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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가 창단한 '양지' 축구단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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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중앙정보부가 창단한 '양지' 축구단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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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상의 역사산책 50]거쳐간 선수들 "군대인지 축구팀인지 헷갈렸다"

    북한 선수들의 '사다리 공격'. 키가 큰 상대팀의 수비를 뚫기 위해 김봉환, 박승진, 박두익, 한봉진, 임승휘가 사다리를 만들어 헤딩하고 있다.
    ◈ 북한의 '천리마 축구단', 런던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다

    1966년 6월 30일 런던공항.

    북한 축구팀과 스태프 66명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제8회 런던월드컵 본선에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대표로 출전한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막강한 전력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예선에 불참했다.

    북한은 호주와의 예선전에서 6대1, 3대1로 압승하고 월드컵 본선에 사상 처음으로 진출했다.

    이들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구경나온 영국인들은 평균 신장이 165㎝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북한 선수단도 공항 화장실에 들어갈 때 크게 놀랐다.

    분명 남자 화장실인데 여자가 나오자 기겁한 것이다.

    통역의 설명을 듣고 남자도 장발을 하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현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 대표팀이 매일 고추를 1㎏을 먹는다면서 "영국인들이 그렇게 먹었다면 아마 폭발했을 것"이라는 호텔 주방장의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북한이 속한 조에는 소련과 칠레, 이탈리아가 속해 있었다.

    다들 우승 후보였다.

    북한팀은 소련과의 첫 경기에서 0-3으로 졌다.

    북한 수비수들은 엄청난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공격을 치열하게 막았다.

    칠레와의 두번째 경기는 1-1로 비겼다.

    칠레는 4년전 열린 월드컵에서 3위를 한 강팀이었다.

    슈팅수를 보면 16대 9로 북한이 우세한 경기였다.

    ◈ 북한팀,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격침시키고 8강에 올라서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북한의 박두익이 선취골을 넣고 있다. 이 골로 강호 이탈리아는 짐을 싸야 했다.
    조별 리그의 마지막 경기 상대는 축구 강국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경기 전부터 이미 승리한 것처럼 들떠 있었다.

    다들 관심은 8강에서 어느 팀을 만나는가에 쏠려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이탈리아가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공격은 이 대회에서 소련의 야신, 영국의 고든 뱅크스와 함께 최고라는 찬사를 받은 북한의 골키퍼 리창명의 선방에 막혔다.

    전반 41분 하프라인에서 날아온 공을 상대 진영 오른쪽에 있던 박두익이 받아 번개같은 논스톱 킥으로 이탈리아 골문을 갈랐다.

    마침내 북한이 1대0으로 승리했다.

    이렇게 해서 북한 대표팀은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8강에 올라섰다.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은 북한팀에게 기립박수를 보냈고, 영국팬들은 탈의실까지 몰려와 사인을 요청했다.

    이탈리아는 36년 후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AGAIN 1966'이란 카드섹션이 펼쳐진 가운데 이번에는 한국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탈락한다.

    북한에게 일격을 당하고 귀국한 이탈리아 대표팀은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아야 했다.

    북한팀이 선전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은 네덜란드보다 10여년 전에 이미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이란 '토털 사커'를 구사했다.

    신장의 열세를 오직 죽으라고 달리는 것으로 극복했던 것이다.

    ◈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 북한의 돌풍을 잠재우다

    골문을 향해 돌진하는 '흑표범' 에우제비오. '제2의 펠레'로 불렸다.
    8강전이 열린 장소에는 3,000명의 영국 원정응원단이 쫒아왔다.

    버스에는 '동양의 황태자 박두익'이란 응원문구로 도배질했다.

    상대는 펠레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인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포르투갈.

    예선에서 3승 무패에 9득점의 놀라운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북한은 경이로운 골 행진을 이어갔다.

    1분만에 선제골을 넣더니 20분만에 3대0으로 앞서 나갔다.

    반격에 나선 에우제비오가 연속 2골을 넣어 전반을 3대2로 마쳤다.

    후반에도 에우제비오가 2골을 계속 넣어 결국 3대5로 역전패했다.

    그러나 관중들과 영국 언론은 선전한 북한팀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북한팀이 영국을 떠날 때는 연도에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박수를 치며 환송할 정도였다.

    고든 감독이 만든 영화 <천리마 축구단>에 출연하기 위해 오랜만에 만난 런던 올림픽의 영웅들.
    북한에서는 새벽 1시부터 주민들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면서 생중계 방송을 들었다.

    세골을 먼저 넣었을 때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한 골 한 골 먹힐수록 그의 목소리는 힘이 빠졌다.

    "아~ 또 유세피오였습니다"

    4번이나 들으면서 북한 주민들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잊지 못했다.

    네골째 허용하면서 아나운서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한 전역이 새벽부터 눈물바다로 변했다.

    ◈ 충격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 특명을 내리다 "북괴를 꺾어라"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행사했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북한이 8강에 오르자 전세계 축구팬들도 놀랬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박정희 대통령과 북한 담당 부서인 중앙정보부의 김형욱 부장이었다.

    "우리 대표팀이 국제경기에서 막강 전력의 북한팀을 만난다면…"

    상상만 해도 식은 땀이 흐르는 시나리오였다.

    박 대통령은 즉각 김형욱 부장을 청와대로 호출했다.

    "북괴놈들이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어. 이걸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어야 하나?"

    대통령의 다그침에 김 부장은 쩔쩔매면서 답했다.

    "북괴를 꺽을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중앙정보부는 바로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런던올림픽을 관전했던 축구협회 부회장 김용식과 이사 오완건이 중정에 불려가 진술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모아 팀을 만들어야 북괴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앙정보부가 직영하는 '양지' 축구단이 1967년 2월에 탄생한다.

