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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이름 알면 과거 보이고 미래 알게 된다"



인물

    "땅 이름 알면 과거 보이고 미래 알게 된다"

    한국 땅이름학회 배우리 명예회장

    배우리

     

    한 평생을 우리말과 땅 이름에 매달려온 배우리 선생은 1938년 서울 마포 복사 골에서 태어나 30여 년 전부터 우리말과 땅이름에 관심을 두고 우리나라 각 지역을 장돌뱅이처럼 두루 돌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하나 둘씩 상당한 지식을 축적하게 됐고 우리 땅에 관한 새로운 안목을 틔웠다. 그러다보니 고서와 옛 지도 등 관련 자료를 두루 수집하게 되고 심취하고 몰두해 차츰 이 땅이름 분야의 권위자로 발돋움했다.

    한글 이름 하면 떠오르는 분,땅 이름 하면 떠오르는 분이 된 것이다.

    서울 마포-용산 토박이로, 원래 출판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지금은 주로 땅이름과 관련한 강의와 기고로 바쁜 세월을보내고 계신 땅이름학회 배우리 명예회장을 5월 10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다.

    ◇ 땅의 뿌리를 찾아 떠난 30년 기행

    [BestNocut_L]▶ 선생님 성함은 누가 지으셨나요?

    이 ''''배우리''''의 ''''우리''''라는 말이 우리말의 전통적인 의미가 배어있는 것 같고 토박이와 관계있는 것도 같고 성까지 배씨이다 보니 ''''배운다''''는 미래지향적인 이름이라서 좋다고 누가 지었냐고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세요.옛날에 한글학회에 많이 다닐 때 제가 지은 이름이에요. 한글학회에 다니면서 많은 분들에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봤더니 이름이 좋다고 그걸로 결정하면 되겠다고 해서 정해 버렸어요.

    ▶ 성인이 되신 후에 이름을 바꾸신 거로군요.

    이름을 바꾼 게 82년도니까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 본명은 뭐였나요?

    서로 상(相), 밝을 철(哲), 상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지금도 옛날 친구들은 그 이름을 기억하죠. 그런데 제가 유명인이 아닌 유명인이 되다 보니까 책이나 TV에서 보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잖아요. 그래서 저보고 떴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웃음) 옛날 친구들은 지금도 상철이라고 부릅니다.

    ▶ 옛날에는 아들을 낳으면 항렬을 따르잖아요.

    ''''서로 상''''자가 돌림이에요. 아버님이 항렬을 따르다보니 형제들, 특히 6촌이 많았는데 ''''서로 상''''자를 너무 많이 써서 지을 것이 없더래요. 그래도 상철이라는 이름이 남아있어서 그걸로 지었다고 하세요.(웃음)

    ▶ 전국방방곡곡을 다 돌아다니신 건가요?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녔다고 소개를 하셨는데 정말 장돌뱅이가 됐어요. 지금 이 나이가 되서도 돌아다니니까요. 당시에는 등산화도 안 신고 구두를 신고 돌아다녀서 구두에 묻은 흙을 보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어요.(웃음) 당시에는 시대가 그랬으니까 동네에 이상한 사람이 오면 간첩인줄 알고 무조건 신고부터 했어요. 그래서 지서(파출소)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기도 했죠. 저는 증거가 하나 있어요. 글을 쓰니까 글과 함께 사진이 실려서 제 신분증 역할을 했죠. 그걸 일부러 들고 다녔는데 주민증보다 그게 더 나았어요. 확실하거든요.

    ▶ 남한 땅 안 가 본 곳이 없으실 것 같아요.

    일일이 무슨 리까지는 다 기억하지 못하겠는데 면 단위까지는 아마도 제 발길이 닿았을 걸요.

    ▶ 몇 년 동안 다니신 거죠?

    30년이 넘었지요.

    ▶ 북한에도 가보고 싶으시겠어요.

    북한 쪽을 못 가봤는데 기회가 돼서 금강산 일대를 보고 왔어요. 북측의 허락을 받아서 바깥을 조사하고 들어간 적이 있어요. 남한과 땅 이름의 흐름은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아우네 장터, 3.1운동의 본거지 병천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하잖아요. 북한에서는 아우네라는 지명은 없어도 비슷한 지명은 있어요. 우리도 익히 아는 아오지 탄광의 아오지가 아우네와 같은 이름이에요. 강원도 정선 땅에 가면 아우라지가 있는데 그것도 같아요. 아우네, 아오지, 아우라지가 다 같은 이름이에요. 어떤 뜻이냐 하면 ''''물이 아우러진다, 합해진다''''는 거거든요. 아오지 탄광이 있는 아오지에도 두만강의 한 지류가 합쳐집니다. 거기서도 아우른다는 말을 하고 여기서도 하니까 같은 흐름을 쓰는 거죠.

