 역시 배우들이 마음껏 열정을 뽑아낼 수 있도록 기다리고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점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다.

    ▶ 작품을 선택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나.

    = 연기자로서 각인될 수 있는 캐릭터를 맡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사실 지금 한국영화 안에서 여성 캐릭터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다. 독립영화의 경우 그러한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면이 있기에 끌린다. 여성 캐릭터가 부각된 '차이나타운' '암살'을 비롯해 곧 개봉하는 '협녀: 칼의 기억'이 잘 돼, 여성 캐릭터가 활약하는 시나리오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삶의 나락으로 내몰리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감정이입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

    = 의외로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뉴스에서 하우스푸어, 비정규직 문제 등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 않나. 제 친언니가 넷인데, 모두 시집 가 살면서 집 걱정, 돈 걱정을 한다. 주변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인들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행복지수가 몹시 낮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 이정현(사진=황진환 기자)

     

    ▶ 영화 속에서 교복을 입고 10대를 연기하는데 어색하지 않더라.

    = 촬영장에서 '교복을 또 언제 입어보나'라는 마음에 신나면서도 아쉽더라. (웃음) 저도 언젠가 늙을 텐데 10대 역할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 지금 빨리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맞춰가기보다 '나랑은 안 맞아'라는 생각에 쉽게 포기하는 것 같다. 제 일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 극중 수남 캐릭터는 순수하지만, 저변에 삶의 무게를 지닌 어두움도 지니고 있다. 이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도움을 줬다고 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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