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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사가 문제가. 싸와가 이기야지"



사회 일반

    "지금 장사가 문제가. 싸와가 이기야지"

    가락시장 현대화사업 '갈등' 본격화…노점상 대책은 커녕 형사사건으로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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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이 본격화하면서 노점상이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대체매장으로 옮긴 중도매인들의 불만이 커지는 등 서울시농수산물공사와 상인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공사측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하는 노점상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 "24년 한결같이 일했는데…" 쫓겨나는 노점상 할머니

    지난 26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만난 이순자(73) 할머니는 최근 들어 시장 한 켠에 마련된 천막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가락시장 현대화사업 1단계 구간의 철거공사가 시작되면서 노점상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설치된 천막이다.

    이 할머니가 생업을 뒷전으로 미룬 채 '천막농성'에 뛰어든 것은 뇌졸중에 걸려 쓰러진 남편 때문. 8개월 전 남편에게 뇌졸중과 치매가 찾아오면서 매달 400만원이라는 '거금'을 병원비로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이 할머니가 하루 18시간을 일해 버는 돈은 한 달에 고작 150만원. 이젠 10평 남짓한 보금자리마저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런 이 할머니에게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새로운 시설에서는 노점상들이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24년 동안 야채를 팔며 생계를 꾸려온 이 할머니는 결국 다른 노점상들과 함께 생업을 놓고 지난 22일부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시작했다.

    "지금 장사가 문제가. 싸와가 이기야지. 우리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되잖아. 싸우는데 석 달이 걸리지만, 장사는 앞으로 계속 해야지. 무조건 이기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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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점상 300명 '천막농성' 돌입…공사측, 계고장에 경찰 고소까지

    지난 1985년 문을 연 가락시장은 시설 노후화로 인한 수리비용과 악취, 민원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이 같은 배경 아래 지난 2008년 9월 서울시가 확정한 계획이 바로 '가락시장 시설 현대화사업'이다.

    지난 2009년부터 오는 2018년까지 3단계에 걸쳐 순차적으로 관리서비스동과 청과동, 수산동 등을 재건축하는 사업으로, 총 사업비 7천582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예산은 시비 30%와 국비 30%, 국고융자 40%로 충당된다.

    지난 22일에는 1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마늘·건고추 점포 등 중도매인 70여명이 옛 축산물공판장 터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곧 철거될 마늘·건고추 시장 앞에 홀로 남겨진 노점상들이 송파노점상연합회의 도움으로 그날 오후 천막을 쳤다. 장사를 할 수 있는 대체부지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공사측은 그러나 외려 불법 천막과 현수막을 당장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조치가 불가피하다며 송파노련 앞으로 계고장을 보냈다.

    급기야는 업무방해 및 불법 집회 개최 혐의로 경찰에 고소·고발까지 했다.

    박순자 송파노련 사무국장은 "가락시장이 당초 도매시장으로 문을 열었다가 장사가 잘 안 되자 소매상들을 끌어들였는데, 거리 장사를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며 "가락시장 발전의 주역인 노점상들이 장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농수산물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락시장의 노점상은 모두 295명.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제 2의 '이순자 할머니'들이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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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도매인 "이전 비용 한 푼도 못 받아"…직판상인 800명 탈락한다는 소문까지

    현대화사업 추진 과정에서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1단계 사업에 따라 대체매장으로 옮긴 한 건고추 중도매인은 "전기설비를 용도에 맞게 교체하고 기계를 옮기는데 모두 1천만원이 들어갔다"며 "하지만 공사측으로부터 가게 이전 비용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가게는 3천만원이 들어간 곳도 있다"면서 "환풍시설과 하수도 시설도 열악해 도무지 살 수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다른 상인들도 저마다의 사정을 하소연했지만 "제도권 상인들은 말이 잘못 나가면 공사한테 찍힌다"며 모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또 일부 상인들 사이에서는 시설현대화가 이뤄지고 나면 공간 부족으로 직판(소매)상인 800명이 임차를 포기해야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마늘을 판매하는 한 직판상인은 "그 얘기를 듣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과거 청계천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가든파이브로 옮겨갔던 상황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재 가락시장에서 허가를 받고 일하는 중도매인은 1천885명, 직판상인은 1천700명이다.

    이와 관련해 공사측 관계자는 "시설현대화 이후 직판상인의 적정 점포 수가 1천200개 정도로 보고, 점포간 합병을 하면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탈락의 개념은 아니다"며 "대체매장도 내부 수리는 다 해줬다"고 주장했다.

    노점상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장소를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긴 어렵다"며 "자구책을 스스로 마련하라고 했는데도 (노점상들이) 떼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완배 서울대 교수는 "노점상들의 업종을 전환해서라도 공사측이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면서 "근본적으로는 시설 현대화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물류기능 및 시장 도매인 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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