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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신문지 크기의 햇볕과 신영복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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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론|신영복|돌베개|18000원|428쪽

    성공회대 석좌교수인 신영복 선생이 동양 고전에 담긴 사상들을 인간을 중심에 두고 풀어내 '담론'이라는 신작을 내놓았다. 지난 2004년 출간된 '강의' 이후 10년동안 더욱 깊고 풍부해진 '나의 동양고전 독법'인 셈이다.

    ◇ 통일은 대박?…통일(統一)이 아닌 통일(通一)

    신영복 선생은 이 책에서 논어의 '화동(和同)' 담론을 현대의 문맥으로 다시 읽어낸다. 우리 시대의 대세인 패권적 구조를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인 반면 동(同)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이다. 엄청난 파괴와 살상으로 점철되는 강대국의 패권 구조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화동 담론은 우리나라의 '통일 담론'으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선생은 통일(統一)을 '通一'이라고 쓴다. 평화 정착과 교류 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通一'이다.

    하지만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근본적으로 '동(同)의 논리'라고 비판하다. 또 민족의 비원(悲願)이며 눈물겨운 화해를 '대박'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은 지극히 경제주의적 발상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말처럼 통일이 대박처럼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때 그것은 오히려 파탄이고 충격일 것이라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다.

    '시경'에서는 '문사철'이라는 완고한 인식틀에서 벗어날 것을 조언한다. 문사철은 언어, 개념, 논리 중심의 문학서사 양식이다. 이것만으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온전히 담을 수도 없고 온당하게 인식할 수도 없다. 넓은 바다를 '바다'라는 글자에 넣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시(詩)는 서화악(書畵樂)과 함께 감성 영역에 속한다. 시적 관점이 최고의 대안은 아니지만 문학서사 양식의 완고한 틀을 반성할 수 있는 훌륭한 관점이다. 그리고 문사철을 통한 '추상력'과 시서화악을 통한 '상상력'을 나란히 키워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사람은 그 사람의 관계망 속에서 살펴야"

    선생은 '주역'을 설명하면서는 한 사람을 온전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망 속에서 그 사람을 살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선생은 감옥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를 쉽게 설명한다. 동베를린 사건으로 투옥됐던 고암 이응노 선생은 제소자를 수번(囚番)으로 부르지 않고 늘 이름으로 불렀다. '응일(應一)'이라는 이름의 제소자에게는 "뉘 집 큰 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이라고 하셨다.

    '주역'의 관계론이 인식틀로 작용할 경우, 숫자로 인식되던 사람이 '뉘집 큰아들'이 된다. 이것은 큰 차이다.

    선생은 대표 저서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글들이 하나같이 반듯하고 차분한 이유도 설명했다. 이 책은 가족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모은 것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편지가 검열을 거쳤기 때문이다.

    선생은 또 이 책 '담론'에서 20년 20일 동안의 감옥생활을 자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와 교도소에서 만난 많은 제소자들이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신영복 선생은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그 이듬해인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2006년 정년 퇴임 후에도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강의를 계속했으니 거의 25년간 대학 강의를 한 셈이다.

    하지만 선생은 2014년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학 강단에 서지 않는다. 선생은 "강단에 서지 못하는 미안함을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신영복 선생의 글과 강의를 사랑했던 독자라면 '담론'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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