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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첫 제사 다녀오는 길…그분이 주신 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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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첫 제사 다녀오는 길…그분이 주신 큰 선물"

    [노컷인터뷰]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연출자 진모영 감독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출한 진모영 감독 (사진=영화사 하늘 제공)

     

    76년을 함께해 온 강계열 조병만 부부의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제작 아거스필름·이하 님아).

    12일 오후 5시께 전화 연결이 된 이 영화의 연출자 진모영(44) 감독은 지난해 이맘때 세상을 떠난 조병만 할아버지의 첫 제사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침 11시께 강원도 횡성에 있는 할아버지 묘소에서 제사를 지내고 가족들과 점심을 먹었어요. 그리고 집에서 할머니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져 서울로 가는 길입니다."

    이날 첫 제사 때는 눈발이 날렸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2월 27일 삼우제를 지내고 할아버지를 보내드린 날도 눈이 내렸다고 진 감독은 전했다.

    "우연이지만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도 저도 마음이 짠해질 수밖에 없었죠. 할아버지 할머니와 인연을 맺고, 할어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1년이 지났네요. 우리야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혼자 되신 할머니가 외로워 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착잡했어요. 할아버지 첫 제삿날 우리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했습니다. 한 스태프가 그러더군요.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 주신 선물 같다고요."

    ▶ 박스오피스 1위(11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 흥행 돌풍, 감회가 어떤지.

    = 저로서는 할아버지 1주기와 박스오피스 1위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묘하기는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은 아니지 싶다. 우연이다.

    ▶ 할머니께 1위 소식은 전해 드렸나.

    = 알고 계시더라. 하지만 할머니의 순위에 대한 개념은 우리와는 다르다. 할머니는 저를 집안의 막내로 여기신다. 막내가 하는 일이 잘 됐다고 하니 반가워 하시더라.

    당신들이랑 같이 지내면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잘 되고 있다니 마음이 좋고 고맙다고 하셨다.

    ▶ 영화 제목에서 떠올리게 되는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는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 번쯤 배우고, 익히지 않았나. 그래서 입 밖으로 냈을 때 마음이 아프고, 연민을 갖게 되는 것 같다.

    ▶ 님아가 관객들에게 어떠한 영화로 다가가길 바랐는지.

    = 철저하게 사랑 이야기로 생각했다. 노부부가 등장한다고 해서 노인영화라거나, 그 안에 죽음이 들어 있다고 해서 죽음에 관한 영화로 여기지 않는다.

    백 살 가까이 나이가 드셨음에도 여전히 소년 소녀 같은, 청춘 같은 사랑을 지켜 왔고, 마지막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도 사랑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뜻에서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 결혼해서 함께 사는 부부들, 황혼을 맞이한 모든 커플들에게 사랑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 영화였으면 했다.

     

    ▶ 젊은 관객들의 호응이 크다. 예상했나.

    = 저 역시 극장에서 젊은 연인 관객들을 많이 봤다. 사랑 이야기로 느꼈으면 하는 건 제 소망일 뿐 관객들이 영화를 읽는 걸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젊은 관객들이 우리 영화를 단순히 노부부 이야기로만 봤다면 극장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극중 노부부의 일상이 젊었든 늙었든 관계 없이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젊은이의 연애 주기는 짧다고들 하지 않나. 밀당이라는 게 있어 피곤하다고도 하고. 사람은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고 그런 상대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몹시 강하다고 들었다. 관객들이 극중 노부부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고 추천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사실 다큐멘터리는 많은 관객이 들지 않는 장르다. 이렇게까지 열렬한 반응을 보여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 노부부의 일상을 어떻게 영화로 담게 됐는지.

    = 우리 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가 부부다. 스무 살, 서른 살이 되면 대다수가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간다. 극중 할머니 할아버지는 76년을 함께 하셨는데, 그만큼 우리 인생 주기에서 부부로 사는 기간은 매우 길다.

    보통 결혼 전보다 결혼 후의 삶이 더 길지 않나. 결혼한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현재는 행복하지 못하고 미래 역시 깝깝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불행의 길로 가는 것이다.

    TV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오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커플들에게 강력한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 2012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년 넘게 촬영을 했다고 들었다.

    = 특별한 정답이나 정의를 내리고 시작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이런 주제를 나타내는 데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촬영을 마친 뒤 '노부부가 나에게 준 메시지는 뭘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더라. 처음에는 예쁜 한복을 맞춰 입고 장난치는 모습만 눈에 들어왔는데, 촬영 내용을 계속 보면서 '이 부부가 묘한 것들을 주고 있구나' 싶었다.

