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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노래는 성대를 통해 가슴을 노래하는 것"



연예가 화제

    김장훈 "노래는 성대를 통해 가슴을 노래하는 것"

    "5천만명 고통 줄여 힐링 1억 클럽 만들자"

    - 태어나 이렇게 참담하게 무너진 건 처음
    - 세월호 소식 듣고 해외 공연 모두 취소
    - 피해자 가족 중 대인 기피증 걸린 분도 있어 마음 아파
    - “몸으로 안 잊혀집니다.” 말하고 싶어 진도 가족들 만나
    - 진도 실종자 가족들, 체육관에서 함께 잔다면 너무 좋아해
    - 선진국 가면 뭐하나 행복하지 않은데
    - 정치권과 각 세우지 않고 영혼의 부름으로 갈 것
    - 제 음악 생활도 세월호 정국, 9월 새 음반 낼 것
    - 동, 트라우마 심했는데 함께 해 든든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7월 9일 (수)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장훈 (가수)


    ◇ 정관용>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가수 김장훈 씨. 요즘 진도를 자주 갑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세월호 피해자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일명 ‘우리 프로젝트’라는 걸 발족시켰어요. 진도에 내려가서 실종자 가족과 함께 숙식하면서 또 트라우마 치유에까지 나서게 된 이야기. 가수 김장훈 씨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장훈> 네, 안녕하세요. 대중가수 김장훈입니다. 고맙습니다.

    ◇ 정관용> 압니다. 대중가수라는 거.

    ◆ 김장훈> 하도 시사랑 뉴스만 나와서.

    ◇ 정관용> (웃음)

    ◆ 김장훈> 가수 김장훈입니다.

    ◇ 정관용> 진도 몇 번 갔다 오셨어요?

    ◆ 김장훈> 정확하게 얘기하면 6번 반인데요.

    ◇ 정관용> 6번 반은 또 뭡니까?

    ◆ 김장훈> 6번은 가서 일박식을 했고요. 얼마 전에 한 번 광주문화제 갔다가 진도를 가는데 현철 아빠라고 계세요. 이제 형, 동생 많이 하거든요. 형 오지 말래요. 왜? 그랬더니 태풍 때문에 바지선 다 철수해서 가족들이 일 보러 안산가시고 한다고. 그래서 또 알았다 그랬는데 생각하니까 이게 길어지면 중간에 돌아온 가족들은 두세 가족만 있을 거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그러면 지금 가야 되겠다 싶어서 내일이나 모레쯤 시간 내서 가 봐야 될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지금 더 썰렁하시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그렇죠. 남아 있는 가족이 줄어들수록 썰렁하죠.

    ◆ 김장훈> 그래서 안 가려고 했다가 생각해 보니까 ‘아, 오히려 지금 가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6번 반.

    ◇ 정관용> 맨 처음 가셨던 게 언제예요?

    ◆ 김장훈> 6월 5일 날 제가 첫 안산 조문하고요. 6월 한 8일이나 9일 정도에 제가 갔어요.

    ◇ 정관용> 6월 5일이 첫 조문이었어요?

    ◆ 김장훈> 네. 선거 다음날이었어요.

    ◇ 정관용> 일부러 선거 다음날 택한 겁니까?

    ◆ 김장훈> 그 전에 6.4선거를 보니까 이 정치권에서 세월호 정국을 갖고 좀 선거에 이용을 많이 해서. 세월호 심판, 박근혜 대통령 지켜주세요 해서.

    ◇ 정관용> 오해 받을까봐?

    ◆ 김장훈> 그렇죠. 저는 일단은. 저 같은 사람이 오해받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 정관용> 어쨌든 정치적으로 해석될까봐?

    ◆ 김장훈> 그리고 이번 일이 보니까 이게 뭐 좌우 진보 따질 게 아닌데. 굉장히 이상하게 그런 양상으로 가는 경향이 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깔끔하게 6월 5일에.

