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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소에 신음하는 노동자…"남은 건 빚과 두려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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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배소에 신음하는 노동자…"남은 건 빚과 두려움뿐"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한 가닥 희망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금속노조 포항지부 DKC지회 해고자 신명균(46) 씨는 매일 오전 8시가 되면 일터가 아닌 농성장으로 출근한다.

    신 씨는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고현리에 있는 DKC 공장 인근에 비닐하우스에서 회사 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맞서 투쟁 중이다.

    올해로 5년째 농성을 하고 있는 신 씨에게 남은 건 신용불량자란 멍에와 쌓여가는 빚, 그리고 이 빚이 대물림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뿐이다.

    신 씨는 "아내가 '우리 이제 빚더미를 안고 살아야 한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져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 씨는 2008년 금속노조 포항지부 DKC지회장이었다.

    당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라 벌인 부분파업이 전면파업으로 확대되면서 사측과의 갈등도 격화됐다.

    결국, 회사 측은 파업과 관련해 지도부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법원에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파업은 끝났지만, 업무에 복귀한 파업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10억 원의 가압류가 시작됐다.

    회사 측은 또 지도부 신 씨 등 일부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해고했다. 신 씨는 업무 복귀 두 달 만에 농성장으로 다시 나와야 했다.

    가압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은 신 씨는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 없었다. 가압류는 신 씨에게 족쇄처럼 따라다녔다.

    그렇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르바이트 수준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바로 대리운전. 낮에는 농성장에서 가압류와의 싸움을 진행하고, 밤 8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

    대리운전이라고 해봤자 하루 부지런히 움직여 손에 쥐는 돈은 3만 원 남짓. 이마저도 농성장 당직날을 제외하면 평균 15일 정도밖에 안 된다.

    다행히도 100여만 원의 아내 수입이 있어 그나마 생활을 하곤 있지만, 이마저도 턱없이 부족하긴 마찬가지.

    매월 월세로 26만 원에 전기세 등 공과금이 더해지면 40만 원 정도가 고정비로 지출된다.

    여기에 임대아파트 월세 보증금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빌렸던 1,900만 원의 대출원금과 이자는 갚을 여력이 없어 카드 돌려막기를 5년째 이어가고 있다.

    카드 돌려막기 규모도 점점 불어나 이제 2,000만 원가량이 돼간다. 주변 지인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도움을 준 이들은 20여 명, 빌린 돈은 1,000만 원이 넘는다.

    신 씨는 해고 이후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얼마 안 돼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신 씨는 "처음에는 2만 원, 3만 원이라고 생각했고 부담이 크지 않아 카드 돌려막기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투쟁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경제적 부담이 가중됐고 이자나 생활비가 없는 상태에서 쓸 수 있는 거라곤 카드서비스밖에 없잖아요"라고 했다.

    신 씨는 무엇보다 아내와 농성 중인 동료들을 볼 때면 자괴감과 책임감으로 고통스럽기만 하다.

    신 씨는 "아내가 매우 힘들어하죠. 남편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때마다 고민하지만, 해결책이 없어요. 그런 아내만 생각하면 피눈물 나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동료들을 볼 때에는 어떠한 말도 위로가 안 돼요. 저 친구들을 어떻게 하면 가압류에서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뿐이에요"라고 했다.

    그렇다고 신 씨는 가압류와의 싸움을 그만둘 수도 없는 처지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자신의 빚과 가압류가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앞날을 막을까 걱정에서다.

    신 씨는 "비참하고 참담해요.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투쟁을 포기할 수 없어요. 내가 포기하더라도 손해배상은 살아서 움직이고 족쇄로 남을 거잖아요"라고 토로했다.

    이효리의 자필 편지와 4만7천원(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이런 가운데 손해배상과 가압류에 시달리는 노동자를 돕기 위한 국민들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며 한 가닥 희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파업 이후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지원하자는 시민모금 운동 '노란봉투'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

    아름다운 재단은 범시민사회기구 '손해배상 가압류를 잡자, 손잡고'와 공동으로 모금운동을 벌이고 여기서 모인 돈으로 노동자들과 가족을 위해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시작한 '노란봉투' 프로젝트는 보름 만에 1차 모금액 4억 7,000만 원을 달성하고, 현재 2차 모금이 진행 중이다. 10일 현재 2차 모금은 목표액(4억 7,000만 원)의 88%인 4억 2,000만 원가량이 모였다.

    특히, 1차 모금에서 가수 이효리 씨가 "노동자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학원비를 아껴 4만 7,000원을 보냈다는 한 주부의 편지를 읽고 부끄러움을 느껴 동참하게 됐다"는 편지와 함께 4만 7,000원을 후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서경원 팀장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배소, 가압류는 노동자 개인은 물론 가족,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 아파도 통장에서 한 푼도 꺼내쓸 수 없는 벼랑으로 위기로 내몰게 된다"며 "더이상 돈 때문에, 모두가 모른척하는 외로움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분들이 없게 해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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