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간다 들어가 /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 캄캄한 어둠 뚫고 / 매캐한 연기 뚫고 / 앞 사람을 의지하고 / 뒷 사람을 챙겨주며 / 들어간다 들어가 / 건물 속으로 들어간다그렇게 들어간 건물 속은 / 완전한 암흑천지였다 / 공기는 흙먼지와 석면가루로 / 뒤범벅이었고 / 바닥은 온갖 백화점 상품들로 / 뒤범벅이었다한 걸음 걸으면 / 가스 냄새가 숨통을 막고 / 두 걸음 걸으면 / 돌가루가 쏟아져서 심장이 철렁하고세 걸음 걸으니 식은 땀 나고 / 네 걸음 걸으니 소름 끼치고 /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 용기내서 걸어가니잠시 후 /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처참한 광경들이 / 눈 앞에 펼쳐졌다 / 이곳 저곳에 매달린 사람들이며 / 이곳 저곳에 파묻힌 사람들이며 / 이곳 저곳에 부딪히고 그을린 흔적들이며 / 아이를 끌어안고 웅크린 엄마 / 두손 꼭 잡고 쓰러져 있는 부부 /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 된 학생들 / 그보다 더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 된 아가들 / 그리고 / 그리고
아아 / 어찌 이 광경을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 그이들은 하나같이 아무 말이 없는 채로 / 그렇게 / 안되겠다 / 우리 잠시 눈을 감고 / 그 분들을 위해 / 묵념합시다- 판소리 '유월소리' 中삼풍백화점 붕괴 20주기를 맞아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조선희)은 사고 당시 민간구조대의 실화를 담은 창작판소리 ‘유월소리’(소리 안숙선, 작 오세혁)를 오는 24일 오후 7시,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선보인다.
이번 작품은 당시 민간구조대원이었던 최영섭(57) 씨의 증언을 토대로 명창 안숙선(66, 국립국악원 예술감독)과 극작가 오세혁(34,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대표)이 제작한 판소리 공연이다.
안숙선 명창. (제공 사진)
‘유월소리’는 참사 당시 상황을 극명히 대비되던 지하와 지상의 소리로 표현해 낸다. 20년이란 시간이 흘러 삼풍백화점의 존재조차 아득해진 지금,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소리들은 과거의 아픔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무너진 백화점 지하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민간구조대가 내던 망치질 소리, 취재경쟁을 위해 뜬 헬리콥터 소리와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들의 소리 등 당시의 소리들을 명창의 목소리로 되살렸다.
목수였던 최씨는 장비가 부족해 구조 활동이 어렵다는 속보를 듣자마자 톱과 장비를 들고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는 “현장에 모인 민간구조대원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라면박스에 서로의 신상정보를 기록해두며 구조 활동을 펼쳤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최 씨의 생생한 기억들이 판소리의 주요 줄거리가 됐다.
◇ 서울을 기억하다 … '메모리인(人)서울프로젝트'
이번 판소리 공연은 서울문화재단 '메모리인(人)서울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드는 이 프로젝트는 서울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을 목소리로 채록해 사장될 수 있는 고유의 미시사적 스토리를 발굴하는 사업이다.
특히 지난해 8월부터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이라는 주제로 동화작가, 영화PD, 사진작가 등 15명의 기억수집가들이 유가족, 생존자, 구조대, 봉사자 등 100여 명의 시민을 만나 삼풍백화점에 관한 기억을 수집해왔다.
기억 수집 활동 사진. (제공 사진)
'메모리인(人)서울프로젝트'를 통해 수집된 100여 개 에피소드는 판소리에 이어 전시, 구술집 등 다양한 2차 문화예술콘텐츠로 제작된다.
오는 24일부터 7월 5일까지 시민청 시민플라자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시 ‘기억 속의 우리, 우리 안의 기억. 삼풍’(큐레이터 엄광현)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는 수집된 기억을 통해 서울의 아픔으로 남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돌아보는 한편,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시민들이 직접 기록하는 코너도 마련해 놓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