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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 세밀화 20년…"살아있는 장수하늘소 그리고파"



책/학술

    동식물 세밀화 20년…"살아있는 장수하늘소 그리고파"

    [그림책 작가로 산다는 것]⑥ '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 권혁도

    두고두고 볼 만한 좋은 그림책이 많다. 하지만 '그림책은 어린이용'이라는 선입견이 많고, 대중에게 그림책을 알릴 수 있는 자리가 적어 좋은 그림책이 그대로 묻힌다. CBS노컷뉴스는 창작 그림책 작가를 릴레이 인터뷰한다. [편집자 주]

    기사 게재 순서
    ① '진짜 코 파는 이야기' 이갑규
    ②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 김영진
    ③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김영란
    ④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박연철
    ⑤ '꽃할머니' 권윤덕
    ⑥'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 권혁도


    올해로 꼭 20년 째 동식물 세밀화를 그려온 권혁도 작가. 올해 곤충도감 작업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사진=문수경 기자

     

    "봄이 되면 어김없이 제비들이 집을 짓고, 텃밭에서 콩잎을 먹던 아기 산토끼가 마당으로 불쑥 들어오는 날들이었다. 함박눈이 수북이 쌓이는 밤이면 산에서 노루가 내려와 송아지 옆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세밀화로 보는 꽃과 나비' 중)

    권혁도(60) 작가가 기억하는 경북 예천 고향의 모습이다. 작가는 경기도 남양주 집의 거실 겸 작업실에서 각종 동식물을 키운다. 한 켠에는 산초나무와 탱자나무 화분이 놓여 있고, 다른 한 켠에는 왕잠자리 애벌레가 물속을 헤엄치고 있다.

    작가가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맑은 물을 떠놓고 일상에 감사하는 예불을 드리는 것이다. 대화하는 내내 그에게서 작고 하찮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꼬박 20년간 동식물을 세밀화로 그려온 작가의 꿈은 뭘까. "살아있는 장수하늘소를 꼭 그리고 싶어요."

    ▲ 동식물 세밀화 작업은 언제 시작했나

    1995년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을 그리면서 시작했어요. 6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국내에서는 처음 제작하는 토박이 곤충에 관한 세밀화 도감이라 저도 편집자도 힘들었죠. 도감은 사전이나 마찬가지에요.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곤충을 일일이 채집해서 관찰하고 돋보기로 들여다 보면서 그렸어요.

    세밀화 작업한지 올해 꼭 20년 됐네요. 출판사에서 삽화를 그리고, 시간강사로 미대에 출강하다가 모두 접고 마흔에 곤충도감을 시작했어요. 세밀화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망설임이 많았지만 고민 끝에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했죠. 한 가지 일을 30년간 지속한다면 내 삶이 헛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올해부터 10년 계획으로 곤충도감을 다시 만들 거에요. 저의 첫 세밀화 작품이 곤충도감이기도 했고, 부족한 내용을 보완해서 좀 더 완벽한 도감을 만들고 싶어요.

    ▲ 2003년 그림책 '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을 펴냈다. 사계절의 변화 속에 자연과 곤충의 생태를 생생하게 펼쳐 놓았는데

    앞서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은 곤충의 생김새나 생태를 주로 글로 풀어냈어요. 도감 작업하면서 관찰한 곤충의 다양한 생태를 아이들에게 알기 쉽게 보여주고 싶어서 '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을 펴냈죠. 도감 만들 때 찍어놓은 사진이 많아서 이 책은 1년 반만에 완성했어요.

    '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 42~43페이지는 눈 내리는 겨울, 넘어진 통나무 속에서 겨울을 나는 곤충들을 보여준다. 나무 속은 사슴벌레 애벌레, 하늘소 애벌레, 별쌍살별, 버섯벌레 등 많은 곤충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 준다.

    ⓒ 권혁도 글·그림,《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 길벗어린이

     

    "썩어가는 통나무를 몇 년에 걸쳐 관찰한 후 이 장면을 그렸다"는 작가는 "통나무는 쓰러져 썩어 가면서도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다. 곤충이 알을 낳는 장소가 되고, 애벌레를 키워내는 먹이가 된다. 다른 식물한테는 거름도 된다"며 "세상 모든 만물은 서로 얽혀 기대어 살아간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했다.

