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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록 속 박상옥, 5공 방침에 충실"



정치 일반

    "수사기록 속 박상옥, 5공 방침에 충실"

    당시 검찰수사팀, 진실 파헤치기보단 은폐축소에 협력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자료사진)

     

    - 박종철 사건, 당시 경찰이 사건 은폐하려하자
    - 최환 전 검사가 부검지시해 세상에 알려진 것
    - 본수사에선 최환 검사 배제, 안상수와 박상옥은 참여
    - 1,2차 수사때 의혹 밝히지 못하고 경찰 수사결과 그대로 추인
    - 1,2차 수사기록 내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서 확인해
    - 야당이 당시 검찰 칭찬했다? 검찰 역할이 제대로 안 밝혀졌기때문
    - 1, 2차 수사팀, 진실 파헤치기보단 은폐조작에 협력
    - 안상수, 핵심역할 한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제론 최환 전 검사가 한 것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5년 3월 6일 (금)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학규 (박종철역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정관용>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당시 일선 검사였죠. 그래서 지금 야당과 박종철역사 기념사업회 등 여러 시민단체들이 부적절하다, 지금 청문회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쪽은 여러 의견을 검토한 후에 청문회를 열 수도 있다, 이런 쪽으로 좀 방향을 선회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래서 오늘 박종철열사 기념사업회 이사이시고요. 사무국장이십니다. 김학규 국장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학규> 네, 고맙습니다.

    ◇ 정관용> 다 알고 계십니다만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죠. 87년 1월이었죠?

    ◆ 김학규> 네. 1월 14일이죠.

    ◇ 정관용> 1월 14일, 사망한 날짜가?

    ◆ 김학규> 네.

    ◇ 정관용> 치안본부 대공분실?

    ◆ 김학규> 네, 일명 남영동 대공분실.

    ◇ 정관용> 그렇죠. 물고문을 받다가 맞죠?

    ◆ 김학규> 네.

    ◇ 정관용> 그런데 처음에는 뭐라고 발표가 됐었죠?

    ◆ 김학규>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 이러면서 일종의 쇼크사다, 이렇게 발표를 한 거죠.

    ◇ 정관용> 그런데 그러고 그다음에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과정을 좀 간략하게 정리해 주세요.

    ◆ 김학규> 많은 분들이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검찰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실제로 검찰, 일반인이 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고 검사 중에서 단 한 분, 어떻게 보면 최환, 그 당시 공안부장을 맡으셨던 분 그분이 사실은 진실을 밝히는데 핵심 역할을 한 거고요. 당시 안상수 검사 같은 경우는 최환 부장검사의 지시에 충실히 따라서 부검을 집행하는 역할을 집중했을 뿐인데 그 안상수 당시 검사가 이후에 이제 안 검사의 일기, 이런 것도 쓰고 이러면서 마치 자신이 정의의 검사였던 양 이렇게 많이 포장을 해서 언론에도 많이 알려지고 그러면서 마치 박종철 사건의 진실이 밝히는데 핵심역할을 한 사람이 안상수 당시 검사다,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 정관용> 한나라당 대표 지냈고 지금 창원시장?

    ◆ 김학규> 그렇죠. 그런데 실제로는 최환 부장검사가 핵심을 역할을 했던 거죠.

    ◇ 정관용> 그거 조금 있다가 다시 정리하고요. 일단 그러니까 검찰 수사팀은 최환 공안부장 그 밑에 안상수 검사, 안상수 검사 밑에 박상옥 지금 대법관후보자?

    ◆ 김학규> 그렇지 않고요. 처음 최환 부장검사가 이 일을 맡은 과정에서는 수사팀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던 게 아니고 최환 부장검사와 당일 당직검사를 하고 있던 안상수 검사가 역할을 했던 거고요, 15일까지. 그러고 나서 이제 부검결과에 따라서 수사팀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을 때 최환 부장검사는 오히려 진실을 더 밝힐까봐 두려워서 검찰에서 배제를 한 거죠.

