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버려짐의 고통…극복 못하면 평생 우울하거나 자살에 이를수도"



영화

    "버려짐의 고통…극복 못하면 평생 우울하거나 자살에 이를수도"

    '피부색깔=꿀색' 융 감독 "엄청난 트라우마...해외입양 멈춰져야 한다"

    불어권에서 판타지 만화작가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융 에낭 감독(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다섯 살 무렵 벨기에로 입양된 융 감독(49세 추정, 본명 전정식)이 자신의 실화를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든 '피부색깔=꿀색'은 한 소년의 성장과 치유의 드라마다.

    으레 상상하는 해외 입양된 아이가 그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한 소년의 내밀한 고백에 가까운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치열한 정체성 찾기라는 점에서 보통의 청소년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실제로 2012년 제작된 이 영화는 전 세계 80개 영화제에 초청돼 23개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는데, 각국의 해외입양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감동받았다"는 말을 감독에게 직접 전하거나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 한국적인 그림체에 유머도 녹아있는 이 작품은 단순히 분노나 슬픔을 불러일으키기보다 가슴 저린 아픔을 전달하며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버림받는 아이가 겪는 고통'이란 얼마나 상상 이상으로 깊고 넓으며, 한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지 가늠해보게 만든다.

    8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세 번째 방한한 융 감독은 노컷뉴스에게 "버려진다는 것은 엄청난 트라우마"라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받아들인 뒤 자신을 재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평생 불안·우울하거나 심하면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융 감독의 한국인 막내 여동생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다.

    융 감독은 네 남매가 있는 다복한 집안에 입양됐으나 이후 양부모가 11개월인 한국인 여자아이를 추가로 입양했다. 하지만 '발레리'로 불린 이 막내는 25살에 원인 모를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융 감독은 딱 꼬집어 자살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자살일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융 감독은 "그렇다고 이 영화를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죄책감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라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받아들여서 해외입양이 중단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더불어 이제는 한국이름 전정식으로 불리고 싶다면서 "한국을 사랑하며 한국인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자신을 버린 조국을 어떻게 사랑하게 됐냐는 물음에는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지 못할 답변을 내놓았다.

    "아무리 엄마가 아이를 싫다고 거부해도 아이는 여전히 엄마를 사랑한다. 제게 한국이 그렇다."

    어린 시절 한국에 무척 화가 나있었던 그다. 차라리 피부색은 같지만 자신을 버리지 않은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모국을 부정하면서 제가 불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는 제 뿌리인 한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을 사랑하면서 비로소 평화를 얻었다. 이제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 20년간 만화작가로 활동하다 40대 접어들어 자전적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나 자신과의 숨바꼭질을 끝내고 싶었다. 픽션을 통해 어린시절부터 관심갖던 뿌리를 잃어버린 사람, 버려짐, 정체성 같은 주제를 다뤘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지쳤다. 결과적으로 성장했고 치유됐고, 나를 재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 영화를 보면 말썽도 많이 부렸고, 가출도 하는 등 반항적인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파괴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18살에 절정에 달했다. 너무 매운 거를 많이 먹어 위에 구멍이 뚫렸고 피의 절반을 잃었다. 심각한 상태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양 엄마가 어떤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게 됐고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피부색깔=꿀색 보도스틸

     

    - 한국적 그림체가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림체는 자기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본다. 이 작품을 위해 따로 스타일을 찾은 게 아니고, 이 작품을 만든 자체가 나 자신과의 화해였기에 저절로 나왔다."
     
    - 자전적 이야기를 하면서 중점에 둔 부분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결말에서는 양 엄마와 생물학적 엄마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이는 내 속의 유럽문화와 한국문화를 인정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더불어 입양자를 희생자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고, 누구를 실망시키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 제목은 왜 피부색깔=꿀색인가?

    "원래는 노란색으로 표시한다. 근데 제 입양서류에 피부색깔=꿀색이라고 적혀있었다. 입양서류를 볼 때마다 그 문장이 아름다워서 다른 제목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닌데 영화에서 고아원 장면 등에서 그런 분위기가 난다.

    "한국이 해외입양을 보내게 된 역사를 설명하고 싶었다. 초창기 해외입양아는 대다수가 미군 등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그러다가 60-70년대는 가난 때문에 보내졌다. 80년대는 미혼모의 아이들이 많았다. 가난은 어쩔 수 없다지만 편견에 의한 입양은 멈춰져야 한다."
     
    - 한국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그건 알 수 없는 문제다. 한국의 다른 집안에 입양되거나 미혼모 엄마가 결혼해 함께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프랑스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극복했는데, 한국도 극복하는 게 낫다. 특히나 지금은 한국이 부유하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 첫 방한이 2010년 이 영화에 나오는 다큐멘터리 장면을 찍기 위해서다.

    "영화를 만들지 않았더라도 반드시 왔을 것이다. 아주 늦게 온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다수의 입양인들이 헛된 희망을 품고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친부모가 자신을 환영해줄 것이라는 헛된 희망. 근데 왔더라도 부모 찾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전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오게 돼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올때마다 더 좋다. "
     
    -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극복한 사람으로서 조언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전 완전한 유럽인도 한국인도 아닌데, 그 사이에서 제 자리를 찾았다. "
     
    - 부모가 된 지금 자식을 키우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이 키우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부모가 되면서 양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난 거짓말도 하고, 물건도 훔치고, 엄마를 괴롭히려고 반항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 화가 난 엄마가 "썩은 사과"라고 비난했는데,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나와 달리 엄마는 그렇게 말하려고 한게 아니었고 심지어 잊고 있더라. 엄마가 아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면서 균형 찾기가 이뤄진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이 있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 이 작품을 본 양부모나 형제자매의 반응이 궁금하다

    "형제자매가 다 좋아했다. 양 엄마는 단 한마디 고맙다고 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