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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TV를 켜도 먹을거리, 우편함에 들어오는 광고 홍보물도 온통 먹을거리 입니다.
바야흐로 음식 문화의 홍수시대라 할 수 있죠. 아무튼 배부른 시대임에는 틀림없는데, 연말연시 불우한 이웃이 있음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 한 해가 저물어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개화기에 들어오기 시작한 서구 음식들은 점차 널리 퍼져 빵, 케이크, 비프스테이크, 수프, 아이스크림, 양과자 등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특히, 도회지의 부유층들은 외국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였죠. 서민들은 외국 음식을 구경할 기회조차 없었지만, 도시인과 일부 계층에서는 외국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10년 이후 가공식품이 들어오고 식품 제조업체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1919년 사리원에 당면(잡채) 공장이 처음 생겼습니다.
1920년에는 면실유와 설탕 공장이 생겼고, 1920년경에는 난곡 기계 농장에서 우유를 생산했고, 양돈을 하여 햄과 소시지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937년에는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생겨서 낙농 제품도 출시되었습니다.
1930년대의 요리책인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 등에서는 이미 서양요리, 일본요리, 중국요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홍선표는 1940년 ''조선요리학''에서 서양의 영양학과 식품학에 대한 이론과 식사법을 썼습니다.
그는 식사법의 원칙으로 "첫째, 조금씩 여러 번 먹고, 배가 고프기를 기다려서 먹는다.
둘째, 식사할 때 오래 씹어 먹는다.
셋째, 위장의 8할 정도로 너무 배부르게 먹지 않도록 한다.
넷째, 자연식 식사법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김호직은 1944년 ''조선식물개론''에서 칠첩반상의 영양가를 환산했고, 식품 조사표 및 기호도 조사와 식품의 영양 평가 계산표를 실어서 신식 학문으로서의 연구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언론인이자 수필가였던 조풍연은 "경성의 4개 백화점에는 대식당이 마련되어 정결하게 꾸며 놓았는데, 비교적 위생 시설이 좋고 음식 값이 싼 덕으로 고객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화신(和信)에서는 경양식도 팔았지만 한국 음식을 주로 팔았고, 미즈고시(三越)에는 1원50전짜리 양정식과 각종 원두커피가 유명하고, 정자옥(丁子屋)에서는 메밀국수가 총애를 받고, 삼중정(三中井)은 자리가 아늑해 데이트 장소로 이용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식 어묵집과 우동집은 1927년경에 우미관 앞에 처음 들어섰고, 라면집은 1940년 명동의 국립극장 자리 앞의 노점상이 처음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기호식품도 다양해져서 커피, 홍차, 일본차, 중국차 등을 마셨고, 여름철에는 사이다·라므네 등의 청량음료와 아이스크림, 일본의 양갱(羊羹)이나 밤만두 등의 과자를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온 가족과 함께 따뜻하고 오붓하게 맛있는 음식과 함께 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 아닐런지요?
노량진 이그잼고시학원 한국사 김유돈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