    ◇ 정관용> 아, 검찰수뇌부에서?

    ◆ 김학규> 네. 그렇게 하면서 형사2부 그쪽에 배당을 하게 되는데요. 부장검사 그리고 안상수 검사 그리고 박상옥 검사 이렇게 팀이 구성이 되는 것이죠. 그 팀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사실은 경찰이 수사결과를 다 발표한 이후에 19일에 발표를 하는데 그런 다음에 20일에야 겨우 이제 검찰수사팀이 가동이 되는 거죠, 본격적으로.

    ◇ 정관용> 조금 더 세밀하게 그러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14일 날 사망을 했고, 최초에는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라고 했고 그러나 그때 현장을 가봤던, 저도 기억이 납니다만 그 의사.

    ◆ 김학규> 네, 오연상 내과의.

    ◇ 정관용> 온몸이 물에 젖어 있었다. 이런 증언들이 나왔고 그래서 곧바로 부검에 들어갔는데 그 부검을 지휘한 검찰 쪽 인사들이 최환 공안부장과 당직 검사인 안상수 검사였다? 그러고 나서 부검까지는 검찰이 지휘를 했을 거 아니에요?

    ◆ 김학규> 그렇죠. 최환 부장검사가 지휘를 했죠.

    ◇ 정관용> 그러나 자체 경찰 조사는 19일까지 계속 됐다?

    ◆ 김학규> 그렇게 된 다음에 부검에 기초해서 고문에 의해서 사망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드러났는데.

    ◇ 정관용> 그러니까 부검하면 물도 있고 질식사 이런 게 나올 것 아니겠습니까?

    ◆ 김학규> 그렇죠. 그런 다음에 그 수사를 이제 검찰이 계속한 게 아니고 경찰이 자체수사를 통해서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이런 논리를 피면서 경찰에게 수사를 맡던 거고요. 경찰은 축소은폐에 앞장서면서 2명으로 제한을 하는 이런 결과를 19일에 발표를 한 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고문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고문한 사람들은 2명이다, 일선 경찰들이다, 그게 19일 날 나왔고, 그다음에 이제 형사2부 신창원 부장 그다음 안상수 검사, 박상옥 검사, 이렇게 해서 수사팀이 꾸려졌다? 그 수사팀은 어떤 결과를 내놓았습니까?

    ◆ 김학규> 그래서 20일부터 수사를 해서 24일 날 그러니까 아주 일종의 너무 빠르게 수사결과를 발표하잖아요? 그것도 졸속적으로 했다는 증거 중의 하나인데, 그때 하는 일이 두 명이 아니라 더 있을 가능성, 이런 국민적인 의혹이 많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고 처음에 발표까지 했었으니 그 윗선이 조작, 은폐과정에 개입하지 않았겠느냐. 이런 의혹이 많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 정관용> 탁, 억 이런 말을 한 사람도 분명히 밝혀내야죠.

    ◆ 김학규> 그렇죠. 그런데 그런 부분은 하나도 밝혀내지 못하고 경찰이 발표한 결과, 두 명이 직무수행과정에서 과욕을 보이다가 발생한 불상사다라고 하는 그 결과를 그대로 추인해 주는 역할을 한 게 1차 수사팀이 한 결과죠. 그래서 현장검증도 당사자들, 범인 2명조차도 대동하지도 않고 현장검증을 했고 그리고 수사과정도 검찰에 불러서 수사한 것이 아니고 영등포 교도소로 가서 출장수사를 했던 것이니까요. 이 자체가 결과를 제대로 밝히려고 과정이었다기보다는 경찰이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승인해 주기 위한 형식적인 수사였던 것이죠.

    ◇ 정관용> 그게 이제 이른바 1차 수사결과죠, 1월 24일에 발표된. 그렇죠?

    ◆ 김학규> 그렇죠.

    ◇ 정관용> 그리고 그 다음에 이게 다시 2차 수사로 가는 과정도 또 소개해 주시면요?