    한 예로 머리를 빗겨 주는 행위는 자잘한 일상이지만 몇 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습관이다. '사랑이라는 게 어쩌면 굉장히 작은 것을 끝까지 이어가는 습관 같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 사랑은 습관이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 노부부가 머리를 빗겨 주는 것은 누가 보고 있어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미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것인데, 습관처럼 꾸준히 쌓여 온 것이다.

    최근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에서 본 글귀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위대한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작은 것을 끝까지 쉬지 않고 이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제가 사랑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부부를 보면서는 자잘한 것이더라도 인생의 마지막까지 이어갈 수 있는 힘이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프로포즈를 하면서 꽃 1,000송이를 안겨 주거나 길에 수많은 촛불을 깔지 않아도 되는, 열정에서 탄생하고 유지되는 것이 사랑 아닐까. 사랑은 결국 습관에 바탕을 둔 것 같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사진=아거스필름 제공)

     

    ▶ 님아가 첫 연출작인데, 어떻게 영화 일을 하게 됐나.

    = 1997년 방송국에 들어가면서 영상세계에 입문한 뒤로 18년째 독립 프로듀서로 살고 있다. 그렇게 한국독립프로듀서협회 정회원이 됐다. 지난해 개봉한 독립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한국독립영화협회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 첫 연출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 2011년 다큐멘터리 회사를 퇴사하면서 방송이 아닌 영화 콘텐츠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18년 동안 창작자로서 끊임없이 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살아 왔다.

    그래서인지 첫 영화 연출이라 해서 특별히 다른 마음이 있지는 않았다. 방송과 영화는 대중과 만나는 방식이 다르지만 '기존에 만들던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 내레이션 없이 대화, 인터뷰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점이 흥미롭다.

    = 그분들을 오래 지켜보면서 생각한 게 내레이션 없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내레이션이 없으면 영상 외 정보를 전하기 힘들고, 이야기 뒷배경이나 연결고리를 말로 풀기도 어렵다. 이야기가 관객에게 전달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습관처럼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는 분들이었다. 서로 대화도 잘 나누시고, 인터뷰 때 말씀도 잘 하셨다. 뻐꾸기만 보셔도 그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실 정도다.

    촬영을 하면서 내레이션 없이 대화나 인터뷰 만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 그 덕에 제가 신 같은 존재로서 그분들의 생각을 읽어내려 할 때 생기는 왜곡도 피할 수 있었다.

    ▶ 연출자로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 할아버지께서 병석에 누우셨을 때, 할머니께서 헌옷들을 하나 하나 정리해 태우시는 장면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뜨면 좋은 옷만 가져갈 수 있도록 그러신다는 것이다.

    좋은 집도 마련해서 할아버지가 자신을 부르러 오면 다시 함께 살겠다는 말도 그랬다. 죽음 마저 덮어 버리는 사랑을 느꼈다.

    ▶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떠한 생각이 들던가.

    = 할머니의 그 말씀이 우리가 영화로 표현하려는 메시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었다고 봤다. 이 영화를 죽음이나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로 가져갈 수 있었던 큰 힘이었다.

    ▶ 노부부와 함께한 시간이 제작진, 스태프를 성장시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 다큐멘터리는 시나리오로 가져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소재는 뚜렷하지만, 전체 윤곽은 아주 느슨하다. 그 뚜렷한 소재조차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끊임없이 변한다.

    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유지했다. 그래서 1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했고, 강요 없이 그분들을 응시했다.

    가장 큰 변수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일이었다. 촬영을 중단해야 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보여 주신 사랑의 마지막 순간, 죽음이 영원한 사랑으로 가는 징검다리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셔서 우리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진 감독이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부탁이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영화에 나오는 그 집이 아니라 서울에 사는 가족들에게 가셨어요. 겨울에 혼자 지내시면 춥고 외로우시니까요. 무엇보다도 '할머니께서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으실까' 하는 걱정이 컸어요. 영화를 보신 관객들이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집에 찾아오거나, 언론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오지는 않을까라는. 그렇게 되면 그분의 여생이 편안하지 않게 될 수 있잖아요."

    "이렇게 될 경우 이 영화를 만든 게 큰 죄가 된다"는 것이 진 감독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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