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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 비친 '세상의 99%'…"단결하고 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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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에 비친 '세상의 99%'…"단결하고 연대하라"

    '노동절' 되새기는 영화…'내일을 위한 시간' '카트' '지미스 홀' '또 하나의 약속'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4.24 총파업 최종 현황 및 지역별 전국민주노동조합 총파업대회'에서 깃발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한국 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노동보다는 근로라는 말이 주로 쓰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바꿔 부르고 매년 5월 1일 돌아오는 '노동절'을 '근로자의날'로 표기합니다.

    '노동'과 '근로'라는 말 사이에는 묘한 괴리감이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고,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노동은 개인 혹은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심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측면에서 행위자의 능동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반면 근로는 '부지런히'라는 부사가 붙었을 뿐 행위자의 주체성을 느낄 수 있는 단서를 찾기 힘듭니다. 오로지 '어떤 일을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태도(부지런하다)'를 강조할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근로보다는 노동이라는 말의 뜻이 우리네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보다 의미 있는 가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로라는 말에는 우리가 심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로 하여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부지런히 일하기만 바라는 이들은 누굴까요?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날로 불러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은 또 누굴까요?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노동의 가치를 전하려 애쓰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5월의 첫날인 노동절을 맞아 최근 개봉했던 관련 영화 네 편을 소개합니다.

    ◇ "보너스 대신 나를 택해 줘"…'내일을 위한 시간'

     

    복직을 앞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에게 어느 금요일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와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투표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제보 덕에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되고, 일자리를 되찾고 싶은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가 설득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보너스를 포기하고 나를 선택해 줘"라는 말을 하기 어려운 산드라와 각자 보너스를 필요로 하는 사정이 있는 동료들. 산드라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그녀를 지지하는 동료들이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의 반발도 거세집니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을 결정할 기나긴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거장 다르덴 형제의 작품 '내일을 위한 시간'은 주인공 산드라가 전화를 받은 금요일부터 그녀의 복직을 결정할 재투표가 열리는 월요일까지 나흘간의 시간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려 온 탓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의 동료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하는 이 시대 노동자들의 처지가 오롯이 녹아 있습니다.

    산드라가 일을 그만 두는 대가로 동료들에게 주어지는 보너스는 1인당 1000유로. 우리 돈으로 치면 133만 원 정도인데, 16명 동료의 보너스를 모두 합하면 2128만 원입니다. "아시아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해서 위기"라고 말하는 사장의 입장에서 사람의 몸값은 고작 이 정도로 매겨졌던 것이죠.

    산드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1000유로를 뺏고 싶진 않아.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계속 일할 수 있게 나한테 투표해 줬으면 해"라고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동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영화는 재투표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산드라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특별한 기교 없이도 관객들로 하여금 묘한 긴장감을 갖게 만듭니다. 산드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관객 입장에서는 그녀의 복직을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겠죠. 극 말미 산드라의 선택과 대사는 우리에게 자연스레 이 시대 노동자로서,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도록 만듭니다.

    ◇ "같이 살자"는 벼랑 끝 우리네 가족의 외침…'카트'

     

    '카트'는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첫 상업영화입니다.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현실적이면서도 무겁지 않게 그리고 있죠.

    스크린에 비친 대형마트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루 아침에 외주용역으로 돌려 버립니다. 그 와중에 들려 온 "문제 있으면 법무팀에 문의해요"라는 한 간부의 말은 마치 '법은 우리 편이니까 아무 걱정 마'라는 선언처럼 느껴져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아침마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최면 같은 구호를 외쳐 온, 각기 다른 이유로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여성들의 꿈은 정규직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벗어나 자식들 급식비나 수학여행비 마련할 걱정도, 가스비 전기세 수도세 낼 걱정도 덜 수 있을 테니까요.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려 생계를 잇지 못할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대접 해달라" "함께 살자"고 외치는 일밖에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트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갑니다. 하루면 끝날 거라

    믿었던 점거농성은 법과 공권력, 그리고 언론매체를 등에 업은 사측의 버티기로 장기화됩니다. 사측은 "아줌마들이 해 봤자지"라며 그들을 마치 투명인간처럼 취급하고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을지도 모를 서로의 살아 온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농성장을 해방구로 탈바꿈시킵니다. 고도로 분업화되고 규격화된 일터에서 앵무새처럼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치던 때는 볼 수 없던 웃음꽃이 그들의 얼굴에 피어난 것도 그러한 이유였겠죠.