    ◆ 김학규> 그렇게 해서 재판을 준비 중이었는데 두 명이 억울하다고 생각됐을 것 아닙니까? 왜 우리가 다 뒤집어쓰라고 하느냐 이러니까 이런 일이 발생하니까 그 억울함을 자꾸 호소하기 시작했던 거고 그런데 호소한다고 해 봤자, 교도소에 있으니 제대로 이게 알려질 리가 없었고 그런 와중에 이제 안상수 검사에 면회를 요청을 했던 것이 하나의 공식선에서는 있었고요. 그래서 그게 안상수 검사가 공식적으로 밝히는 게 2월 27일에 만나서 두 명이 아니라 3명이 더 있다라는 사실을 조한경으로부터 들었다, 이게 어떤 검찰 측에 지금까지 밝혀진 공식 내용이고.

    ◇ 정관용> 고문경관 조한경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다?

    ◆ 김학규> 네, 그리고 또한 선에서는 교도관들을 통해서 이 사실이 당시 영등포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던 이부영 선생에게 알려졌고 이부영 선생은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 교도관을 통해서 몰래 이것을 외부에 알리는 작업이 또 한 축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검찰 쪽에서는 2월 27일 최초로 알았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수사계획서를 위에 제출했지만 수사 게시지시가 없어서 수사를 못했다, 이것이 이제 검찰이 지금까지 밝힌 공식적인 사실이죠.

    ◇ 정관용> 2월 27일에 수감되어 있는 고문경관을 만나서 면회요청을 받아서 3명 더 있다라는 얘기를 듣고 수사하겠습니다 했는데 위에서 지시를 안 내렸다? 그러나 이부영 선생님을 통해서 바깥으로 알려지게 돼서

    ◆ 김학규> 그렇죠. 그 사실을.

    ◇ 정관용> 천주교 정의구현제단이 폭로를 했죠.

    ◆ 김학규> 네 그것은 5월 18일에 폭로를 하는 것인데요. 검찰 쪽은 2월 27일부터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5월 18일 김승훈 신부께서 폭로할 때까지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고요. 이런 사실이 김승훈 신부를 통해서 박종철 사건의 진실이 왜곡되어 있다, 이렇게 폭로가 되니까 부랴부랴 우리도 5월 초에 인지하고 수사를 하고 있었다.

    ◇ 정관용> 5월초?

    ◆ 김학규> 네, 그렇게 또 거짓말을 또 했었던 거죠.

    ◇ 정관용> 그 때 또 5월 초라고 새로운 말이 나왔군요?

    ◆ 김학규> 그렇죠. 그렇게 하면서 5월 21일에 와서 2명이 아니라 3명이 더 있었다라고 하면서 그 3명을 구속하는 조치를 5월 21일 날 취하는데요.

    ◇ 정관용> 그때 수사팀은 누구누구였습니까?

    ◆ 김학규> 또 그것을 이제 2차 수사팀이라고 표현하는데 1차 수사팀이 그대로 2차 수사팀이 되고요.

    ◇ 정관용> 신창원 부장, 안상수 검사, 박상옥 검사?

    ◆ 김학규> 네, 거기에 일부가 보강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2차 수사팀이 만들어지는 거죠.

    ◇ 정관용> 그래서 2차 수사팀은 어쨌든 3명 더 있다, 3명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청구를 하고?

    ◆ 김학규> 네, 그렇죠. 그것도 이제 어떻게 보면 스스로 그때도 적극적으로 밝히는 과정이었다기 보다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에 맞추어서 뒷북을 치면서 수사를 한 그런 성격이었는데요. 저희가 좀 일부 수사기록에 접근을 해서 보니까 5월 21날 새롭게 수사를 시작을 하는데요. 수사를 하는데 거기에서는 수사기록에 보면 여전히 또 윗선의 개입여부 이런 것은 일절 묻지도 않고 오로지 왜 2명이라고 했다가 왜 5명이라고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지 그런 걸 조사하고 나머지 3명도 불러서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이런 것만 수사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 정관용> 그 대목을 지금 당시의 수사기록 같은 것을 공개해 달라. 유족들도 그렇고 계속 요청을 해 왔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 공개된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공개된 겁니까?

