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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이 철학을 만났을때…



기타

    노랫말이 철학을 만났을때…

    보컬의 목소리 변화에서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묻어난다. 내고 싶은 만큼만 돈을 내는 음반 유통 방식에서는 마르크스의 관점이 엿보이고, 비극을 노래한 수많은 곡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 파토스가 읽힌다. 1990년대 세기말을 살던 청춘들의 감성을 뒤흔든 밴드 라디오헤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신간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는 이 밴드의 독창적인 예술적 산업적 위치에 대한 흥미로운 철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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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브랜든 포브스 외/한빛비즈

    베이스, 드럼, 기타가 만들어내는 느리지만 강렬한 음색에 이어 중저음의 나른한 목소리가 흐른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지.' '난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데.' 이 곡을 들으며 거리를 걷고 있자니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 지금을 사는 30, 40대는 자의든, 타의든 이 곡을 한 번쯤 들어봤으리라. 1990년대 초반 낙오자의 슬픔을 노래한 이 곡으로 라디오헤드는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트렌드를 좇지 않았다.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2, 3집의 성공을 뒤로 한 채 2000년대 초반 실험적인 앨범들을 내면서 평단과 대중을 놀라게 했다. 급기야 2007년부터 발표하는 앨범의 곡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기존 음반 시장에 저항한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다양한 메시지를 담았다. 인간 소외부터 환경윤리, 산업·정치 비판까지 자신들이 경험한 부조리를 독자적인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라디오헤드의 성공 비결은 우리 시대의 감정을 보여주는 능력에 있다. (중략) 그들은 인간의 목소리보다 인공적인 소음에 더 무게를 실었다. 그들의 새로운 음악은 새로운 시대의 경험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비인간적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책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는 이 밴드의 궤적과 곡을 철학, 대중문화,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현대 문화이론이 대거 투입돼 이들의 가사와 음악, 행동과 시도를 분석한다.

    라디오헤드의 노래 가사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명확한 논리 혹은 패턴을 따르지도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원초적이고 불안정한 의미를 추구한다.

    철창 속에서 항생제를 먹고 있는 돼지(a pig, in a cage, on antibiotics), 막대에 묶인 고양이(a cat tied to a stick) 같은 이미지들은 우리가 머리를 굴리기도 전에 바로 한 방을 날린다.

    어떤 장면이나 깨달음 혹은 느낌들은 우리 앞에서 맴돌다가 물러가서는 노래가 끝날 때쯤 증발한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경험을 한 이라면, 이 책의 철학적 사유가 또다른 아찔함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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