    ▲2009년 펴낸 그림책 '세밀화로 보는 꽃과 나비'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꽃과 나비의 색깔이 화려하고, 봄형과 여름형 나비, 암컷과 수컷 등을 구분하는 등 정보가 풍성하다

    완성하는데 5년이 걸렸어요. 꽃과 나비는 일일이 자로 재어 보며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실제 크기로 그렸어요. 나비 97종과 꽃 160종의 생태를 한 권의 책에 담았는데, 직접 관찰하지 못한 것들은 표본을 참고해서 그렸죠. 계절마다 어떤 꽃과 나비가 어우러져 살아가는지 한 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어요. '이 맘 때쯤 어디에 가면 어떤 것을 보겠구나' 아는 거죠. 3월 26일로 시작해서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 새로운 봄으로 끝나요.

    ⓒ 권혁도 글·그림,《세밀화로 보는 꽃과 나비》, 길벗어린이

     

    이른 봄이다. 얼음이 녹아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가장 먼저 생강나무가 잠을 깬다. 낙엽 밑에서 번데기로 숨어 있던 애호랑나비도 진달래꽃을 찾아온다. 호랑나비, 쇳빛부전나비, 각시멧노랑나비 등 겨울잠을 잤거나 번데기 속에서 봄을 기다리던 나비들도 보인다. 봄은 보이지 않게 천천히 모든 생명들을 깨어나게 한다.

    ▲ 호랑나비, 배추흰나비, 사마귀, 왕잠자리 등 곤충과 나비를 직접 기르며 관찰한 내용을 다수의 그림책으로 펴냈다. 기르는 과정에서 무엇이 힘들었나

    왕잠자리를 기를 때는 물고기와 올챙이, 사마귀를 기를 때는 메뚜기를 잡아서 먹이로 줬어요. 왕잠자리와 사마귀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잡아먹는 모습을 보면 제가 살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죠. 길앞잡이(개미귀신)는 두 번 길렀는데 모두 실패했어요. 한 번은 먹이가 안 보이길래 급한 마음에 파리를 탁 잡아서 줬는데 알고보니 기생파리였어요. 오히려 길앞잡이가 먹힌 거죠. 또 한 번은 애벌레와 개미를 수시로 잡아서 먹이로 던져줬는데, 살생하는 게 싫어서 채소밭에 구멍 뚫고 놓아줬어요.

    배추흰나비 애벌레 가운데 절반은 배추벌레살이고치벌 애벌레한테 기생당해요. 배추흰나비 애벌레 몸속에서 고치벌 애벌레가 우글우글 나오는 모습은 정말 끔찍해요. 고치벌은 생존율이 95%인 반면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기생당한 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죠.

    권혁도 작가가 집에서 키우는 곤충들. 홍점알락나비, 산호랑나비 번데기, 왕잠자리 애벌레(좌로부터) 사진=문수경 기자

     

    집에서 기르던 애벌레가 나비가 돼서 날려보낼 때도 유념할 점이 있어요. 꼬리명주나비는 근처에 짝짓기가 가능한 동족이 있어야 하니까 꼭 애벌레를 데리고 왔던 곳에 풀어놓아야 해요. 홍점알락나비는 참나무 수액을 먹고 살기 때문에 수액이 나오는 5~6월에 나비가 될 수 있게끔 화분의 온도를 조절해줘야 하고요.

    ▲ 최근 '배추흰나비 알 100개는 어디로 갔을까'를 펴냈는데

    나비의 한살이를 관찰하기에는 배추흰나비가 가장 좋아요. 배추흰나비는 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알을 낳고 알도 채소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관찰하기에는 케일이 딱이에요. 이른 봄에 모종을 심어 두면 이듬해 봄에 꽃이 필 때까지 잘 자라니까 1년 내내 한살이를 볼 수 있죠. 애벌레가 붙어 있는 채소 잎이 시들면 다른 케일로 옮겨주면 돼요.