    ▶ 북한의 이름이 바뀐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요.

    엄청 바뀌었어요. 지금의 지명대조표를 보지 않고 지명만 보고는 그곳이 어딘지 찾기가 어려워요. 그런 곳이 무척 많습니다. ''''열매''''라는 이름을 따서 동 이름을 만들거나 ''''능금 군''''이라고 만드니까 옛날에는 그런 곳이 있었나요? 더군다나 그곳은 ''''김정숙 군''''이라는 것도 만들어 놨잖아요.그래서 북한에 가면 자강도라는 곳도 있잖아요. 지금 우리 또래 사람들은 북한 사정을 모르니까 자강도라는 곳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하지만 자강도는 몰라도 ''''자성''''과 ''''강계''''는 알거든요. 두 글자를 하나씩 딴 거예요. 강계는 강 유역을 뜻하는데 압록강을 말하는 거거든요. 자성이라는 고을이 있었는데 평안북도에서 뚝 잘라서 함경도 일부를 합해서 자강도를 만든 거예요.우리 같은 연배 사람들은 잘 모를 거예요. 왜 자강도인지. 우리 역사 속에서도 양도와 광주를 합해서 양광도란 말이에요. 북한도 그런 식으로 해서 자강도가 나오는 거죠.

    ▶ 옛날 이름을 알고 계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다녀오시면 좋겠어요.

    다녀오는 것도 그렇지만 조금 안타까운 것은 후배들이 혹은 후손들이 이런 사실을 알아서 제대로 전수를 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 이름의 줄기는 알아야 하잖아요. 끊어지면 안 되는 거니까. 제가 그 줄기를 잇는 한 몫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향력이 미미하죠.

    ◇ 땅의 이름은 점잖은 예언가

    ▶ 땅의 이름이 점잖은 예언가라는 글을 쓰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조상들이 이름을 지을 때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라고 짓지는 않았겠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후세에 이르러 땅 이름대로 현상이 변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거든요.

    ▶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세요. 국제공항인 영종도라는 이름하고 어떤 연관이 있는 거죠?

    영종(永宗)도라는 말 자체에서 벌써 느껴지는데요. 영은 길다는 뜻이고 종이라는 것은 마루이기 때문에 요즘 말로 풀어쓰면 긴 마루, 즉 활주로를 연결하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거죠. 영종도라는 말은 애초부터 있었고 이전에는 자연도(紫燕島)인데 연은 제비 연이에요. 날짐승이잖아요. 비행기거든요. 그곳에는 잠자리와 비슷한 잔자리라는 마을 이름도 있고, 아무튼 날짐승 마을 이름들이 쫙 깔렸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쉽게 보는 전라남도에 광양(光陽) 이라는 곳이 있잖아요. 제철소가 들어섰잖아요. 광양이라는 이름을 나중에 만든 게 아니고 조선시대부터 불렀던 이름이에요. 또 하나 그 근처에 영광(靈光)이라는 곳이 있는데 ''''신비스러울 영''''에, ''''빛 광''''자거든요. 원자력이라는 것을 그것에 연결지면 아주 잘 맞아떨어지죠.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진 다음에 영광이라는 이름이 나온 게 아니잖아요. 원자력이라는 신비스러운 빛이 나오고 있잖아요. 강원도 양양에도 학포리(鶴浦里) 같은 곳이 있는데 학이 날아간다는 의미니까 이것도 날짐승이에요. 이렇게 날짐승과 관련된 곳은 공항이 잘 들어서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땅이름 자체가 예언가가 아니라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그래서 사람들이 저보고 ''''땅이름을 보면 어디가 뜰 거라는 것을 알겠는데 웬만하면 땅 좀 사서 돈 벌게 어디가 좋겠냐?''''고 묻는 경우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우리 조상들도 그런 말을 했죠.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땅 이름이 씨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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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새재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새재는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원래 학문적인 의미대로라면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인데,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풀자고 한 것인지 너무 높아서 날짐승도 쉬어가는 고개란 뜻으로 해석을 했다고 해요. ''''새''''자가 들어가니까 날짐승과 연결 짓는 사람들이 많은데 땅이름에서는 대부분 사이를 뜻합니다.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큰 고개의 의미 외에 다른 건 없습니다.