    카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용불안에 내몰리게 된 마트 정규직 노동자들의 합류, 농성장에 발이 묶인 가장의 부재 탓에 막막해진 생계를 잇고자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 자식들의 처지까지 비추며, 이것이 단순히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부각시킵니다. 고용불안이 일상이 된 이 시대에 노동 문제는 특정 부류가 감당해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걸린 화두로 떠올랐다는 점을 들춰내는 셈이죠.

    ◇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공감의 정서 '노동'…'지미스 홀'

     

    20세가 초 대공황으로 혼란에 빠진 뉴욕을 떠나 십 년 만에 고향 아일랜드로 돌아온 공산주의자 지미(배리 워드).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향과 연인마저 등져야 했던 그의 귀향으로 조용했던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청년들은 지미가 경험했던 자유로운 세상을 동경해 왔기에, 자신들이 마음껏 춤추고 즐길 수 있도록 마을회관을 다시 열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결국 지미는 왕년의 동료들과 힘을 모아 모두가 함께 웃고 떠들며 문학과 음악, 미술을 배우고 함께 춤출 수 있는 공간을 다시 엽니다.

    하지만 변화를 위험하게 여긴 마을 신부와 기득권층이 지미와 동료들을 몰아세우면서 마을회관은 또 다시 없어질 위기에 처합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지미스 홀'은 1920, 30년대 이념적으로 혼란을 겪던 아일랜드의 광경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극중 지미가 운영하는 마을회관은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춤을 추고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고 복싱을 배우고 토론을 합니다. 소위 남녀노소, 계급 구분 없이 공동체를 꾸려가는 '해방구'라 불리는 공간인 셈이죠.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신부와 마을 지도층들은 청년들이 모여 노는 일을 위험한 일로 규정합니다. 이들은 지미와 청년들을 '적그리스도' '빨갱이'로 몰아붙입니다. 이들은 급기야 마을회관에 불까지 지르죠.

    켄 로치 감독을 접해 온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전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그려진, 신념 때문에 형제를 총살하는 절망의 순간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미스 홀 역시 신구세대, 보수와 진보,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시대를 그렸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에 있죠.

    이 광경은 작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잘 그려진, 해방 직후 한반도의 모습과도 몹시 닮아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모순이 지금의 남북 분단 상황으로까지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모순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지미스 홀이 그려낸 아일랜드의 정서가 우리의 그것과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 '권력의 째찍'에 저항하는 '함께의 힘'…'또 하나의 약속'

     

    강원도 속초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상구(박철민)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 윤미(박희정)가 대기업에 취직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대학에 못 가는 것이 속상할 법도 하건만 "빨리 돈 벌어 아빠 차도 바꿔 드리고 엄마 용돈도 드리고 남동생 대학 공부도 시키겠다"는 딸이 상구는 마냥 기특할 따름이죠.
     
    그러한 딸 윤미가 입사 20개월 만에 큰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반도체 원판을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궜다 빼는 작업을 하던 딸의 병명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한 가닥 희망을 걸고 큰 병원에 입원하지만, 치료가 쉽지 않은데다 비용 부담도 상당해 상구 가족의 좌절감은 커져만 갑니다.
     
    윤미는 10만 명에 한 명꼴로 걸린다는 백혈병인데, 자신이 일하던 반도체 공정 라인에서만 5명이 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빠집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2007년 스물셋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와 그녀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자 애써 온 아버지 황상기 씨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입니다. 사람을 한낱 기계 부품으로 취급하는 비뚤어진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에 선 평범한 한 가족이, 희생양에 머물지 않고 이에 맞서게 되는 여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죠.
     
    한 곳에서 일하던 노동자 여러 명이 특정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는, 마치 도시괴담과도 같은 실화를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은, 생산성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최소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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