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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부유하다지만 민생은 어떠한가



국가는 부유하다지만 민생은 어떠한가

  • 2014-07-15 06:00

[고전의 향기] 조순희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우리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돈이다. 현대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화폐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조선 후기 상공업의 발달로 화폐의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1678년 동전인 상평통보를 법화(法貨)로 채택하고 화폐 사용을 정책적으로 권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18세기에 이르러 부유층에서 거액의 돈을 집안에 쌓아 두어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극심한 전황(錢荒, 돈 가뭄) 현상이 발생했다. 시중에 돈이 귀해질수록 그 가치가 상승해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부족한 만큼의 돈을 더 주조해 유통시키기도 쉽지 않았고 그 타당성에 대한 의견도 갈렸다.

근본적으로 화폐 사용을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화폐 무용론을 제기하며 곡물이나 포목 같은 실물화폐 사용을 주장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은 농업에 기반을 둔 전통사회에서 '말리(末利)'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상공업을 억제하려 했던 것과 동일한 맥락이었다.

반대로 화폐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중상주의(重商主義) 실학자 유수원(柳壽垣, 1694~1755)이다. 그는 전황의 원인을 상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데서 찾았고,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신분제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양반을 중시하고 공·상을 천시하는 신분 제도 때문에 체면을 중시하는 부유한 양반들이 장사를 하지 못하고 남몰래 고리대금업이나 투기를 일삼는 데서 전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분제를 개편해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전황은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부국안민(富國安民)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때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과거 화폐 제도 도입이 그토록 큰 쟁점이 됐던 것이 도리어 재미있게 생각되기도 한다. 결과론적으로 세상은 유수원이 주장한 상공업 중심 사회로 변모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서비스업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산업 구조를 우려하게 됐다.

그런데 돈이 극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전황이 심각했던 300년 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5년간 44조나 발행됐다는 5만 원권 지폐는 어디론가 사라져 제대로 유통되지 않고, 마늘밭과 가정집 베란다에서 어마어마한 돈뭉치가 발견되기도 한다.

부의 편중화, 자본의 쏠림 현상, 극심한 빈부 격차는 오히려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국가는 부유해졌지만 민생이 편안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기 침체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즈음 자영업 종사자들의 고충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학교 앞 문방구, 점심시간에 가끔 들렀던 식당, 반찬거리를 샀던 채소 가게 등 갑자기 문을 닫는 상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동네 골목에는 치킨집, 분식점, 과일 가게가 새로 들어선다. 서민들에게 생존의 문제는 너무도 절박하다. 생계형 자영업자가 포화 상태에 달한 지금, 정책 당국이나 경제 전문가들이 제시할 해결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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