    ▶ 새재라는 이름이 다른 곳에도 있습니까?

    무척 많습니다. 전국에 새재라는 데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500개가 넘을 거예요. 아버지가 사시던 곳이 안성 금광면인데 그곳에도 새재가 두 곳이나 있어요. 마을 이름도, 고개도 새재에요.

    ▶ 산과 산 사이를 일컫는 건가요?

    그것보다는 고을과 고을 사이를 말하는 거죠. 예를 들어 ''''새 뜰''''이라고 하면 새의 뜰인 거죠. 심지어 중부지방의 사투리는 ''''쇠 금''''자로 바뀌어서 금촌리나 금곡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그게 다 새에요. 사이라는 의미이죠.

    ▶ 강 이름도 그런 것들이 많은가요?

    한탄강(漢灘江)같은 경우는 ''''한여울''''에서 나온 것인데 이 ''''한''''이라는 것은 크다는 의미이고 여울은 ''''여울진다''''의 여울이거든요. 큰 여울, 즉 ''''여울 탄''''자입니다. 석탄이라는 탄자는 아니에요.

    ▶ 그곳이 유독 사건이 많은 곳이잖아요.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 땅이름이 씨가 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한여울이라고, 그대로 썼으면 그런 사건들이 안 일어났을지도 몰라요. 한탄이라는 말을 쓰니까 한탄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기는 거예요. 6.25 때 그곳을 넘어가다가 넘어가보지도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요. 한탄강이라는 곳이 남한과 북한을 잇는 아주 중요한 길목이에요.

    ▶ 철원 쪽에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도 있었잖아요.

    궁예가 있었던 철원(鐵原郡)도 사실은 ''''쇠 철''''자잖아요. 쇠, 조, 금자가 들어가는 것은 새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인데 남한은 다른 말과 복합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샅''''이라고들 해요. 가운데라는 뜻이에요. 예를 들면 ''''사타구니''''의 경우 ''''샅''''과 ''''아구니''''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사타구니가 된 거죠.그런데 뒤에 있는 말과 붙여지면 ''''ㅌ''''이 ''''ㅂ''''으로 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면 삽재, 삽둘, 삽다리 같은 것들이 나오죠. 그래서 샅이 나오면 삽과 연결 짓는 사람은 땅이름을 초보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 옛날 조상들이 대부분 지형을 보고 이름을 지으신 거죠?

    대부분 지형과 위치입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지나가다가 이름을 뭐라고 했노라 하는 말이 없어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에요.

    ▶ 주로 온천이 나오는 곳은 ''''온''''자가 붙잖아요.

    그렇습니다. 따뜻할 ''''온''''자가 붙여진 곳이 많아요. 북한의 온정리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인데 금강산에 갔을 때도 그 일대가 ''''온''''자가 붙었어요.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어요.6.25 직후에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가니까 더운 물이 나오더라. 더운 물이 나온 곳은 ''''온''''자 지명이더라. 그래서 김포 등을 엄청나게 팠다가 망한 사람들도 있어요. 알고 파야죠.

    ▶ 서울 근교의 산들, 관악산, 북한산 등도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그곳뿐만 아니라 남산, 새로 개방된 북악산, 인왕산 등을 이야기 안할 수 없죠. 서울 근교의 산 중에서 특히 학교가 들어간 일대 또는 우면산 같은 곳은 우리가 눈 여겨 볼만 해요. 관악산(冠岳山)의 ''''관''''자는 머리에 쓰는 관이에요. 그것은 벼슬을 말하는 거고 결국 관직이고 다시 말하면 학사, 박사거든요. 관악산 기슭에 서울대학교가 들어섰잖아요. 지명이 그런 씨앗을 만들어줬어요. 그러니까 관악산이 서울대학교를 불러온 거예요. 예를 하나 더 들자면, 남산 기슭에 필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동국대학교를 불러왔잖아요. 옛날 지명은 ''''붓 골''''인데 학교를 불러들인 겁니다. 원래 이것도 글씨 쓰는 붓으로들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닙니다. 한성은 예전에 동,서,남,북,중부 이렇게 권역을 나누어서 행정을 담당했는데요, 그 중심부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부''''입니다. 지금의 필동이 바로 그 ''''부''''가 있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붓골입니다. 서울에는 동부의 붓골, 서부의 붓골 각각 다 있었지요! 그런데 후세 사람이 이 붓골을 보고 이게 쓰는 붓인가보다 해서 필동이라고 이름지은겁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그렇지만 역시 땅이름이 씨가 돼서 그런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고 할 수 있어요. 요즘은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용산이 뜨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고 해요. 배우리 선생님이 살아서 그렇다고 하네요.(웃음)

