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장
2008년 1월 17일 (목) CBS 뉴스레이다 1부(FM98.1 MHz 매주 월~금 08:00~08:30 진행 : 김규완 노컷뉴스 부장)
(대담 - 조용준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장)5 ․ 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던 지난 1961년, 북한의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군사정권으로부터 사형을 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4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장이자 故 조용수 사장의 동생인 조용준 선생을 연결해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김규완 / 진행 참 이거 축하인사를 드리는데 무려 47년이나 걸렸네요.
◆ 조용준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장 글쎄, 축하를 해야 할 일인지...
◇ 김규완 그래요. 만시지탄의 축하인사를 받으시는 입장도 참 기쁘시면서도 마음이 무거우시겠어요?
◆ 조용준 네, 괴롭습니다.
◇ 김규완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47만에 무죄 판결이 났는데요. 판결이 선고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 조용준 한번 잘못된 것이 바로 잡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형님의 생각이 간절히 났고요.
◇ 김규완 조용수 사장이 처형당했을 때가 당시 서른 한 살이셨던가요?
◆ 조용준 서른두 살이 정확하죠.
◇ 김규완 그렇군요. 그렇다면 조용준 선생께서는 20대셨겠네요?
◆ 조용준 네, 스물여덟 살이었습니다.
◇ 김규완 당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까, 두 분이?
◆ 조용준 형님은 사장 역할을 했고요. 저는 기획실이 있었어요. 기획실을 맡아서 일을 했습니다.
◇ 김규완 그랬군요. 조용준 선생께서는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 조용준 일흔 넷입니다.
◇ 김규완 61년 사건 이후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조용준 선생께서는?
◆ 조용준 그렇죠... 사는 게 다 그렇지만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죠.
◇ 김규완 구체적으로 물어봐도 실례가 아닐까요?
◆ 조용준 제가 저희 연좌제라는 게 해당이 됐었고 그렇기 때문에 공직은 물론이고 웬만한 회사도 신원조회가 걸리게 돼 있는 것이니까 그냥 뭐 흔히 세상에서 얘기하는 세일즈맨이나 하고 다니는 그런 상태로 지냈죠.
◇ 김규완 그랬군요.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형님의 무죄를 입증하시는 데 쏟으셨다고 들었는데 참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겠네요. 그렇죠?
◆ 조용준 그렇겠죠... 뭐....
◇ 김규완 중도에 포기 하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드셨을 것 같은데요?
◆ 조용준 솔직히 말해서 포기한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좌절한 때는 여러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김규완 어떤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까?
◆ 조용준 글쎄요, 뭐... 사회적으로 말씀드리면 주변에서의 냉대나 아니면 말하자면 인간관계 기피 현상 같은 것을 느꼈을 때 내가 무슨 이 사람들한테 큰 환자인가, 전염병 환자인가, 그런 것을 느끼면서 참담했었죠.
◇ 김규완 가장 어려운 게 세상의 관심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 조용준 맞습니다, 네.
◇ 김규완 특히 민족일보에 대해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거의 알지를 못할 것 같거든요?
◆ 조용준 거의 모르죠.
◇ 김규완 언제 어떻게 어떤 취지에서 신문사를 처음에 만드셨습니까?
◆ 조용준 제가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본 내 소감인데. 4.19 혁명이 기폭제가 됐다고 봅니다. 조 사장께서는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사업에 일조하겠다는 그런 심경으로 출발을 했고 또 신문사는 신문사의 사시에 있듯이, 민족의 진로를 가르치는 신문이고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노동 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그리고 양단된 조국의 비애를 호소하는 사실을 충실히 이행했던 신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규완 당시 여러 언론사들이 있었을 텐데, 왜 유독 민족일보만 희생이 됐다고 보십니까?
◆ 조용준 글쎄요. 암만해도 군사 쿠데타 세력이 자기 합리화를 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희생양이라고 그럴까, 어떤 정권 찬탈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김규완 진실 규명에 있어 아직 좀 더 미진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시죠?
◆ 조용준 마음 한 구석은 항상 그렇게 남아 있죠. 앞으로의 과정을 좀 지켜봐야겠어요.
◇ 김규완 형님 조용수 사장은 어떤 분이셨나요?
◆ 조용준 저는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만 살아계셨으면 나라의 큰 동량이 되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김규완 좀 구체적으로 형님의 성품이라고 할까요, 품성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 좀 소개 해주시죠?
◆ 조용준 역시 판단력이 참 대단하신 분이셨고... 그러니까 또 성질이 좀 급했어요.
◇ 김규완 이번 조용수 사장 무죄 판결에 앞서서 2006년인가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무죄 결정이 있었죠.
◆ 조용준 아니, 뭡니까, 재심 권고.
◇ 김규완 재심 권고였나요? 그 때 결정이 진실 규명을 기다리는 다른 사건들에게도 많은 희망으로 비춰졌던 것 같아요?
◆ 조용준 물론이죠. 저는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여건에서 참 철저한 수사를 갖다가 또 조사를 해 준 것 같은 그러한 소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죠.
◇ 김규완 당시에 발간됐던 민족일보 신문을 가지고 계신가요?
◆ 조용준 영인본이 지금 만들어져 있습니다.
◇ 김규완 영인본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조용준 선생께서 생각하시기에 형님 조용수 사장께서 생각했던, 구현하고자 했던 정신을 지금 이행한다고 할까요, 구현하는 신문이 지금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조용준 모르겠어요... 방송에서 제가 어느 신문을 지칭한다는 것은 좀 그렇고요. 어쨌든 제 소망으로서는 우리 신문들이 적어도 말하자면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 같고, 또 정론지가 되기를 애를 써야 될 처지가 아닌가, 더욱이 또 우리는 양단된 분단국가에 있는 처지로서 국민들을 계도할 의무가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 김규완 고 조용수 사장이나 조용준 선생 자제분들이나 가족 중에서 언론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 조용준 한 사람도 없어요.
◇ 김규완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언론계에 투신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고요?
◆ 조용준 글쎄요. 그런 자질이 없게 보이니까 그렇겠죠.
◇ 김규완 이제 무죄 판결이 난 만큼 구체적인 배상을 받아야 할 텐데요. 소송을 하실 거죠?
◆ 조용준 지금 당장은... 담당 변호사와 상의를 해야겠죠. 그렇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다 노력해볼 작정입니다.
◇ 김규완 오랜 숙원이 이뤄지셨는데, 조용준 선생께서는 앞으로 어떤 활동에 주력하실 계획이십니까?
◆ 조용준 글쎄요. 어제도 여러 사람들이 그런 격려의 말씀을 하는데 저로서는 돌아가신 형님 조 사장의 유지를 잇는, 받드는 그런 일을 도모하고 싶네요.
◇ 김규완 알겠습니다. 조용준 선생님 힘드신데 이렇게 방송에 출연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