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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승엽을 걸렀을까' LG의 슬픈 선택



야구

    '왜 이승엽을 걸렀을까' LG의 슬픈 선택

    [임종률의 스포츠레터]

    '아쉽지만 포항에서' 삼성 이승엽은 5월 마지막 주말 LG와 잠실 3연전에서 아쉽게 사상 최초 400홈런 달성이 무산되면서 6월 첫 주중 3연전인 포항 롯데전을 기약하게 됐다.(잠실=삼성 라이온즈)

     

    '국민 타자' 이승엽(39 · 삼성)의 통산 400홈런 대기록 달성이 일단 한 타임 쉬어가게 됐습니다. 34년 KBO 리그 역사에 남을 전인미답의 고지는 그렇게 쉽게 허락되지 않더군요.

    이승엽은 5월 31일 잠실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LG와 원정에서 3타수 1안타 2사사구 3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전날 통산 399번째 아치를 그려낸 만큼 관심이 집중됐던 홈런 1방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회는 있었습니다. 이날 이승엽은 2회 첫 타석에서 큼직한 타구를 날려 관중석의 함성이 커졌지만 담장을 넘기지는 못해 탄성 또한 경기장에 가득 찼습니다.(전날 레터에 이승엽을 포함한 40대 베테랑들의 활약을 주목한 만큼 저 역시 기대를 했지만 진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경기 막판에는 더 아까웠습니다. 특히 8회 나온 장쾌한 타구는 탄식 그 자체였습니다. 맞는 순간 담장을 넘길 것을 직감했지만 아쉽게 오른쪽 파울 폴대 옆을 살짝 비껴갔습니다. 이후 이승엽은 제구가 되지 않은 LG 투수들의 공이 몸에 맞고, 볼이 돼 타격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게 넘어갔다면 논란도 없었을 텐데' 삼성 이승엽이 31일 LG전에서 8회 홈런성 타구를 날리는 모습. 그러나 폴대를 살짝 비껴가면서 아쉽게 파울이 됐다.(잠실=삼성)

     

    이를 두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LG가 일부러 이승엽을 거른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특히 이날 경기 전 "이승엽과 정상적으로 승부하겠다"는 양상문 LG 감독의 멘트와 맞물려 비난 여론이 거세게 형성됐습니다.

    이날 LG 투수들은 양 감독의 말대로 8회까지는 이승엽과 정면승부를 펼쳤습니다. 선발 헨리 소사와 이승엽의 승부는 2루타와 2루수 실책, 삼진이었습니다. 8회 좌완 신재웅이 이승엽을 맞히긴 했지만 앞선 투구에서 대형 파울 홈런을 맞은 뒤 전력으로 승부하려다 던진 실투였습니다. 고의로 승부를 피했다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이것보다는 9회가 논란거리입니다. 2사 2루에서 LG 네 번째 언더핸드 투수 신승현이 이승엽에게 던진 공 4개는 모두 바깥쪽 볼이었죠. 포수 유강남도 빠져 앉았습니다. 일어나지만 않았지 고의로 이승엽을 걸러낸 거나 다름 없습니다.

    LG는 3-9, 6점 차로 뒤져 패색이 짙었습니다. 사실상 승부가 갈린 상황, 여기에 앞선 타석 때 큼직한 타구를 날린 이승엽의 컨디션은 좋았습니다. LG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LG 구단은 이 승부에 대해 벤치 지시는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투포수가 이승엽과 이날 마지막 승부를 펼쳤는데 도망가는 투구로 볼넷을 내준 셈입니다. 하지만 올해로 4년차, 이날이 1군 통산 51번째 경기인 포수 유강남(23)이 대기록을 앞둔 타자에게 혼자 판단으로 이런 리드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차라리 일어나라' LG 배터리가 31일 삼성전에서 9회 2사 2루에서 상대 이승엽에게 4개 연속 볼넷을 던진 모습.(사진=스카이스포츠 중계 화면 캡처)

     

    분명한 점은 이 장면에 LG의 서글픈 현실이 반영돼 있다는 겁니다. 6점 차 열세, 단 한번의 공격만을 남긴 상황에서도 끝까지 승리를 포기하면 안 되는 절박한 처지입니다.