    ▶ 부동산에서 찾아오는 에피소드는 없으세요?

    찾아올 뿐만 아니라 부동산 업자들이 홈페이지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까 무조건 자기 동네에 관한 글을 멋지게 써달라고 해요. 그래서 찾아오는 손님한테 이 동네가 이런 곳이라고 설명하면 먹힌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비싼 글을 많이 씁니다.(웃음)어느 누군가가 내 글을 허락도 받지 않고 인터넷에 올린 일이 있었어요. 자기 부동산 사무실이 있는 동네의 이야기를 좀 좋게 썼는데 그걸 그대로 따다가 올린 거예요. 포털 사이트에 여기저기 올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메일로 이건 아니니, 어서 삭제를 하라고 이야기가 잘 마무리 돼서 피해보상을 조금 받았어요. 피해보상을 받은 것은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인 거죠. 저작자의 동의와 양해 없는 일방적인 전재는 저작권 침해입니다. 그걸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 일본에 빼앗긴 땅이름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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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놀라운데, 일제 강점기에 우리 땅이름을 왜곡하고 나쁘게 만든 일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일제가 많이 저질러놓았습니다. 두 동네를 하나로 합해서 하나의 이름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되면 두 동네 이름이 모두 죽습니다. 예를 들면 인사동(仁寺洞)이 그러한데 인사동이 조선시대에 썼던 이름이 아닙니다. 큰 동네를 여러 개 묶은 것을 관인방(寬仁坊)이라고 하는데 관인방 속에 절골이 있었어요. 절골이 사동(寺洞)이고 사동이 커지다 보니까 대사동(大寺洞)과 소사동(小寺洞)으로 두 마을로 나누었던 거죠. 어쨌든 사동은 ''''절 사''''자, ''''고을 동''''자 해서 사동이니까 일본인들이 여기 있는 동네를 한 곳으로 합해가지고 사동의 사자를 하나 따고, 관인방의 어질 인자를 하나 따서 인사동을 만든 거예요. 우리는 그걸 모르고 전통의 동네인 걸로 아는 거죠. 물론 모습은 전통의 동네이지만 이름으로는 전통의 동네가 아닙니다.

    이렇게 일본인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받아쓰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인왕산 근처의 옥인동(玉仁洞)도, 옥동(玉洞)이라는 동네는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고 그곳에 인왕동(仁旺洞)이라는 동네가 또 있어요. 옥동의 ''''옥''''자와 인왕동의 ''''인''''자를 딴 거예요. 합쳐놓으니까 두 이름이 다 죽죠. 인왕동이 남든지 옥동이 남든지 그래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합성지명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법정지명으로 굳어져서 후세에게 전해지면 안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장씨 성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인동 장씨가 많아요. 지금은 인동이라는 행정지명도 없고 법정지명도 없어요. 인동이라는 곳은 사또가 다스리는 경상도의 큰 고을을 뜻해요. 처음에는 선산군으로 합해지더니 지금은 구미시의 한 동네로 들어가 버렸어요. 인동도 아닌 인의동이라는 동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 학교도 그런 식으로 비하된 곳도 있다면서요.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그대로 붙인 것들이 많은데 학교이름도 우리가 옛날에 불렀던 토박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가면 더 좋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병천 중학교가 아닌 아우네 중학교, 삽교 중학교가 아닌 샅다리 중학교, 이렇게 가면 좋은 거죠.오목교도 오목다리 혹은 오목내거든요. 그러면 오목내역이거나 오목다리역이 되어야 우리말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되는 거예요.