    ◆ 김학규> 저희들이 그렇게 요청했을 때 주로 공개한 것은 공판기록은 좀 공개를 했는데 수사기록은 거의 대부분 공개를 안 했어요. 첫 번째 요청을 했다, 여의치 않아서 두 번째 다시 구체적인 항목까지 지적을 하면서 요청을 했는데도 또 그랬었고 그랬는데 3차, 다시 요청을 하고 어제, 그러고 나서 오늘 초에 언론보도에서 일부에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라고 하는 기관에, 그 사료관에 그 자료가 있다더라, 이게 이제 나와서 저희들도 급히 그걸 확인을 했죠. 그랬더니 정말 저희들이 요청했던 모두는 아닌데, 상당부분이 있더라고요.

    ◇ 정관용> 아, 그래요? 수사기록이 있어요?

    ◆ 김학규> 그렇죠. 역사적인 사료로 봤기 때문에 아마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서는 사료관리 차원에서 그걸 관리하고 있었고 또 일반에게도 공개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기념사업에서는 모르고 계셨군요? 그랬다가 어쨌든 아시게 됐고.

    ◆ 김학규> 네. 저희들도 뒤늦게 알고.

    ◇ 정관용> 그런데 가서 열람을 하셨어요, 직접?

    ◆ 김학규> 네, 열람은 좀 했고요.

    ◇ 정관용> 전체 수사기록은 아닙니까?

    ◆ 김학규> 아까 말씀드렸듯이 1차 수사와 2차 수사, 그 수사기록이 있는 게 있는 것이 확인이 됐고요. 그런데 사실은 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2차수사로 끝난 게 아니고 88년에 가면 또 사실상 3차 수사도 진행되기 때문에 그때 관련 자료는 저희들이 확보를 못했고요. 확인을 못했고요.

    ◇ 정관용> 그러나 1차, 2차 수사기록은 전부가 다 있어요?

    ◆ 김학규> 네, 있다는 것을 좀 확인을 했죠.

    ◇ 정관용> 지금 문제가 되는 박상옥 대법관후보자가 검사로 1차, 2차 수사팀에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3차 수사팀은 다르죠?

    ◆ 김학규> 그렇죠. 3차 수사팀에는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되는 박상옥 검사 문제에 관련되어 있는 것은 전부 기본적인 것은 갖추고 있다, 이렇게 봐야죠.

    ◇ 정관용> 그러면 이제 3차는 논외로 하고 1차, 2차 수사기록을 쭉 직접 김학규 국장께서 보시니까 박상옥 검사의 역할이나 이런 것이 분명히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거기까지는 안 보입니까?

    ◆ 김학규> 상당히 보이죠.

    ◇ 정관용> 어떤 역할을 어떻게 했던가요? 좀 주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 김학규> 그러니까 1차 수사 때는 강진규 고문경관, 2명 중 1명이죠. 그 강진규 고문경관을 수사한 담당이 바로 박상옥 검사였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요. 구체적으로 심문조서를 작성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에 주변인들 참고인 조사도 마찬가지로 박상옥 검사가 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2차 수사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진규 고문경관에 대해서 추가조사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박상옥 검사이고 그리고 또 이제 3명이 더 추가되지 않습니까, 그 3명 중에 제가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또 일부를 박상옥 검사가 수사를 하고 있고요. 그런 것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신문조서라는 것은 검사가 뭘 묻고 답하고를 그대로 다 적은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뭘 어떻게 묻던가, 그런 것을 내용을 보니까 어때요?

    ◆ 김학규> 저도 되게 충격이었는데요. 1차 수사를 담당할 때는 예를 들어서 2명이 아닌 더 있을 가능성,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의혹에 대해서 아예 질의를 안 하더라고요.

    ◇ 정관용> 전혀 없었다?