    ◇ 정관용> 조문을 처음 가고 그리고 진도에 바로 내려가셨군요. 가니까 현지에 가족들이 김장훈 씨 어떻게 대하던가요?

    ◆ 김장훈> 사실 저는 그 동안 가수라는 직업이 어딜 가면 환영을 많이 받는 직업인데 미리 작정을 한 게 아마 지금은 누굴 보는 것도 힘들 것이다라는 굉장히 조심스러움이 있었어요. 갔는데 아무래도 정치하는 분들한테 많이 피해를, 상처를 계속적으로 입다 보니까 유명인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으실 거다. 그런데 그냥 덤덤하게 맞아주시고. 사실 이제 너무 울다 웃을 힘도 없으시겠죠. 그랬는데 2번, 3번 뵀는데 그래도 김장훈 씨 오는 게... 제가 물어봤어요, 하도 그래서.

    ◇ 정관용> 가서 뭘 하세요?

    ◆ 김장훈> 저요? 가서 그냥 같이 얘기하고 원하는 거, 뭐 술도 같이 마시고. 격론도 펼치면서 대신 좀 욕 해드리고 세태에 대해서. 그리고 체육관 바닥에서 한 자리라도 차지하고 자고.

    ◇ 정관용> 그냥 자겠다 그러면 그냥 자라고 그래요?

    ◆ 김장훈> 너무 좋아하시죠. 왜냐하면 너무 텅 비어서 체육관이.

    ◇ 정관용> 외로우니까. 자꾸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고.

    ◆ 김장훈> 제가 가 보니까 꼭 자던 자리에서만 자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이 조립식 주택을 지어놨는데도 거기로 안 들어가시는 이유가 있는 자리를.

    ◇ 정관용> 원래 자기들 자리.

    ◆ 김장훈> 네. 지키게 되는데 지금은 좀 대인기피증까지 걸리신 분이 있어서 방으로 들어가신 분들도 있고 해서 굉장히 마음이 아프죠.

    ◇ 정관용> 네. 그런데 그렇게 자주 가게 돼요? 6월 8일인가부터 따지면 지금 거의 한 달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그 사이에 6번 반이라면 사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이잖아요.

    ◆ 김장훈> 계속 마음은 진도에 있어요. 그러니까 뭐 이렇게 아이들이 살아남은 트라우마 걸린 가족, 유가족인데 시신을 수습한 가족, 또 진도에는...

    ◇ 정관용> 아직 못 찾은 가족.

    ◆ 김장훈> 그런데 제일 아무래도 마음이 가죠.

    ◇ 정관용> 진도가.

    ◆ 김장훈> 그분들이. 그래서 서울에 와도 계속 진도에 가야 될 것 같고 그런 마음이. 그러니까 와 줘서 고맙다고 그러셔서 제가 그랬어요. 와주는 게 아니라 와지는 거라고, 제가. 마음이 계속 진도에 가끔씩... ‘김장훈 씨 오는 게 사실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러면 정말 행복해요. 그 말 들을 때가. 그닥 하는 일 없고요. 그냥 이런 거죠, 메시지가. ‘안 잊혀집니다. 끝까지 이 일은 함께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가서 ‘안 잊을게요.’ 이렇게 얘기 안 하고 그냥 몸으로.

    ◇ 정관용> 그냥 가 준다, 아니죠. 그 현장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 김장훈> 네.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 정관용> 그것만으로도 ‘아, 안 잊고 있구나.’라는 믿음을 주니까.

    ◆ 김장훈> 그리고 제가 왔다 가는 것들은 기사화가 되고 하니까. 좋아하시죠. 정들었죠, 지금은.

    ◇ 정관용> 거기 가면 실종자 가족 분들만 있을 때도 있고. 이미 시신을 찾은 유가족들이 또 와서 같이 도와줄 때도 있고.

    ◆ 김장훈> 그분들도 못 잊어서 오는 거예요.

    ◇ 정관용> 그렇죠.