    요즘 제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데 골목골목마다 길 이름 붙은 걸 보셨을 거예요. 예쁜 이름들로 많이 바뀌고 있는데 제가 지은 건 아니고요, 다 감수를 한 겁니다. 구청에서 이름들을 참 재미없게 붙여 온 사람들이 많아요. ''''노인정 길''''이 있으면 뭐 하겠어요. 그래서 은빛 머리, 실버를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은빛 길''''로 바꿨어요. 방송국이 몇 군데가 있는데 그곳은 ''''방송국 길''''이라고 하지 않고 ''''메아리 길''''이라고 붙였어요. 다 제 손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초등학교 길''''보다는 ''''새싹 길''''로 바꿔서 ''''초등학교 길''''은 하나도 없어요.

    ▶ 한글 이름 중에서 재미있는 이름들이 있어요. ''''박차고나온놈이샘이나'''' 같은 이름도 있고요.

    옛날에는 긴 이름도 신청을 하면 다 받아줬어요. 하지만 지금은 성과 이름을 합쳐서 여섯 글자를 넘기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이 글자 수를 넘어가면 아예 동사무소에서 신청할 때 프로그램에 입력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죠. 이건 대법원에서 정한 거예요. 여섯 글자가 넘어가면 불편하거든요. 황보, 남궁, 선우, 독거 등 2음절의 성도 많은데 이런 경우는 이름을 4음절 이상은 못 짓는 거죠.

    ▶ 마포 복사 골에서 태어나셨어요. 서울 토박이세요.

    지금은 도화동(桃花洞)인데 제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복사골 아이라고 했어요. 학교에 가도 복사골 아이라고 불렸고요. 아현동에 갈 때도 아현동 간다고 하지 않고 애오개간다고 했어요. 굴레방다리간다고도 하고요. 순우리말로 많이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광복 이후에 전부 동으로 바뀌니까 복사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어진 거죠.자하문 같은 경우는 옛날 선비들이 지은 문 이름이니까 그렇게 지을 수 있어도 동네 이름은 그대로 남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어요. 남가좌동, 북가좌동, 이렇게 부를 필요 없어요. 남가좌1동, 2동, 이렇게 길게 부를 필요도 없고요. ''''모래내동''''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거예요. 남가좌라는 이름을 조선시대에도 쓰기는 했지만 모래내를 더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모래내동도 만들어야 하고 뚝섬동, 장승배기동도 만들어야 하는 거죠.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소박한 농사꾼이셨어요. 안성에서 살았는데 누님들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저는 마포로 올라와서 태어난 거예요.

    ▶ 형제는 어떻게 되시나요?

    모두 일곱 남매였는데 옛날에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라서 넷은 죽고 지금 삼남매만 남았어요.

    ▶ 마포, 용산의 옛 모습이 기억나세요?

    한강에서 수영하고 스케이트도 탔던 모습들, 다 기억납니다. 어머니가 한강에서 빨래하시고 다시 산비탈 동네로 올라가셨어요. 당시는 빨래판 돌들을 갖다 놓고 아낙네들이 그곳에서 빨래를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곳에서 죽을 뻔했어요. 어머니가 잠깐 빨래하시는 동안에 빨래방망이를 배처럼 띄워서 갖고 놀았는데 저 아래로 떠내려가는 방망이를 붙잡다가 물에 빠진 걸 누가 건져줬어요.(웃음)

    ◇ 땅이름과 사투리, 우리말이 되살아날 때까지

    ▶ 우리 이름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2남 1녀인데 아이들의 이름을 한글로 짓게 되면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출판사에 다니면서 청소년 신문에 연재를 하나 했는데 ''''사라져 간 우리말''''이라는 코너를 하나 만들었어요. 연재물을 보던 분 중 한분이 그곳에 나온 ''''다솜''''이라는 이름이 참 좋다고 자식의 한글 이름으로 쓰고 싶은데 괜찮겠냐고 해서 쓰라고 했어요. 다솜이라는 이름이 퍼진 게 그게 시초였어요.다솜이라는 말은 사전에도 없어요. 원래 ''''닷''''은 사랑한다는 뜻이고 ''''옴''''은 명사형을 취한 접미사처럼 썼기 때문에 하나로 합하면 ''''닷옴''''인 거죠. 그래서 사전에는 ''''닷옴''''은 있어도 ''''다솜''''은 없어요. 다만 한글을 풀어쓰면서 ''''다솜''''을 붙인 건데 이 이름이 방송에 나가면서 누가 지었냐고 관심이 집중되면서 제가 창시자가 된 거죠.

