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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그래도 용서한다"…위대한 '용서'의 힘



미국/중남미

    "힘들지만, 그래도 용서한다"…위대한 '용서'의 힘

    • 2015-06-22 06:26

    [특파원레터- 미국은 지금]

    총기사고 당시 모습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어떤 악마도 교회 문을 닫게 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기도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유서깊은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 교회가 21일(현지시간) 다시 예배를 시작했다. 나흘 전 한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기 난사로 무고한 흑인 9명이 숨진 뒤 첫 예배이다.

    교회 벽 곳곳에는 비극적 총격의 흔적이 여전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곳곳에 경찰이 배치됐다. 이번 총격이 흑인에 대한 증오 범죄로 드러나면서 또 다른 증오를 불러올 것이라는 불안과 긴장감이 고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찰스턴 주민들이 끔찍한 비극에 맞서는 방식은 달랐다. 힘들지만 슬픔과 분노를 용서와 화해, 치유로 승화시키는 위대함을 드러냈다. 인종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 사회의 새로운 모습이다.

    이날 예배는 "증오가 다른 증오의 씨앗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기도로 시작됐다. 총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이 교회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를 대신해 설교에 나선 노블 고프 목사는 "우리는 믿음을 갖고 이곳에 와 있다"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폭동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우리를 잘 모르는 것"이라며 믿음으로 악을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또 "기도만이 비극적인 상황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총격이 일어났던 바로 그 장소에 헌화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달랬다. 교회 밖에서도 수백명이 모여 예배를 함께 했다.

    오전 10시에는 찰스턴 시내의 모든 교회가 일제히 종을 울리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이매뉴얼 교회와의 강한 연대를 보여줬다. 희생자 유족들은 이에 앞서 찢어지는 아픔 속에 원수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총기 난사 사건의 피의자 딜런 로프에 대한 약식 재판이 열린 19일 유족들은 로프에게 한마디씩 말을 전했다. 유족들이 가해자에게 직접 얘기할 시간을 주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관례에 따른 것으로 대화는 화상을 통해서 이뤄졌다.

    처음으로 나선 한 희생자 유족은 마음의 고통을 추스르며 "나와 우리 가족은 너를 용서한다. 네가 우리의 용서를 참회의 기회로 삼아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유족은 "내 몸의 살 한점 한점이 모두 아프고 내가 예전처럼 살아갈 수도 없겠지만 하나님이 너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너 때문에 다시는 엄마와 이야기 할 수 없고 너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너를 용서하고 나도 너를 용서한다"는 말도 이어졌다.{RELNEWS:right}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족을 앗아간 살인범에게 건네는 용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 고통을 이기고 나온 묵직한 그 한마디는 미국 사회를 숙연케했다.

    언론들은 일제히 사랑과 용서, 화합과 치유의 현장을 생생히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폭력과 슬픔에 굴하지 않는 신앙의 힘을 보여준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끔찍한 비극 가운데서도 미국인의 선량함과 품위가 빛난다"고 말했다.

    좀처럼 풀리지 못한채 더욱 심각해지는 미국 인종 갈등.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찰스턴의 위대한 용서가 미국 사회의 가장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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