    이날 경기 전까지 LG는 3연패 중이었습니다. 4월까지 5할 승률을 간신히 맞췄던 LG는 30일까지 '-8'이었습니다. 이날도 진다면 주말 3연전을 모두 내주며 주간 성적 5할도 깨지게 되는 터였습니다. 주중 케이티에 거둔 2승1패 위닝시리즈가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 그만큼 승리가 절실했습니다.

    LG의 이날 선발은 에이스 소사. 연패 탈출의 특명을 안고 등판했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소사마저 4회 결정적인 내야진 수비 실책 속에 대거 4실점, 결국 5이닝 6실점(3자책)으로 강판됐습니다. 다만 LG는 6회 2점, 7회 1점을 내면서 3-6, 3점 차까지 따라붙었습니다. 8, 9회 대역전을 도모해볼 만했습니다.

    그러나 LG는 8회 3실점하면서 6점 차로 더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LG는 실낱같은 희망을 믿고 싶었을 터. 빅이닝이 속출하는 최근 KBO 리그에 1%의 가능성이라도 확인하고 싶었을 터. 비록 이날 그대로 지더라도 더 분위기가 처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을 터였습니다. 게다가 대기록의 희생양이 된다면 LG는 어쩌면 올 시즌 회생하기 어려운 심대한 타격을 입을지도 몰랐을 겁니다.

    이런 가운데 LG는 9회 수비에서 2사 2루 득점권에 몰렸습니다. 1점을 더 내주면 그야말로 치명타. 이승엽은 올해 좌투수에 타율 2할1푼1리였지만 우투수에 3할2푼7리, 언더핸드 투수에 3할8리로 강했습니다. 반면 다음 타자인 박해민은 언더핸드 투수에 9푼1리(11타수 1안타)로 약했습니다. LG 배터리의 선택은 이승엽 대신 박해민이었고, 유격수 뜬공으로 잡아냈습니다.

    '승현아, 네가 무슨 잘못이겠니' 삼성 이승엽(위)이 31일 LG전에서 9회 고의성 볼넷을 얻어낸 뒤 1루에서 쓴웃음을 짓는 모습과 LG 투수 신승현의 투구 모습.(사진=중계 화면 캡처, LG 트윈스)

     

    물론 양 감독은 경기 전 이승엽과 정면 승부에 전제를 달았습니다. "투수의 제구력이 떨어지거나 경기 흐름상 중심타자와 승부가 부담돼 볼넷을 내줄 수도 있다"면서 "이승엽을 상대로 볼넷이 나온다고 무조건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번 레터는 LG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대변할 목적이 아닙니다. 양 감독의 전제에도 LG와 이승엽의 9회 대결은 논란을 피하기 어렵고, 비난의 화살이 LG 쪽으로 향할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여기에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LG의 딱한 처지를 보태는 겁니다.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이승엽과 승부를 피해야 했던 LG의 상황, 가을야구에 나섰던 지난 2년 동안을 감안하면 너무나 서글프고 처량해졌습니다.

    이날 경기 후 양 감독은 "젊은 선수들에게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는 멘트를 남겼습니다. 주축들의 줄부상 속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LG, 이래저래 올해도 험난한 시즌 초중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날 궁지에 몰린 LG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어쩌면 올 시즌 쌍둥이 군단의 가장 '슬픈 선택'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때 승부를 할 걸 뒤늦은 회한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수도 있을 겁니다.

    '맞을 바엔 맞힌다?' 삼성 이승엽이 지난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말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날린 뒤 환호하는 모습(위)과 31일 LG전에서 8회 상대 신재웅의 공에 몸을 맞는 모습.(자료사진=삼성)

     

    p.s-전날 통산 399호 홈런을 날린 뒤 이승엽의 중계방송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400호 홈런이 중요하고 기대하고 있지만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슬럼프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급하지 않게 생각하려고 한다"는 의연한 답변이었습니다.

    31일 경기 후에도 이승엽은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9회 볼넷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이어 이번 주 펼쳐질 롯데와 포항 3연전에 대해 "어치피 홈 경기이고 포항에서 좋은 기억이 많아 긍적적으로 생각하고 내려간다"고 답했습니다.

    이승엽이 왜 국민 타자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인터뷰인 동시에 LG의 선택에 또 한번 슬픔이 밀려오는 대목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승엽은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터뜨렸던 상대팀이 바로 LG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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