    ▶ 학교에 다니실 때도 국어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글짓기 대회에도 대표로 나간 걸 보면 글은 잘 썼던 것 같아요. 지금도 글은 잘 쓰는 편이죠.

    ▶ 선생님의 자제분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첫째 아이가 여자아이인데 ''''배꽃나라''''에요. 둘째는 아들인데 ''''배힘찬''''이고 막내아들은 ''''배한''''이에요. 크다는 의미지요! 이름이 세 글자, 두 글자, 한 글자로 점점 줄어들죠.(웃음)

    ▶ 부인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웃음)

    참 재미있는 게 아내 이름은 ''''이솔마을''''이에요. 성은 이씨고 이름이 솔마을인데 제가 지어줬어요. 원래 이름은 ''''이전자''''라는 일본식 이름인데 우리말 연구하고 땅 연구하는 사람의 아내 이름으로는 너무 안 어울리잖아요. 바꾸고 나서는 만족해해요. 82년도에 같이 바꿨어요. 그런데 불편한 점은 좀 있어요. 은행에 가면 이름을 써 내잖아요. 솔마을이라는 이름을 무슨 식당 이름으로 아는지(웃음) ''''사모님, 가게 이름을 쓰지 마시고 이름을 쓰세요.'''' 그럴 때마다 설명을 해야 하는데 골치가 아프대요. 본명이 맞다고 하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봐요. 왜냐하면 60이 넘은 사람이 이런 이름을 갖고 있다면 하면 믿어지겠어요.

    ▶ 땅이름, 우리말 연구하고 다니시면 수입이 있으셨나요?

    전에는 완전히 돈을 뿌리고 다녔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느라구요. 출판사 편집장할 때 수입이 짭짤했고 저녁에는 학원 국어강사로 나가서 당시에는 곶감 꼬치 빼먹듯이 쓰고 다녀도 괜찮았어요. 그때 그렇게 많이 흘리고 뿌리고 다녔는데 지금은 다 거둬들이잖아요. 글도 쓰고 이렇게 방송도 하고 기업 이름도 짓고 강의도 다니면서요. 한솔제지, 하나은행도 제 작품이에요. 이사 두 분이 오셔서 저한테 그 이름을 받아가셨어요.그래서 집사람이 옛날 일에 대해서 굉장히 미안해해요. 아무리 돈을 벌어다 준다고 해도 집안일 내팽개치고 땅이름 연구한다고 돌아다니고 사투리 연구한다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먹고 살만하고 곧 아이도 태어나는데 이제는 가정을 돌봐야지 어디를 돌아다니느냐고.'''' 그래도 뿌리치고 돌아다녔지만요.(웃음)그게 바탕이 되고 거름이 되어서 지금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기만 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집사람은 그 당시 이야기만 나오면 미안해하는 거예요.

    ▶ 개인 작명도 하시는데 가장 잘 지었다고 자부하신 이름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제가 방송에서 소개를 잘 못하는 이유가 한번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이용해서 써야 하는데 자꾸 변형을 하는 거예요.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리면 강씨 성을 가진 세쌍둥이였는데 지금은 커서 중학생이 되었을 거예요. 이름을 ''''나루'''', ''''두루'''', ''''고루''''로 지어줬어요. 처음에는 엄마가 얼굴도 비슷하고 이름도 비슷해서 첫째, 둘째, 셋째로 불렀대요. 나루가 이 아이인지, 두루가 저 아이인지 잘 모르겠더래요. 그러다가 어떻게 외웠냐 하면 좋은 말은 아니지만 ''''나두고, 나를 두고 어디를 가느냐'''' 이렇게 외우기 시작했대요. 외우기 어려웠나 봐요. 지금은 아주 잘살고 있어요.

    ▶ 지방을 많이 다니시면 많은 분들을 만나보셨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를 그렇게 달갑게 쳐다보거나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은 군수, 면장, 이런 사람들이 먼저 알아봐요. 배우리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어요.(웃음)제 이름을 대면 명함 내놓기 전부터 알아봐요.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한글이름, 땅이름 운동을 해왔고 이야기나 책을 통해서 많이 나갔기 때문에 많이들 알더라고요. 그래서 면 단위마다 다 가봤다고 하는 이유가 가면 알아주기 때문에 숙식걱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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