    '양지'란 이름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정 슬로건에서 따왔다.

    이때부터 축구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축구판 '실미도 부대' 인 양지팀 선수들. 뒷줄 맨 왼쪽이 허윤정, 네번째가 김기복, 다섯번째가 골키퍼 이세연, 아래줄 오른쪽에서 첫번째가 김정남, 세번째가 김삼락, 다섯번째가 이회택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대표팀이나 실업팀도 아닌 곳에서 강제로 선수를 빼가는 일이 계속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중앙정보부의 위세 때문이었다.

    골키퍼 이세연을 비롯해 김호, 김정남, 조정수, 서윤찬, 허윤정, 정병탁, 김삼락, 임국찬 등 쟁쟁한 선수들이 강제로 한 팀에 모였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진학하려고 했던 이회택은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지프차에 실려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결국 반강제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양지팀 선수가 되었다.

    이 팀은 국가대표 팀이 아니었다.

    그저 중앙정보부 산하의 축구팀일뿐이었다.

    그런데도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등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선수들까지 '전출'이란 명목으로 영입했다.

    ◈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최정예 축구부대로 떠오르다

    중앙정보부는 초호화 선수단을 꾸린 후 최고의 훈련 여건을 제공했다.

    김형욱은 첫 훈시를 통해 "이기라면 이기고, 죽으라면 죽으라"고 외쳤다.

    양지팀은 "북괴를 꺾으라"는 대통령과 중정부장의 지시를 받은 최정예 부대로 임명된 것이다.

    이문동에 있는 옛 중앙정보부 본관 건물. 양지팀 선수들은 이 곳에 있는 잔디 축구장에서 연습하고 장교 숙소에서 합숙생활을 했다. (사진=한가람역사문제연구소 제공)
    선수들에게는 파격적인 대우가 주어졌다.

    쌀 한 가마니에 4,000원 하던 시절에 매달 무려 2만 5,000원의 월급이 나왔다.

    이는 국영기업체 중간 간부 수준이었다.

    선수 전원이 장교 숙소에서 살면서 당시 전국의 유일한 천연 잔디구장이었던 중정 본관 운동장에서 마음껏 공을 찼다.

    군대를 아직 안 간 선수에게는 양지축구단 활동을 군 복무로 인정하는 병역 혜택까지 줬다.

    식탁에는 매일 고기 반찬이 올라왔다.

    그만큼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해가 저물 때까지 훈련을 했다.

    창단하자마자 출전한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는 양지의 독무대였다.

    양지는 이 대회에서 전승으로 우승하며 전폭적인 국가의 지원에 보답했다.

    선수 한 명마다 중정요원들이 붙었다.

    이세연 골키퍼의 회고다.

    "어느 날 최정민 감독이 이틀씩 휴가를 줬다. 우리는 명동으로 진출해 진탕 마시고 여자들과 어울려 놀았다. 복귀 후에 감독이 한 명씩 불렀다. '휴가 중에 뭘 했느냐?'고 묻기에 '그냥 집에서 쉬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감독이 씩 웃으면서 서류철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내가 48시간 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가 1분 단위로 적혀 있었다. 선수 한 명당 요원 몇 명씩 붙어 미행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양지팀 내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축구의 '영원한 스승' 김용식 선생.
    당시 날고 긴다는 스타들이 모두 모인 양지는 서로 잘났다고 으시대는 독불장군들의 독무대였다.

    툭하면 서로 충돌하고 조직력도 바닥을 기었다.

    김형욱 부장이 결단을 내렸다.

    "감독을 바꿔. 아무도 까불지 못하게 축구계 대부를 모셔와라"

    1969년 가을 '축구계의 전설' 김용식 감독이 2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어느 선수도 김용식 감독 앞에서 독단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김용식 감독보다 위대한 선수는 전무후무 하기 때문이다.

    ◈ 북한팀과 한번도 맞붙지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하다

    1969년 중앙정보부는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결단을 내렸다.

    바로 유럽 전지훈련이다.

    아시아 이웃나라에 평가전을 치를 때도 배를 타고 가던 시절에 유럽으로 훈련을 떠나는 건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양지팀은 서독과 프랑스, 스위스, 그리스 등을 도는 105일의 대장정에 나섰다.

    평가전에서 26전 18승 2무 6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귀국했다.

    곧바로 지금의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에 해당하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이스라엘과 유고, 호주 등 축구 선진국들이 참가한 대회였지만, 파죽지세로 결승에까지 올랐다.

    결승전에서는 이스라엘의 명문팀 마카비 텔아브비에게 0-1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한국팀이 AFC가 주관하는 클럽 대항전에서 입상한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1969년 10월 12일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이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경기 전날 김형욱 부장이 양지팀 숙소를 찾았다.

    "내가 뭘 해주면 일본을 이길 수 있겠나?"

    막내인 이회택 선수가 당돌하게 대답했다.

    "격려금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형욱은 껄껄 웃으며 즉석에서 두툼한 봉투를 전했다.

    김형욱은 경기 전반이 끝난 후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독려했고, 기세가 오른 한국은 일본을 2-0으로 꺾었다.

    이날 정오 라디오에서는 "김형욱 중정부장이 사임했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그는 사표를 낸 상태에서 경기장을 찾은 것이었다.

    중정부장이 바뀌면서 양지는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1970년 3월 17일 벼르고 있던 북한과의 대결도 해보지 못한 채 소리 소문없이 해체되고, 선수들은 새 팀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3년 남짓 존속한 양지팀은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때 시행한 선진적인 선수 관리와 지원 방안은 대한축구협회로 전수돼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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