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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현실? 공연이 끝나도 혼란스러웠다



공연/전시

    연극? 현실? 공연이 끝나도 혼란스러웠다

    [노컷 리뷰]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

    영화 ‘유즈얼서스펙트’, ‘식스센스’, ‘메멘토’ 등 소위 관객의 뒷통수를 때리는 반전(反轉) 영화를 봤을 때 기분이랄까. 연극 ‘소뿔자르고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하 소뿔...)을 보고 난 느낌이다.

    이 '싼 티' 냄새 풀풀 풍기는 포스터 마음에 든다. '생각 없이 보고 와야지'라고 생각했건만...

     

    사실 이런 연극인지 몰랐다.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뭐가 이렇게 싼 티나?”라는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제목은 더하다. ‘소뿔자르고오기전에도망가선생’(이하 소뿔...). 띄어쓰기가 없어 마냥 숨이 찰 것 같은 이 제목은 대체 뭐란 말인가.

    딱 봐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영화 '다찌마와 리'처럼 '나 B급을 표방하오'라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작품이었고, 그저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재미’만 느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관람 내내, 그리고 극장을 나와 배우들을 보는 순간, ‘아 끝까지 당했다’라며 작품의 기발함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연극 ‘소뿔자르고오기전에도망가선생’ 중. (남산예술센터 제공)

     

    내용은 이러하다. 누군가가 전국 곳곳에서 소뿔을 자르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수사반장(신현종 분)과 마귀량(이형주 분), 순경 옹양(박시내 분) 그리고 엉뚱하고 과격한 황백호 경위(박완규 분)가 투입된다. 이건 실제 상황이 아닌 액션판타지수사쇼 ‘소뿔...’ 연극을 준비하는 배우들의 공연 리허설이었다.

    그런데 본 공연을 앞두고 ‘소뿔...’ 배역을 맡은 배우가 무대 뒤편 통로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이후 타살로 밝혀지고, 사인이 극 중 소뿔이 잘려나간 것처럼 ‘당수(唐手)’로 목뼈가 부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관K에게 취조 당하는 배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 (남산예술센터 제공)

     

    이 기묘한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된 수사관K(김수현 분)는 공연 속 주인공인 황백호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이 순간 수사관 A가 등장한다. 사실 수사관 K까지가 ‘소뿔...’의 연극이었다. 수사관 A는 실제로 소뿔이 누군가에 의해 당수로 잘리고 있다며 배우들을 의심한다. 실제 소뿔 절단 사건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범인을 ‘소뿔...’으로 부르고 있다.

    이와 맞물려 국민의 이목이 연극 ‘소뿔...’에 쏠리자 수사관 A는 극에 직접 개입해 내용을 바꿔 죽은 ‘소뿔...’을 살려낸다. 내용이 바뀐 연극을 펼치다 황백호가 더 이상 극을 못하겠다며 현실로 뛰쳐나간다.

    연극 ‘소뿔자르고오기전에도망가선생’ 중. (남산예술센터 제공)

     

    ◇ 관객을 갖고 노는 기발함…‘3중 액자’ 구조

    내용만 보면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복잡하지만 실제로 보면 기발하다. ‘극중극중극’이라는 3중 액자 구조를 통해 연극과 현실, 실체와 허상,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관객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실체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현실인 줄 알았던 게 연극이고, 연극인 줄 알았던 게 현실이고, 다시 현실인 줄 알았던 게 연극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극과 현실은 어디까지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만드는 장치이다.

    이러한 현실과 연극의 꼬리물기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한 번 더 진행되지만, 더 자세하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생략한다.

    다만 극장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무심코 지나쳤던 ‘폴리스라인’ 본다면 사실상 이 장치에 자기도 모르게 말려든 것이라고만 밝힌다. 또 자신이 말려든 것이라는 깨달음은 공연 뒤 극장 밖에서 배우들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남산예술센터 입구에 설치된 폴리스 라인. (유연석 기자)

     

    ◇ 본질 잊고 허상 좇아 휩쓸리는 우리네 모습 풍자

    이처럼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의도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 현실을 우회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풍자한다.

    ‘소뿔...’에는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소뿔...’이란 존재에 엄청나게 분노하고, 또 한 순간에 열광하는 시민들, 대본상의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배우 강신도를 죽인 범인을 찾겠다는 수사관의 소동, 아무도 만나본 적 없는 모습이 때론 우스꽝스럽고 진지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렇듯 실체 없는 허상을 좇아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사실 그 자체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며 작품의 동시대적 시선을 느끼게 한다.

    요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수많은 사건과 소동의 이면, 진실은 사라진 채 실체 없는 허상만을 좇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무대 위 쫓고 쫓기는 배우들의 모습 속에 씁쓸하게 비춰진다.

    이를 3중 액자 구조 형식으로 더욱 극대화한 것이다.

    “이곳에 갇혀 실체 없는 이름과 싸우는구나. 누구도 본 적 없는 이름과 싸우는 구나.”

    공연 중 나오는 이 대사가 연극 ‘소뿔...’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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