    ◆ 김학규> 질의내용이 없고, 그리고 안상수 검사의 경우에는 절의를 합니다. 너희들 둘 말고 더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조한경 쪽에서는 우리 말고 없습니다. 이렇게 답변하니까 그게 말이 되는가, 그렇게 추가질문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 질문이 있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형식적으로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에서는 확인만 하되 그거는 경찰의 주장을 그대로 확인해 주고 추인하기 위한 것이었지 의혹을 밝히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던 것이 질문내용에서 확인됩니다.

    ◇ 정관용> 좋아요. 고문경관은 조한경, 강진규입니다. 조한경을 아마 안상수 검사가 맡았던 것 같고, 거기에서는 더 있지 않아라고 한 번 묻기는 했다, 그러나 강진규를 담당한 박상옥 당시 검사는 그런 질문도 없었다?

    ◆ 김학규> 네, 그런 질문도 없더라.

    ◇ 정관용> 2차 수사 때는요?

    ◆ 김학규> 2차 수사 때에도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왜 2명이었다가 5명이 되었느냐, 그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이 있었지 않았느냐 그리고 실제로 중간에 한 3달 동안에 윗선이 계속 회유, 협박을 하면서 너희들 더 밝히지 마라, 이런 과정을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역시 5월 20일 날 수사기록에 보면 전혀 그런 것은 질의도 없습니다.

    ◇ 정관용> 그때는 안상수, 박상옥 둘 다?

    ◆ 김학규> 네, 그랬다가 다시 5월 21일 발표한 다음에 또 국민적인 분노가 터지니까 다시 5월 23일에 다시 신문조서를 작성하는데 그때는 묻기 시작을 하죠, 윗선에 대해서. 그러면서 되게 충격적인 것은 2명이 아니라 그 이상일 것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상식적인 것 아니냐, 본래 물고문을 할 때는 네댓 명이 하지 않느냐, 그렇게까지 질문을 합니다.

    ◇ 정관용> 그래요? 5월 23일에 와서는?

    ◆ 김학규> 네, 그러면 그 이야기는 뭐냐 하면 그 상식을 그 담당검사는 1월에도 마찬가지로 그 상식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 정관용> 그러니까요. 왜 그때는 그걸 안 물어보느냐.

    ◆ 김학규> 그때는 그렇게 안 묻고 5월에 가서야 그걸 겨우 묻습니다. 그리고 윗선이 왔을 때 거기에 물이 흥건히 고여있다고 하는데 그걸 봤다면 이게 물고문이었을지를 뻔히 알지 않겠냐, 이렇게 또 질문을 합니다. 그전에 하고 완전히 바뀌는 것이죠. 그러면 그 고문경관이 그것은 아마 알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또 답변을 하는 과정은 5월 23일 심문조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 정관용> 그러니까 계속 미진한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 또 뭇매를 맞고 뭇매를 맞은 후에 가서야 그런 질문들이 나오더라?

    ◆ 김학규> 그렇죠.

    ◇ 정관용> 간단히 정리하면 그거군요. 그래서 우리 김학규 국장께서는 당시의 수사기록을 그런 식으로 보니까 한마디로 박상옥 당시 검사는 그냥 말단, 제일 밑에 부하검사로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실무적인 일만 했다, 지금 항간에 이렇게 또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 김학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요, 실제로 그 당시에 5공화국 군사정권의 방침,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나온 방침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을 단순히 따랐다기보다도 그것에 아주 충실하게, 아주 철저하게 그리고 자신의 역할은 그런 것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이해한 속에서 움직인 것이 아닌가 오히려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 됐습니다.

    ◇ 정관용> 아까 잠깐 소개하신 상식적으로 봐도 2명 가지고는 안 되잖아, 그런 질문. 그게 박상옥 당시 검사 입에서 나왔어요?

    ◆ 김학규> 그것은 제 기억에 안상수 검사였는지 박상옥 검사였는지 이게 지금….

    ◇ 정관용> 왔다갔다하세요?

