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20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세월호 희생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 회의실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대책위 임원들과 특별법 여야 협상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민기자
여야가 진통 끝에 재협상을 통해 어렵게 내놓은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에 대해 유족들이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세월호 정국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이 합의안을 외면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재보선 패배 이후 공감과 혁신을 내세우며 당을 재건축하겠다고 다짐했던 박영선 임시 지도부는 지도력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입지마저 크게 위축됐다.
비판 일색이던 1차 협상 결과에 비해 재협상 합의안은 여당 몫 특별검사 2명을 유족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추천하겠다는 것이어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20일 총회에서 참석자의 대다수인 77%가 합의안에 반대했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합의안이 비록 유족들의 주장에는 못 미치지만 더 이상의 양보를 얻어내기 어렵고, 상황이 장기화 할 경우 국민의 관심도 떨어지는 만큼 안타깝지만 이제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득은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나아진 합의안에 대해 유족들이 이렇게까지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정치권, 특히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의 정도가 극한의 상황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야당은 유족들과 충분한 의견수렴 없는 일방적 협상으로 불신을 자초했고, 여당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철저한 진상규명이라는 대의 보다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비유하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할 수 있느냐는 주장으로 유족들을 모욕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서 ‘유가족의 뜻에 따른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재협상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기자
더구나 지난 5월 세월호특별법 입법을 약속하고, 유족들에게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법은 국회가 할 일이라며 남의 일인 것처럼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 유족들을 철저히 외면해 왔다. 목숨을 건 단식농성에도, 면담을 요청하는 유족과 각계의 요구도 무시했다. 방한 닷새 동안 내내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고 위로한 교황의 대조적인 행보 이후에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 차례 유족 대표들을 만났을 뿐이다. 합의안이 결국 여당의 뜻대로 가고 말 것이라는 불신이 유족들의 마음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유족들의 입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보듬어주지 못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정치가 마비될 수밖에 없고, 세월호특별법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정국을 풀 수 있는 해법은 복잡한 정치 방정식이 아니라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는 가장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유족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신뢰의 물꼬를 터야한다. 특별법은 대통령이 약속한 사안인 만큼 여야 대표들을 만나 해법을 찾아보는 일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세월호의 침몰을 지켜보면서도 국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너무도 억울하게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응어리와 한을 우리 사회가 너무 간과하지 않았는지도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