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공무원(관리관) 대우, 연봉 최대 9,600만원+α(직무급)...” 이런 조건에도 지원자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 모집 공고 얘기다. 심판관리관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심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정위가 민간에게 개방한, 이른바 ‘개방형 직위’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다.
일정 기간 재직 후 관련 분야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될 가능성도 높지만, 어쩐 일인지 한 달 넘게 지원자가 없다. 지원자가 없어 지난달 8일 첫 모집 공고를 낸 이래, 벌써 3번째 재공고가 나갔다.
문제는 공정위가 원하는 수준의 인재가 오기에 조건이 너무 박하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내심, 판사 출신 법조인으로 기업관련 소송 경험이 풍부한 관리자급 인재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 스펙을 갖춘 인재 중에 대형 로펌의 억대 연봉을 마다하고 제약조건이 많은 공직으로 선뜻 옮겨올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해야 하는 악조건까지 붙어, 인재를 구하는데 더욱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 개방형 직위 늘린다는데...최근 세월호 참사 이후, 개방형 직위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간 전문가를 공직에 앉혀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폐쇄적인 공무원 조직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조만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발표할 ‘국가개조’ 대책에, 개방형 직위 확대 등 강도 높은 공직 개혁안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이미 정부는 실국장급 고위공무원의 20%(166명), 과장급은 10%(255명) 범위에서 개방형 직위를 지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개방’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다. 지난해 전체 개방형 직위 421개 가운데 227개가 충원됐고, 이 중 외부 임용은 82개 자리에 그쳤다. 나머지 145개는 내부인사로 채워졌다. 2007년 56%에 달했던 외부 임용률은 지난해 36%까지 추락했다.
수준 높은 전문가를 개방형 공직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보수가 너무 낮고, 계약기간도 연장을 한다해도 최장 6년 정도에 불과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게다가 최근 들어 퇴직 이후 관련 분야 재취업 제한 규정이 강화되고, 세종시 근무조건 등이 추가되면서 민간 전문가의 공직 기피 현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지금같은 상태에서 민간 충원을 무리하게 밀어붙일 경우 함량 미달의 민간 자원을 충원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는 명분으로 개방형 직위의 숫자만 늘려서는 오히려 공공 서비스의 질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 장관보다 연봉 높은 국장 가능할까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재훈 연구위원은 “현재의 개방형 임용제도는 폐쇄적인 계급제에 직위 분류제적인 개방형 임용제를 단순 접합한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기존의 계급제 직위를 빼고 단순히 그 자리를 외부에서 채우는 방식으로 하다 보니, 평가와 보상도 기존 공무원 조직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제대로 된 인재를 뽑고 싶어도 장관보다 연봉이 높은 심판관리관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김 위원은 “개방형 직위의 단순 증가만으로는 현재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에, 개방을 하려면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없애고 조직 전체를 개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조직을 개방하려면, 일단 공직에 대한 정확한 직무분석을 토대로 직무내용과 직무에 필요한 능력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또 직무에 걸맞는 보수와 처우도 보장해야 한다. 선발 기준과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해 부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루 아침에 진행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폐쇄적인 공직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청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내놓을 공직 개혁안의 강도는 매우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부터 신분보장 폐지, 민간 개방 확대 등 여러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직개혁의 성패는 결국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안목에서 개혁 작업을 꾸준히 진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