    ◆ 김학규> 확실히 기억이 안 나오는데 어쨌든 둘 중의 한 분이 질문하는 것에….

    ◇ 정관용> 그것은 확인해 봐야 되겠네요. 그와 같은 과거의 사실을 두고 지금 현재 그 당시 윗선도 아니고 말단 검사였기 때문에 별 차이는 없다, 대법관에 임용한 게 문제없다라는 논리를 펴는 측에서 가장 힘주어서 강조하는 대목이 이겁니다. ‘안상수 당시 검사는 박종철 기념사업회 운영위원까지 지냈다. 또 1988년 국정감사 당시에 야당 의원들이 당시 검사들 수사 잘했다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는 박상옥 지금이 대법관 후보자한테 훈장을 주고 검사장으로 승진까지 시켰다’ 이건 다 팩트라는 말이에요.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김학규> 당시 검찰의 역할이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았던 게 하나가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잘한 수사였다 하는 것도 지금에서 평가해본다면 고문사실을 밝혔던 최초의 움직임, 그것은 분명히 잘한 겁니다.

    ◇ 정관용> 최초부검을 할 때까지?

    ◆ 김학규> 할 때까지, 네. 그거는 그런데 주도한 사람은 최환 부장검사가 주도했다는 거고요. 역사적으로 보면 그 당시에 의문사가 많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대로 밝혀진 게 거의 없었고 그런 부분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같은 경우에는 바로 밝혀진 것이니까 그런데 좀 전에 제가 쭉 말씀드렸듯이 1월 20일부터 만들어진 1차 수사팀, 본격적으로 검찰수사팀이 가동되는 그때부터 검찰수사팀의 모습은 진실을 파헤치는 역할이 아니고 오히려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는데 같이 협력하고 함께 움직인, 단순히 경찰은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검찰이 밝히려고 노력했다가 아니고 경찰의 그런 모습, 이런 부분을 같이 검찰도 협력해서 그걸 오히려 합리화해 주고 맞추어준 것이 검찰이었다, 이런 거죠.

    ◇ 정관용> 그런데 안상수 검사를 왜 운영위원으로 하셨습니까?

    ◆ 김학규> 그렇죠, 제가 그것은 저희들도 아…. (한숨) 어떻게 보면 저희들을 감쪽같이 속였던 게 안상수 검사였습니다.

    ◇ 정관용> 아….

    ◆ 김학규> 안상수 검사는 오히려 자기가 안 검사 일기에서 자기들이 경찰한테 감쪽같이 속았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사실은 우리 그리고 유족들을 감쪽같이 속인 것이 안상수 검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자기는 정의의 검사인양 포장을 하는 바람에 저희들도 진실에 접근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어서 그것을 그대로 믿고 그분이 나중에 변호사를 하면서 또 인권변호사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함께 이런 움직이는 이런 과정이 있었던 거고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것은 최환 부장검사께서 2000년대 중반부터 '그 당시 사건의 진상은 이런 거였다'라는 이야기를 언론에 인터뷰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도 저희들은 긴가민가했던 게 최환 부장검사도 공안부장이었기 때문에 사실 이 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요. 그런데 2009년 과거사위원회에서 새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그 결과를 보면서 '아, 이 사건의 실체에서 안상수 검사의 역할은 상당히 미미했거나 초기에 밝힐 때도 그리고 이후에는 오히려 안상수 검사 같은 경우는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실무책임자로, 검찰 쪽 실무책임자로 오히려 참여해서 단순히 검사로서의 수사검사로서의 역할만 한 게 아니고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잘못된 판단을 하게하고 그 결정을 내리는 데 함께했던 사람이 안상수 검사였구나' 라고 하는 것을 2009년 과거사위원회 조사결과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박종철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지낸 것은 그 이전이었고?

    ◆ 김학규> 네.

    ◇ 정관용> 2009년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 사건의 실체를 조금 파악하게 됐고, 이번에 수사기록을 보시니까 더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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