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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역사관 지적하면 "시대 거스르는 '신연좌제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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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호 역사관 지적하면 "시대 거스르는 '신연좌제 망령'?"

    [임기상의 역사산책 90]"제주도민 3만 명, 광주시민 몇백 명은 필요악"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이인호 KBS 이사장의 친일파 조부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중앙일보는 <시대 거스르는="" '신연좌제="" 망령'="">이란 제목으로 비난을 했다.

    논지가 왜곡되어도 많이 왜곡됐다.

    이인호 교수가 친일파의 손녀라고 해서 KBS 이사장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조부의 극우적 황국사관과 맥을 같이 하는 이인호의 역사관을 문제삼는 것이다.

    대체로 친일파 본인이나 그 후손들은 반성에 인색하다.

    일제시대에 군수를 지낸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 정도만 본인의 친일행각을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심어린 사과를 했고, 후손들 중에 공개적 사과를 한 이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이다.

    이인호 교수처럼 똑같이 할아버지가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보자.

    홍 의원은 최근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가족사를 알게 됐다. 조부님에 대해서는 항상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홍 의원은 독립운동 유공자 지원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공청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할아버지의 죄상을 사죄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 이인호는 어떤가?

    한 칼럼에서 "두 세대쯤 앞에 태어나 지금까지 정도의 '출세'를 하며 살아왔더라면 지금쯤 아마 나도 친일인사 명단에 올라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솔직히 기술했다.

    조부의 역사인식이 DNA를 타고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일제시대에 중산층 이상은 다 친일파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일제시대 항일 독립투사 대부분은 중산층 이상 집안의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이었다.

    하층 민중들은 먹고 사느라 친일이니 독립운동에 뛰어들 여유가 없었다.

    최근 국민TV의 뉴스 프로그램 <뉴스 k="">는 이인호의 2006년과 2013년 강연 동영상을 공개했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이인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세계에서 드문 사상가로 추켜 세우면서 4.19 유혈진압의 총책임자인 그를 부상 시민을 보살핀 인자한 지도자로 평가했다.

    이승만이 남긴 사상이 무엇인지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없다. 오직 '반공' 하나였는데, 그가 한 일은 미국에 기대어 반쪽짜리 나라를 만들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국민들을 버리고 정신없이 도망간 다음 미국의 힘으로 겨우 정권을 지켰다.

    4.19가 터지자 군부가 돌아서고 미국마저 하야를 요구하자 대충 병원에 들러 부상자를 위로하는 척 하다 하와이로 도주했다.

    미국 관계자들은 그의 재빠른 망명을 '김구 암살사건의 진상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추정했다.

    2. 제주 4.3사건 당시 양민학살과 여순사건에 대해서는 비극적 사건이라면서도 대한민국 체제 유지에 필요한 필요한 희생이었다고 규정했다.

    전 세계에 300명에 불과한 게릴라들을 잡는다고 3만 명의 주민들을 학살한 일이 있었을까?

    더구나 김달삼 등 4.3사건 주동자들은 게릴라 투쟁 중에 포위망을 뚫고 북한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여순사건도 이미 반란을 일으킨 14연대 주력부대는 지리산으로 빠져 나간 후 양민들만 학살하는 것으로 흘러갔다.

    주동자는 놓치고 애매한 양민들만 재판도 없이 마구잡이로 죽인 것이 여순사건의 진상이었다.

    이인호 집안에서 제주도나 여수, 순천에서 희생자가 나왔다면 저런 발언은 나올 수 없었다.

    3. 김구 선생 암살 가능성에 대해서는 '오해'라면서 "이승만 박사의 그동안의 행적을 볼 때 그 당시에 김구 선생이 이승만에게 정치적 위협이 될 리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김구 선생 암살사건을 공부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복잡한 얘기를 빼면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 독립운동 지도자를 암살한 범인이 몇달 안돼 다시 원직으로 복직해 치부하며 떵떵거리고 살아온 사실만 봐도 상황은 분명한 일이다.

    당시 국회 다수를 차지한 무소속과 소장파 의원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김구 선생이었는데도 정치적 위협이 안 된다고 판단한 이인호의 역사적 무지가 의아스러울 뿐이다.

    4. 이인호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유혈사태'라고 칭했다.

    "광주유혈사태에 대해 우리는 정보통제 때문에 사실을 잘 알 수 없었다"며, "그 틈에 아주 굉장한, 말하자면 흑색선전 같은 것이 사실 이상으로 몇백 명 죽은 것을 몇천 명 죽었다는 식으로 이렇게 되고 나서 학생들의 분위기가 너무 격앙됐다"고 강변했다.

    보도통제는 전두환 일당이 한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유언비어가 돌 수 밖에 없는 것인데, 학생들이 책임이 있는 것으로 전가하고 있다.

    이인호에게는 광주시민 몇백 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것이 구제역 사태 때 땅에 묻힌 가축들로 보인 것 같다.

    5. 이밖에 전교조에 주사파가 들어가 있다거나 민주정부 시절 구성된 역사청산위원회에 대해서 대한민국 전복 운운 하는 것은 이승만~박정희 시대에 흔히 떠들던 빨갱이 얘기를 다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물이 공영방송의 최고 책임자로 갔으니 어떻게 공정언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중앙일보가 주장한 '신연좌제 망령'은 조상의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위험한 역사의식을 가진 친일파 후손의 얘기다.

    반성도 없이 조부의 황국사관을 이어받아 공영방송의 책임자로 취임한 인물의 위험한 의식을 문제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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