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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스크린 몰아주기…"문화 편식 이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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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넘은 스크린 몰아주기…"문화 편식 이대론 안된다"

    [2014 영화 10대뉴스 ⑧] 다양성 외면한 자본…독과점과의 끝없는 싸움

     

    한국영화 시장의 체질을 건강하게 다져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는 데, 영화산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은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투자·배급과 극장 사업을 모두 쥔 대기업이 계열사 극장의 수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계열 배급사에 불리한 계약을 맺게 만든다. 이는 투자·배급 쪽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제작사 등 창작 분야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영화계 한 관계자의 이러한 지적은 산업이면서 문화이기도 한 영화 매체를 대하는 대기업의 자세가 어딘가 비뚤어져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6일 현재 이 전산망과 연동 중인 국내 스크린 수는 모두 2,356개.

    올해 1760만 관객을 모으며 최고 흥행 기록을 새로 쓴 '명량'은 7월 30일 개봉해 1,586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전체 스크린의 67%를 명량이 가져간 셈이다.

    1월 16일 개봉해 애니메이션 사상 첫 1,000만 영화로 이름을 올린 겨울왕국도 1,010개 스크린에 걸렸고, 11월 비수기 극장가에서 이례적으로 970만 관객을 넘긴 '인터스텔라'는 1,410개를 차지했다.

    가장 많은 스크린을 가져간 영화는 따로 있다. 6월 25일 개봉해 529만 관객을 모은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1,602개 스크린에 걸려 6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올해 개봉 당시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가져간 영화는 모두 10편. 이는 지난해 5편('설국열차' '관상' '아이언맨3' '은밀하게 위대하게' '퍼시픽 림'), 2013년 5편('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다크 나이트 라이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호빗: 뜻밖의 여정')보다 2배나 늘어난 것이다.

    위의 수치는 "올해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이 어느 해보다 극단적이었다"는 영화계의 지적이 단순한 푸념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 관객의 영화 선택권 침해 "멀티플렉스 만들어진 취지에도 어긋나"

    지난 11월 19일 서울 명륜동 CGV대학로점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에 대한 멀티플렉스 차별행위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 현장. (사진=황진환 기자)

     

    최근 서울 신당동에 있는 영화제작사 삼거리픽쳐스 사무실에서 만난 엄용훈 삼거리픽쳐스 대표는 한국영화의 역사를 두고 "독과점과 싸워 온 기록"이라는 표현을 썼다.

    "과거 상대가 할리우드 영화의 독과점이었다면, 지금은 영화 자본의 독과점,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에 따른 스크린 독과점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엄 대표는 "이러한 풍토가 한국영화 산업의 양적 성장에는 얼마간 기여할지 모르지만, 다양성을 해치는 위험한 독이 될 수도 있다"며 "외형적 성장만 보고 환호를 부를 때 수익성과 같은 실제 가치가 그만큼 성장했는가를 따져 보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화 한 편에 들어가는 비용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등 수익성을 판단하는 요인들이 악화됐다는 점에 비춰봤을 때, 올해 한국영화의 질적인 성장은 결국 하락세였다는 것이 엄 대표의 분석이다.

    그는 "1,000만 영화가 3편 나오면서 소수의 작품이 선전하기는 했지만 영화 산업 전체를 볼 필요가 있다"며 "전통적으로 한국영화의 질적인 가치를 책임져 온 작지만 힘 있는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기회를 잃어 버린, 쏠림현상이 굉장히 심화된 시기였다"고 올해 영화시장을 진단했다.

    영화계는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려면 우선적으로 대기업이 투자, 배급, 상영을 주무르는 수직계열화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그 선례로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결이 자주 거론된다. 1948년 미국 대법원은 메이저 영화사 파라마운트가 제작과 배급, 상영을 수직계열화한 것을 두고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메이저 영화사가 극장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엄 대표 역시 "영화 산업의 유통 구조를 정비한다는 측면에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를 진지하게 짚어봐야 한다"며 "한국영화 산업을 건강하게 다지는 길은 누군가 모든 것을 가지려는 생각보다, 각 분야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극장은 단순히 특정 기업의 수익을 늘리는 창구로 여겨지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하는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엄 대표는 멀티플렉스라는 방식이 생겨난 취지, 곧 다양한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선택권을 돌려 주겠다는 의도에도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처럼 특정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 줘 관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흐름이 계속된다면, 문화 편식에 따른 문화적 소양의 불균형을 부를 수밖에 없다"며 "영화는 예측가능한 모든 삶과 사고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 매체라는 점에서, 수익만을 좇아 장르나 스토리를 획일화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 "제대로 못 만든 영화는 있어도 만들어서는 안 될 영화는 없다"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 극단으로 치달은 올해이지만, 영화계 내부에서는 이에 대항하기 위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었다. 10여 곳의 중소 규모 투자·배급사가 생겨난 게 그것이다.

    각기 국내 영화산업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며 출범한 이들 배급사는 현재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장에 다소 균형감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대기업 중심의 영화 시장은 창작자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배급의 입김이 세다보니 제작사가 저작권 등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하는 데다, 기존에 없던 수수료가 만들어지는 등 수익 배분율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탓이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올해 여러 중소 배급사가 생기면서 제작사 입장에서는 시나리오를 주고 투자를 제안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라며 "극장을 가지지 않은 이들 배급사는 극장의 입장보다는 배급 이익을 높이는 데 힘을 쏟을 테니, 설립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이들 신생 배급사 가운데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곳이 리틀빅픽쳐스다. 뜻이 맞는 7개 영화제작사 등의 참여로 4월 출범한 리틀빅픽쳐스는 올해 '소녀괴담' '카트'에 이어 31일 개봉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배급을 맡았다.

    내년에도 작가 정유정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민기 여진구 주연의 '내 심장을 쏴라',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 '명왕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 '추격자' 시나리오를 쓴 홍원찬 감독의 '오피스', 한국산 코미디의 지평을 넓혀 온 김상진 감독의 '쓰리 썸머 나잇' 등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이다.

    엄용훈 대표는 리틀빅픽쳐스의 대표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제대로 못 만든 영화는 있어도 만들어서는 안 될 영화는 없다"는 말로 리틀빅픽쳐스의 기조를 대신했다.

    엄 대표는 "우리는 어떠한 장르나 이야기를 막론하고 창작자가 빚어낸 콘텐츠를 존중하고 중시하는 방향에 있어서는 변함없을 것"이라며 "수직계열화된 대기업은 해당 그룹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다룬 영화를 선택하기 어려운데, 우리는 오로지 콘텐츠의 힘만 바라본다. 세상의 어떠한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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