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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언론에겐 눈물이 없는 것도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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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과 언론에겐 눈물이 없는 것도 죄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참담하고 암울한 2014년을 보내며…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박재홍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해마다 이맘때면 꼽아보는 '올해의 사자성어'… 2014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指鹿爲馬'가 선정됐다. '史記 진시황본기'에 기록된 고사로는 황제를 섬기던 환관 趙高가 황제가 죽은 뒤 유서를 위조해 태자를 죽이고 나이 어린 왕자를 황제로 세운 뒤 자기는 승상 자리에 올라 권력을 거머쥐었다. 조고는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느라 사슴 한 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말'이라고 우겼고, 황제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 하는가?"라고 되물었지만 중신들은 죄다 말이 맞다고 환관 조고를 두둔했다. 이 때 사슴이라고 답한 신하들은 그 후 제거되었다. 이런 고사를 배경으로 절대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의 안위를 먼저 돌보다 보니 진실을 가리고 거짓을 꾸며대는 일을 가리켜 '지록위마'라고 한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전체듣기]

    이 사자성어를 꼽은 교수들의 의견을 모아 보면 올 한 해 온갖 거짓들이 진실인 것처럼 우리를 속여 충격을 주었고 진실을 제대로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 세월호 참사, 대통령 측근의 국정 농단 의혹 등의 큰 사건을 놓고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고만 하지 진실과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실망감이 이 사자성어를 꼽은 가장 큰 이유가 됐다.

     

    2위를 차지한 사자성어는 '삭족적리 削足適履'이다. 옛 중국의 제후가 쓴 '회남자 淮南子'라는 책의 제 17권 '설림훈 說林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사람들이 당장 써먹을 것을 생각하니… 문을 부수어 땔나무를 만들고 우물을 막아 절구를 만든다. 무언가를 기르겠다고 나서 놓고 길러야 할 목적물을 해치는 것은 비유컨데 발을 깎아 신에다 맞추고, 머리를 깎아 갓에다 맞추는 것과 같다"

    발을 깎아 신에 맞춘다는 삭족적리가 여기서 등장한다. 국가와 사회가 실현하고자 하는 공공의 목적과 가치가 있는데 원칙도 없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억지로 꿰맞추는 몰상식과 불합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삭족적리'가 뽑혔다고 본다. 무능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의 의리만 따져 나라를 망치고, 행정은 성과에 매달려 전시행정으로 달리다 손실만 보고, 공적인 약속인 공약은 선거에서 이기려는 목적으로 내놓다보니 억지공약만 널려 있는 게 우리의 현실. 뒤틀린 국정운영으로 손실을 내놓고 정작 보호해야 할 서민 주머니를 털어 메우려 하는 것이 이 사자성어가 가리키고 있는 우리의 세태라 하겠다.

    그 다음으로 꼽힌 '지통재심 至痛在心'은 해석하자면 '커다란 아픔에서 마음이 헤어나오질 못하고 묶여 있다'는 뜻. 아픔은 너무나 큰데 어찌할 길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병자호란에서 청나라에 패하고 조선은 두 왕자를 청에 볼모로 보낸다. 그 중 형인 소현세자가 죽고 나서 둘째 왕자가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됐다. 효종에게는 믿고 의지하던 백강 이경여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효종이 북벌에 온힘을 기울이다 심신이 피폐해지자 이경여는 '나라의 한을 씻어야 함은 마땅하지만 너무 조급해 마십시오'라고 위로의 글을 올렸다. 효종이 이에 답글을 썼는데 그 글에 '지통재심 일모도원 至痛在心 日暮途遠'이라는 글귀가 등장한다. '나라와 백성의 수모를 씻지 못해 아픔은 깊이 남아 있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기만 하구려'… 이런 뜻이다.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교수들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이 사자성어를 떠올린 모양이다. 진상규명도 그에 따른 책임자 문책이나 사회 시스템의 개선은 제대로 된 게 없는데 2014년이 저물어 간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들도 사그라져 간다. 지통재심…

    그 다음의 '참불인도 慘不忍睹'는 '세상에 어찌 이런 참담한 일이 있단 말인가'라는 의미이다. 당나라 시인 李華의 '弔古戰場文'의 '傷心慘目, 有如是耶'를 줄인 말이다. 조고전장문은 古戰場 옛 전쟁터에서 읊은 조문이란 뜻. 길게 쓴 시문을 몇 군데만 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浩浩乎平沙無垠(호호평평사무은) 모래벌판 아득히 넓어 끝이 없는데
    敻不見人(형불견인) 멀리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도다

    黯兮慘悴(암혜참췌) 암울하고도 참담하고 처량하니
    風悲日曛(풍비일훈) 바람은 슬피 우는데 해는 어둑해지고

    往往鬼哭(왕왕귀곡) 곳곳에서 혼령들이 슬피 울고
    天陰則聞(천음칙문) 날이 흐릴 때면 그 소리가 들린다 한다

    傷心慘目(상심참목) 마음은 찢기우고 눈은 처참하니
    有如是耶(유여시야) 이와 같은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선택한 그 마음대로 우리는 그 참담함을 잊지 말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함께 나서야 한다. 역사의 비극은 크고 슬픔은 짧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 슬픔을 놓쳐선 안 된다. 특히 위정자, 성직자, 기자처럼 공적 임무를 부여 받은 이에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뜨거운 동정심과 책임감이 결여된 것으로도 큰 죄가 된다. 2014 한 해를 보내며 교수들이 선택한 구절 구절마다 배어 있는 황망함과 슬픔을 커다란 꾸짖음으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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