    ◆ 김장훈> 같이 이렇게. 참 고마워요. 못 떠나겠대요, 마음이. 그리고 먼저 떠난 게 미안하고. 진도를. 그래서 저는 이제 가면 거기에 앉아계신 공무원 분들, 경찰 동생들한테 한약 같은 것도 살짝 주고 자원봉사자. 그러니까 진도가 다 트라우마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럼요.

    ◆ 김장훈> 경찰, 공무원부터 다 힘들죠.

    ◇ 정관용> 그 6.4선거 때문에 6월 5일 이후부터 이렇게 공식적인 활동을 했는데. 사실 4월 16일부터 6월 5일까지 마음이 어땠어요?

    ◆ 김장훈> 제가 외국 가서 3년 계획으로 공연을 계속하고 베니스 카니발도 가고 박물관 공연도 하고. 좀 나름 공연과 공헌 이렇게 두 가지를 하자. 대한민국 브랜드를 걸고. 그러다가 4월 17일이 상하이에서 있었던 사상 최초로 ‘한·중 공조 독도 아트쇼’와 ‘위안부 특별전’을 했어요. 그리고 그게 남경 갔다가 후난, 광저우, 베이징 이렇게 계속 돌기로 했거든요. 지금이 딱 동아시아 정세로 볼 때 딱인 것 같고 정부가 같이 하지는 못 할 거 같고 그래서 민간이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그래서 4월 17일 날 하는데 16일 날 그 사건을 듣고 몰랐어요, 잘. 그리고 뉴스를 보고 제가 바로 들어왔어요, 18일 날. 그래서 상황을 보고 19일까지 있은 다음에 한 6월 5일까지 계속... 그러니까 저는 집이 없었어요, 한국에. 정리를 하고 나갔어요. 3년 있을 생각으로. 어차피 월세였으니까. 그래서 레지던스 호텔을 하나 잡아놓고요. 좀 럭셔리한 고시텔이죠.

    ◇ 정관용> 그러면 저걸 남경 등등으로 쭉 돌기로 했던 걸 다 취소한 거예요?

    ◆ 김장훈> 그거 이태리 공연, 베이징, 워싱턴 공연 다 취소됐죠. 아프리카 유소년 축구단 창단했거든요. 상암에서 아프리카, 한국 우정...

    ◇ 정관용> 못 가겠던가요, 그렇게?

    ◆ 김장훈> 가고 말고도 아니라 그냥 멘탈이 붕괴돼서. 다 집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세 번 나가고.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 멘탈이 무너져도 몸은 계속 일은 했는데. 이렇게까지 참담하게 제가 무너진 건 처음이고.

    ◇ 정관용> 어떤 점이 가장 참담했습니까?

    ◆ 김장훈> 그걸 표현을 못 하겠어요. 그냥 모든 것들.

    ◇ 정관용> 하긴 붕괴된 걸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물어본 내가 잘못입니다.

    ◆ 김장훈> 기술적으로 대처를 잘못했다, 이런 분노를 넘어서 ‘저 가족들은 어떨까’ 하고 저 또한 그런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 정관용> 어떤 아픔?

    ◆ 김장훈> 제 조카가 5살 때 하늘나라 갔던 기억이 있거든요. 저는 자식이 없어서 제 친자식 같고.

    ◇ 정관용> 어떤 일로?

    ◆ 김장훈> 교통사고로. 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고였는데.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울 때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저 가족들은 어떨까. 이런 생각에 그러다가 이제 6월 5일에 주변 지인들과 상의를 되게 많이 했어요, 각계각층으로. 100% 만류. 당신의 인간애와 상관없이 이건 이상하게 정치적인 것들이 얽혀 있고 좀 진흙탕 싸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고, 이미지도 그간의 행보와 안 맞는다. 그래서 안 하기로 했어요. 그냥 독도 아트쇼와 공연 하던 일 열심히 하자 하다가 그 다음날 제 가슴이 아. 제 노래 철학이 그거거든요. 노래는 성대로 부르는 게 아니라 성대를 통하여 가슴을 노래하는 것인데 내 가슴이 세월호에 있는데 이걸 버리고 무대에 올라간다면 관객 앞에서 떳떳할 수 없다. 진흙탕이라도 일단 들어가 보자. 길이 있겠지. 그러고 시작을 했죠.