    실제 배추흰나비는 300~400개의 알을 낳는데, 이중 나비가 되는 건 한 마리밖에 안 된대요. 대부분은 알 또는 애벌레 시절 누군가의 먹이가 되거나 빗물에 휩쓸려 살아남지 못하죠. 나비가 되기까지 이토록 힘겨운 과정을 거친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여러 천적과 얽혀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만든 책이에요.

    ▲ 동식물 세밀화 그림책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어떤가

    어린이 대상으로 강연할 때면 탱자나무나 산초나무 화분에 애벌레를 얹어서 갖고 가요. 처음에는 애벌레가 징그럽다고 만지지도 않고 도망가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코에 애벌레를 얹어놓고 사진 찍으면서 좋아해요. 강연 후 애벌레와 부쩍 친해진 아이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 동식물 관찰은 얼마나 자주 하나

    8년 전 이 곳(경기도 남양주)으로 이사왔어요. 근처에 산과 계곡, 농장 등이 있어서 동식물을 관찰하기 좋아요. 3일에 한 번씩은 밖으로 나가서 관찰하고, 1주일에 한 번은 종일 돌아다니죠. 세밀화 작가는 자연 관찰을 생활화해야 돼요. 특정 계절에만 관찰할 수 있는 동식물은 그 시기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때도 기르고 있는 애벌레를 수시로 들여다봐요. 예전에 나비가 번데기 속에서 나오는 장면을 찍으려고 카메라 준비해놓고 기다리다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 틈에 우화해서 놓친 적이 있어요. 순간적인 장면을 안 놓치려면 틈틈이 관찰해야 돼요. 서점에 가도 곤충에 관한 책을 주로 봐요. 아직 채워야 할 부분이 많으니까요.

    권혁도 작가가 사는 아파트 안에는 작은 화단이 있다. 권 작가는 수시로 이 곳에서 자라는 나무와 곤충을 관찰한다. 사진=문수경 기자

     

    저는 곤충을 관찰하는 사람이니까 5~6월과 가을에 가장 바빠요. 5~6월은 식물과 애벌레가 한창 자라고 활동하는 시기잖아요. 가을에는 잎이 떨어지니까 애벌레가 먹을 게 없어요. 그냥 두면 굶어 죽으니까 애벌레를 집으로 데려와서 잘라온 나뭇가지나 따온 잎을 먹이로 주느라 바쁘죠.

    ▲ 세밀화 작업하면서 힘든 점은 뭔가

    풍경 그림은 한 장 스케치 하는데 한 달씩 걸려요. 제가 원하는 정보를 그 풍경에 모두 담으려면 여러 곳에서 관찰한 풍경을 사실에 어긋나지 않게 조합해서 새로 꾸며야 하니까요. 장시간에 걸쳐 거의 완성했는데 마지막에 망치면 정말 속상하죠. '왜 그렇게 힘들게 그리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독자들에게 실제 자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곤충한테 물린 적도 많아요. 한여름에 청주에서 먹물버섯 사진을 찍을 때였어요. 반바지를 입고 갔는데 나무 밑에 모기가 얼마나 많던지 물려서 다리가 퉁퉁 부었죠. 두눈박이쌍살벌의 한살이를 관찰하려고 벌집 가까이 갔다가 손을 쏘여서 엄청 부은 적도 있고요.

    ▲ 세밀화 작업한지 꼭 20년이다. 그 사이 우리나라 자연환경도 많이 바뀌었는데

    20년 새 멸종되지는 않았겠지만 옛날만큼 흔하게 볼 수 없는 동식물이 있어요. 제가 채집다니던 곳에 아파트가 세워지고, 산골짜기에 음식점이 들어선 모습을 보면 속상하죠. 개발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지만 종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워요.

    살아 있는 장수하늘소(천연기념물 제218호)를 꼭 그려보고 싶어요. 표본은 많이 봤지만 살아 있는 장수하늘소를 본 적은 없어요. 장수하늘소가 사라진 건 전문 포획꾼들이 함부로 채집해서 일본인에게 비싸게 팔아서 그런 것도 있어요. 지난해 경기도 광릉숲에서 수컷 한 마리가 목격됐는데, 겉날개가 떨어진 것처럼 보였어요. 원주에서 장수하늘소 복원작업을 한다니까 언젠가는 그릴 수 있겠죠.

    ▲ 앞으로 계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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