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세월호 참사]대구지하철 유족 "11년 전과 똑같다"



사건/사고

    [세월호 참사]대구지하철 유족 "11년 전과 똑같다"

    11년 지났는데 사고 파악도 대처도 체계無…"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병원갔다 올게" 딸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 아내. 전모(53) 씨가 기억하는 아내와 딸의 마지막 모습이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오전 10시 무렵,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진입한 지하철에 한 정신질환자가 지하철에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마주오던 지하철과 역사 전체까지 화재가 번졌다. 192명이 숨지고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 씨의 아내와 딸은 마주오던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 전 씨는 그렇게 아내와 딸을 가슴에 묻었다.

    그로부터 11년.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들이 탄 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학생 325명 가운데 75명만 구조됐다. 탑승객 476명 중 115명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이번 참사가 남 일 같지 않다는 전 씨. "11년 전 제가 당했던 사고와 똑같습니다. 11년이나 지났으면 더 좋아져야 하는데 사고 파악이나 수습과정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 바다와 땅, 장소만 다를 뿐 몇몇 사람들의 착오로 커진 참사

    "세월호 참사는 바다 위, 배에서 난 거고 우리는 땅 아래 지하철에서 났을 뿐이죠"

    우연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참사의 유형일까. 전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11년 전 중앙로 역에 진입한 기관사는 화재를 인지하고 본부사령실에 보고했지만, 사령실은 "기다려라"고 지시했다, 뒤늦게 "역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기관사는 승객들을 객차에 가둬둔 채 마스터키를 빼들고 현장을 떠났다. 구조대는 3시간 동안 현장 진입도 못했다.

    지난 16일 침몰하는 배에서 "객실에서 기다려라"고 지시한 선장과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참사와 꼭 빼닮았다. 구조가능한 골든타임도 선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놓쳐버렸다.

    ◈ 사고 파악도, 대처도 그 때나 지금이나…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밀폐된 공간에서 화재가 난 터라 승객들이 시신이 대부분 다 타버렸다. 더구나 비행기나 기차처럼 신원확인 없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정확한 탑승객 인원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구시는 "희생자가 지하철에 탔다는 증인 혹은 증거가 있거나 CCTV에 희생자가 있는 경우에만 인정이 된다"고 선을 그어 논란을 일으켰다.

    전 씨는 "사고 직후 300명 넘는 사람이 실종 신고를 했는데 대구시는 첫 공식 브리핑에서 고작 72명만 희생자로 인정해 많은 유가족들의 분노를 샀다"며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11년 뒤, 세월호 참사 탑승객 수는 고무줄 마치 같았다. 사고 당일인 지난 16일에는 477명으로 발표했지만 사흘에 걸쳐 459명→462명→475명→476명으로 바뀌었다.

    무책임하고 어설픈 사고 수습 과정도 마찬가지. 당시 대구시는 불타버린 희생자 디엔에이(DNA) 확인이 채 끝나기도 전, 사고 한 달 만에 물청소를 해버렸다. 유족은 쓰레기 더미에서 시신을 찾기도 했다.

    세월호의 경우, 정부는 사고 발생 사흘 뒤에야 장비를 투입하고 본격적인 수색에 나섰다. 이마저도 의혹 투성이다.

    사상최대 규모로 총력을 다해 구조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지만 사고 현장에 갔던 학부모는 "잠수사도, 헬기도 없었다. 정부는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울부짖었다.

    "정부는 사고 수습 과정에서 행정적인 착오가 있을 수 있다고 쉽게 얘기하지만 실제로 거기에 접하는 가족들로서는 황당하고 원통한 일이 되는 거죠". 정 씨는 고개를 떨궜다.

    ◈ '컨트롤 타워 無' 한 사람의 실수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전 씨는 "선장과 선원들만 무조건 비난하기 보다는 재난 구조 시스템 전체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잘못도 크지만 이같은 사고를 발생시킨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만든 전문가와 정부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고 당시 기관사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했던 전 씨였지만 "기관사 입장에서는 자기 혼자서 상황 보고하고 사람들 대피시키고 다음 열차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없지 않았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재난 대응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세월호 승무원들은 재난 대응 교육을 안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도 승무원 교육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됐다.

    다만 '재난 대응 교육 매뉴얼'은 그 때도 지금도 존재했다. 실행과 이에 대한 관리가 안됐던 것이다.

    전 씨는 "세월호도 감독 기관이 제대로 관리만 했다면 선장이나 3등 항해사가 잘못했더라도 대형 사고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밖는 구조"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