    ◇ 정관용> 그러고서는 우리 프로젝트라고 하는 걸 만드셨어요. 이걸 상당히 체계적으로 준비를 한 것 같아요. 혼자 하시는 것도 아니고 많은 전문가들도 함께 하더라고요. 어떤 분들하고 뭘 하자는 겁니까? 개요를 우선 소개해 주세요.

    ◆ 김장훈> 짧게 말씀드리면 일단 가장 중요한 게 그런 것들을 전문적으로 많이 집행해 온 NGO가 필요해서 ‘굿피플’이라는 NGO와 함께 합심을 했고요. 또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필요해서 이스라엘의 ‘이스라에이드’라는 트라우마 치료하는 프로젝트 조직이 있거든요.

    ◇ 정관용> 거기가 제일 잘 해요?

    ◆ 김장훈> 왜냐하면 이스라엘 같은 데가 요즘 난리지 않습니까, 팔레스타인이랑? 서로 폭격이 많다 보니까.

    ◇ 정관용> 이스라엘은 과거에 전쟁도 하도 많이 해서.

    ◆ 김장훈> 전 국민이 트라우마. 그래서 그 교육이. 그런데 꼭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UN에 소속된 석학들도 계시고. 아예 한국 들어와 계세요, 지금 이것 때문에. 그리고 민간에서 할 때 잘못하면 오류가 일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치유를 하는 거지, 치료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차병원에서 김선현 임상심리학 교수님 이하, 그리고 그 외 한림대학교나 많은 병원들이 지원을 해 주셔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는 제가 이거는 치료를 해야 된다. 진단은 저희가 못 하니까.

    ◇ 정관용> 진단은 병원 의사 분들이 하고.

    ◆ 김장훈> 네. 그리고 저희는 오류를 좀, 그분들 자문을 구해서.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심리지원단이라고 있는데요.

    ◇ 정관용> 우리 심리지원단.

    ◆ 김장훈> 네. 청년도 있고 선생님들, 어머님들도 계신데. 안산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이 있어요. 준 전문상담사 분들인데. 그 트라우마 교육을 제가 예를 들어 ‘합니다. 오세요.’ 그러면 안 올 거예요. 우리나라가 특히 정신과 치료에 대해서 굉장히 거부감이 있어서. 찾아가야 되는데 찾아갈 길이 없으니 그분들이 지역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을 하는 거죠, 받을 분들을. 자연스럽게.

    ◇ 정관용> 안산 지역에 사는 분들 가운데 자원봉사자들을 모아서 그분들이 이웃들을 찾아가봐서 사실 트라우마 센터를 정부도 만들었지만 거기까지 오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거고. 거기까지 오기도 힘들 만큼 트라우마에 빠져서 집에만 계신 분 많단 말이죠. 그런 분들을 끌어내는 거군요.

    ◆ 김장훈> 그분들이 오히려 잘 얘기를 해서 ‘교육을 좀 받아봐야 되겠는데?’ 하는 상황까지 만들고 ‘50명이 받겠답니다.’ 그러면 저희가 가고. 저는 하는 역할이 기획자니까 가수이면서. 모든 걸 좀 다 겪어봤으니까 전반적인 기획을 하고. 또 하나는 그거조차도 조금 거부감을 느낄 때 연예인들, 셀럽들이 들어와서 같이 교육을 받으면 좀 유화적으로 되잖아요, 분위기가. 그렇게 해서 조금씩 잘 맞춰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현재...

    ◇ 정관용> 공식 시작한 게 지난주였죠?

