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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네팔 교민들의 속마음 '긴급하지 않은 긴급구호품'



뒤끝작렬

    [뒤끝작렬] 네팔 교민들의 속마음 '긴급하지 않은 긴급구호품'

    인도네시아 쓰나미와 동일본 대지진, 중국 쓰촨성 지진 등 해외 대형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교민과 여행객 등 국민들의 안전을 걱정합니다. 이번 네팔 대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네팔은 히말라야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었음에도 세계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카트만두와 포카라 등 주요 도시를 제외하고 산등성이와 고지대 여기저기에 분포된 전통마을들은 이번 대지진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 교민들은 어떨까요? 네팔에는 선교활동과 비즈니스를 하는 우리 국민이 650명 정도 됩니다. 교민들은 다행히 수도 카트만두에 많이 살아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81년만에 네팔을 강타한 7.8 규모의 강력한 지진을 경함한만큼 교민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25일부터 공터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한 교민들은 여진이 올 때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자연재해인 지진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대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정확한 진앙지와 지진발생 시각도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고 지질학자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650여명 교민 중 절반 이상이 참여하는 '교민 카카오톡방'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오늘 강력한 지진이 예보됐다' '어느 지역에 몇시에 여진이 발생하니 밖에 나와 있으라'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난무합니다. 지진 직후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밤이슬을 맞으며 천막안에서 덜덜 떨었던 기억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겁니다.

    주네팔 한국대사관이 지진 발생 일주일째인 1일부터 교민들에게 긴급구호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사진은 2인 가족 분량으로 작은 담요와 손전등, 컵라면, 식수, 우의이 등이 포합됐다.

     

    주네팔 한국대사관은 불안해하는 교민들을 위해 1일부터 긴급 구호품을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구호물자에는 담요와 손전등, 우의, 컵라면, 생수 등이 포함됐습니다. 교민들은 반가워할까요? 적어도 카카오톡 방에서는 좋아합니다. 어떤 교민은 "6년을 네팔에 살면서 처음받아봤다, 대사관에 너무 고맙다" "대사관 직원분들 힘내시라" 등의 메시지를 남기며 반깁니다.

    하지만 길에서 만난 교민들 대부분은 고개를 젓습니다. "구호품을 주니까 고맙기는 한데 3, 4일간 밤마다 빈공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추위에 떨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일주일이 지나서야 구호품을 주면 뭐하냐"는 겁니다. 교민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카트만두도 본격적인 복구작업이 시작됐고 대형 수퍼마켓도 문을 열었습니다. 긴급 구호품으로 나온 식수와 라면, 손전등도 대부분 현지에서 구입이 가능합니다. 이마저도 수요예측을 잘못해 손전등과 라면 등은 지급 하룻만에 동이 났습니다.

    일부 교민들은 이번 지진 발생 직후 대사관의 대응에 아직도 불만입니다. 지난 2011년 네팔 동부지역에 규모 6.9의 지진이 왔을 때도 교민사회는 크게 불안해했습니다. 당시 대사관에서는 교민이 많이 사는 카트만두 구역을 9개로 나누고 지진 발생시 긴급 위기상황 전파, 교민 피해여부 즉각 파악 등 일명 '지진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비나약 콜로니' '씨빌 홈' '버인씨빠띠' '너쿠 촉' '싸네파' '자월라켈' '너키폿' '발루와딸' '껄렁끼' 등 9개 지역에는 상황전파를 위한 지역대표 교민까지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강진 때 대사관은 제대로 된 상황전파를 하지 못했고 오히려 교민들이 카타오톡을 통해 지진 피해 상황과 행동요령 숙지 등의 정보를 공유했다는 게 대부분 교민들의 말입니다.

    지진 발생 직후 네팔에 있는 한 교민이 주네팔 한국대사관에 대한 불만을 교민 절반 이상이 참여하는 카카오톡방에 토로하고 있다.

     

    대사관도 지진 관련 경고를 지역대표들을 통해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9명의 지역대표 중 2명은 현재 네팔에 살고 있지 않았고 일부는 카트만두 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 이웃들에게 위기전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일부 교민이 항의하자 대사관은 "교민들이 이사를 가거나 네팔을 떠나면 대사관에 알려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상황전파가 이뤄질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교민들에게 보고의무를 부과한 셈이지요.

    외교부는 전세계 국가에 대사관과 영사관을 설치해 교민안전과 행정편의 제공 등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특히 자국민 보호 임무는 대사관 전직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입니다. 대지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겠지요. 전세계 대사관 중 보호 대상인 교민이 6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교민 A씨는 지진 발생 직후 교민 카카오톡방에 "왜 우리 대사관은 교민들을 상대로 어디로 피신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고 밖으로만 나오라고 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교민 B씨는 "평소에도 대사관은 교민들과 접촉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장사를 오래 했지만 대사관 직원을 거의 못봤다"고 말했습니다. 교민 C씨는 "최근 대사관과 관련된 비판 기사가 나오니까 갑자기 카카오톡방에서 대사관 직원이 친절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고 꼬집었습니다. C씨는 "일본 친구한테 동네 공터에 천막을 치고 피신해 있다고 말하자 그 친구는 이해를 못하더라, 일본 대사관은 자국 교민들을 대사관 안과 인근으로 피신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외교부는 지난달 27일 교민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신속대응팀을 파견했고, 대사관도 한국으로부터 들어온 '긴급' 구호품을 나눠주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진발생시 행동요령이라는 안내문도 교민 카카오톡에 올리는 등 열심인 모습입니다. 지진 직후 히말라야에 갇혀 있다가 에베레스트산 입구인 루클라까지 간신히 빠져나온 한국 등반팀이 체코대사관이 나서는 바람에 체코등반대에 비행기 자리를 빼앗겼다는 CBS노컷뉴스 기사(1일자 '김홍빈 원정대장 "자국민 보호하는 대사관이 되길"')가 나가자 한국대사관도 바로 다음날 해당 지역에 헬프데스크를 설치하고 영사협력원을 보내는 등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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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많은 교민들은 대사관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교민은 얘기합니다. "교민 카카오톡방에서 대사관 직원들이 갑자기 친절해졌고 이에 고마워하는 교민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민들은 그냥 침묵하고 있을 뿐 대사관의 위기관리 능력을 믿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지진 발생 일주일 후가 아니라 교민들이 밤이슬을 맞으며 밖에서 떨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구호품을 지급했다면 어땠을까요? 지난 2011년 만들어진 '지진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또 어땠을까요? 국내 동사무소 민원대상자보다 적은 650여명의 교민들과 평소에 스킨십을 강화했다면 이런 불신이 생겼을까요? 교민들은 자연재해인 지진을 걱정하는 것만큼 인재(人災)인 대사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를 우려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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