    ◆ 김장훈> 지난주였는데 두 달 전부터 교육을, 워크샵을 해서 전문 강사 수준을 2500명까지 현재 교육을 시켰고요.

    ◇ 정관용> 그럼 강사수준이 되는 분들은 자원봉사로, 나는 상담사로 역할을 하겠다 해서 온 분들입니까?

    ◆ 김장훈> 네, 워크샵을. 그래서 궁극적인...

    ◇ 정관용> 그분들은 누가 가르쳐요?

    ◆ 김장훈> 이스라에이드.

    ◇ 정관용> 거기 전문가가?

    ◆ 김장훈> 네, 거기 전문가 교수님들이 가르치고 또 아마 정혜신 박사님이라고 정부쪽에서 하시는 분도 있는데, 또 따로. 그분도 굉장히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신데 여러 곳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정부도 해야 되고 민간도 해야 되고. 그래서 저는 그런 상담사들이 최소한 몇 만 명이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안산 같은 경우 피해자 가족만 해도 측근까지 하면 몇 천 명일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안산시 전체를 해야 돼요. 왜냐하면 저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어떤 아이가 있으면 그 부모만 있는 게 아니라 옆집에 기름집 아저씨, 세탁소 아저씨 옆집 할아버지, 자주 가는 문방구 주인아저씨, 다 딸같이 우리나라가 하는데 그분들 다 트라우마 여서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런 재해가 나면 그 마을이 없어지더라고요. 다 떠나서요. 그래서 이게 제가 가장 추구하는.

    ◇ 정관용> 세월호 피해자 가족뿐 아니라 전 국민의 트라우마, 제가 처음에 그렇게 소개를 했는데. 과거에도 끔찍한 사고를 당하신 분들 많잖아요. 그런 분들까지도 다 이제 대상이 되는 겁니까?

    ◆ 김장훈> 네, 제가 부산외대에서도 4월 말에 힐링 콘서트를 하기로 했는데 이 일 때문에 총학에서 우리가 할 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 전화를 했더니, 어떻게 지내냐 이래요.

    ◇ 정관용> 그 마우나리조트 그 사고 말이죠?

    ◆ 김장훈> 그냥 어떻게 살죠. 그런데 못 살아요. 앞에서 친구들이 죽는 장면을 보고 그래서 제가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우리가 무역 1조 달러 클럽 가입했다고 선진국 가네 마네 그랬었지 않습니까? 생각을 했는데 선진국 가면 뭐합니까? 행복하지가 않은데. 산업화가 고도화 되면서 인문학의 비율이 줄어들고 인간이 무시되니까 그래서 제가 어떤 생각했냐면 우리 그러지 말고 세계 최초로 힐링 1억 클럽, 행복 1억 클럽을 우리가 만들자.

    ◇ 정관용> 1억이 뭐예요, 그게.

    ◆ 김장훈> 인구인데요. 5000만이잖아요. 그러니까 수출, 수입 이렇게 해서 1조 달러처럼 고통, 행복 5000만, 5000만인데 이 교육을 충분히 해서 1000만 명, 2000만 명이 이 교육을 받아서 옆에 있는 친구가 그냥 힘들 때 힘내, 이게 아니라 얘는 지금 이 단계야.

    ◇ 정관용> 조금 더 전문적으로 상담해 줄 수 있고.

    ◆ 김장훈> 이렇게 하고 얘는 병원에 어떻게 회유를 해서 가고, 이게 되면 되게 이상론일 수도 있는데 5000만 명의 고통을 1씩 덜고 5000만 명의 행복을 1씩 올리면 행복이 1억만큼 늘어나잖아요. 그래서 힐링 1억 클럽을 우리가, 굉장히 이상론 같지만.

    ◇ 정관용> 힐링 1억 클럽.

    ◆ 김장훈> 네. 행복 1억 클럽을 만들면.

    ◇ 정관용> 김장훈 씨가 만든 용어네요, 이거는. 그렇죠?

    ◆ 김장훈> 네, 어저께 생각을 밤새면서. 과연 이 트라우마, 우리 프로젝트를 어디까지 갈까.

    ◇ 정관용> 이 스케일이 대단한데요.

    ◆ 김장훈> 저는 가능하다고 보는 게 아프리카 갔을 때 보름 동안 갔다 왔는데, 지난번에. 제가 그랬어요. 제발 아프리카가 못 사는 나라처럼 불쌍하게만 TV에 나오는 것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의 가치 있는 삶을 살고 행복한데 왜 자꾸 인간이 못사는 나라처럼만 비추냐. 희망이 없는 것처럼. 그리고 가진 자의 여유로 이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로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높이를. 그래서 제가 제 친구 8살짜리 사이먼이라는 애 때문에 쓰레기도 먹었거든요.

    ◇ 정관용> 쓰레기를 왜 먹어요.

    ◆ 김장훈> 걔가 쓰레기를 먹고 살아요. 친구는 원래 같이 먹잖아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선진국 사람들 중에 와서 보고 이들처럼 행복한 웃음을 당신 인생에 한 번이라도 져본 적이 있는가. 물론 불편하지만. 저는 선진국으로도 가면서 마음은 그런 행복을 좀 누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 정관용> 다시 정리하면 전문가, 정신과 의사 그리고 트라우마 치유, 교육하시는 분들, NGO, 이런 전문가들과 함께 네트워킹을 해서 상당수 국민들을 참여시켜서 자원봉사 하겠다는 분들을.

    ◆ 김장훈> 계속 워크샵 계획이 있거든요.

    ◇ 정관용> 그래서 준 상담전문가들을 키워낸다. 그분들이 도처에서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힐링시켜주는 일들을 한다. 그러다 결국은 5000만 모두가 그런 상담가가 되면.

    ◆ 김장훈> 그러면 자기한테 닥쳐오는 그 여러 가지 고난을 긍정적으로 이겨낼 뿐만 아니라 행복은 마음에 있다고, 말은 쉽지만 조직적으로 교육을 통해 하겠다는 거죠.

    ◇ 정관용> 지난 두 달 전부터 교육은 이미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동안 그러면 아까 몇 명?

    ◆ 김장훈> 2500명.

    ◇ 정관용> 2500명. 1단계 목표가 있을 거 아니에요.

    ◆ 김장훈> 목표는.

    ◇ 정관용> 없어요, 그냥?

    ◆ 김장훈> 계속.

    ◇ 정관용> 계속?

    ◆ 김장훈> 원하는 대로 계속. 그런데 계속 소문이 나면서 들어오거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이런 거 한다라고 공식 기자회견을 지난주에 했는데 그 기자회견 이후에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으셨다고 내가 들었어요.

    ◆ 김장훈> 국회의원 분한테도 전화가 왔었고 청와대에서도 전화가 왔었고.

    ◇ 정관용> 뭐라고요?

    ◆ 김장훈> 국회의원께서는 어떤 계획이고 앞으로 어떤 건지 좀 브리핑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청와대쪽에서는 어떤 의원과 제가 좀 각을 세웠는데 좀 오해가 있었다, 이런 건데 대개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나 청와대에서 오면 외압이냐 핍박이냐 생각을 하잖아요. 우리가 문제잖아요.

    ◇ 정관용> 오히려 지원해 주려고 전화할 수도 있는 아닙니까?

    ◆ 김장훈> 그러니까요. 제가 그래서 처음에는 불쾌했는데 나중에는 제가 틀이라는 걸 되게 싫어하는데 좌우니 진보니 보수니, 내 마음에도 이 틀이 있는 걸 깨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좋게, 좋게 쓰신다면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화 왔을 때도 그 의원 입장에서는 그럴 수는 있겠는데.

    ◇ 정관용> 알겠어요.

    ◆ 김장훈> 잘 좀 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좋게 얘기를 했죠.

    ◇ 정관용> 세월호 천만 진상조사 서명운동에도 참여하고 계시죠?

    ◆ 김장훈> 네, 온라인 쪽으로 저는 주로 집중을. 오프라인은 벌써 300만을 넘겨서. 대단한 거죠.

    ◇ 정관용> 온라인 쪽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십니까?

    ◆ 김장훈> 제가 계속 SNS에 올리고 좀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한테 계속 하는데 좀...

    ◇ 정관용> 김제동 씨 참여하니까 ‘제동아 고맙다.’ 이런 거 하고 그러셨더라고요?

    ◆ 김장훈> 그러니까 김제동 씨도 윤도현 씨랑 절친이니까 통해서 들었는데 저 이상으로 너무 심했대요. 이번에 트라우마가. 그 친구도 몰입이 강하잖아요. 그래서 나선 게 너무 든든했고. 사실 연예인 중에 저 혼자 하는 게 좀 외롭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김제동 씨, 조민기 씨, 의리 김보성 씨, 정진영 씨. 점점 이렇게 연예인 분들이 많이 참여를 해서, 아마 가족들이 너무 행복해 하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우리를 잊지 않겠구나.

    ◇ 정관용> 진도에 실종자 수가 0이 될 때까지 진도를 가겠다.

    ◆ 김장훈> 네.

    ◇ 정관용> 그게 빨리 좀 왔으면 좋겠는데요.

    ◆ 김장훈> 정말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가족들도 가족이고 주변의 모든 분들도 가면 참 안쓰러워요, 제가. 옆에 있는 잠수사들도 제가 바지선도 타고 브리핑도 가는데 잠수사들도... 그분들한테 뭐라고는 제가...

    ◇ 정관용> 그분들도 트라우마가 엄청나죠.

    ◆ 김장훈> 엄청나죠. 엄청납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이러다가 무슨 만화영화 뭐였죠? 짱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거 되시는 거 아니에요, 혹시?

    ◆ 김장훈> 그러면 이제 본질인 음악을 해야 되니까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돼요. 그래서 요즘에 항상 생각하는 게 선택과 집중이고.

    ◇ 정관용> 지금 이 앞으로 상당기간은 여기에 집중하겠다?

    ◆ 김장훈> 네, 그리고 정치권과 각을 세우고 싸우거나 이런 소모적인 거는 안 하고. 이런 가수로서 맞는 영혼의 부름 같은 것들 쪽으로 하고.

    ◇ 정관용> 공연도 지금 계속 하시죠?

    ◆ 김장훈> 지금 행사 공연하고요. 가을에 신곡 준비 들어가고, 겨울 투어 일찍 당겼죠. 1년 당겼죠.

    ◇ 정관용> 신곡 음반이 그럼 나옵니까?

    ◆ 김장훈> 네.

    ◇ 정관용> 언제 나옵니까?

    ◆ 김장훈> 9월쯤으로 계획하고 있는데요.

    ◇ 정관용> 두 달밖에 안 남았네요. 거의 마무리 하셨군요?

    ◆ 김장훈> 아니에요. 그게 그렇게 쉽지 않고 그 전 날도 바뀌어요, 이게. 작업이라는 게 사실 다른 일을 하면서 할 수 없는 건데 상황이 이러니 저도 세월호 정국입니다. 제 음악상황도.

    ◇ 정관용> 이번에는 몇 곡 신곡?

    ◆ 김장훈> 일단은 두 곡 발표하고요. 다시 또 내년 봄에는 외국공연 못 했던 것들 약속 지켜야 되니까 들락날락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럼 짱가도 하시고 대중가수도 하시고.

    ◆ 김장훈> 그리고 제일 안타깝고 꼭 해야 되는 건 독도에 위안부 특별전 꼭 돌아야 될 것 같아요.

    ◇ 정관용> 건강하셔야 됩니다. 하실 일이 많으니까. 가수 김장훈 씨 함께 만났습니다.

    ◆ 김장훈> 너무 감사합니다.

    ◇ 정관용>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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