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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 잡혀가는 시대, 항변은 무슨…"



사회 일반

    "자고 나면 잡혀가는 시대, 항변은 무슨…"

    -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 짓던 곳을 하루 아침에 빼앗겼지만 제대로 항변도 못해
    - 소송 포기하지 않으면 서류위조죄 등으로 잡아다 실제로 옥살이 시켜
    - 50년만에 평당 300만원 배상, 지금 서울에 평당 300만원짜리 땅이 어디 있다고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2월 20일 (목)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허의신 (토지 빼앗긴 피해자 아들)

     

    ◇ 정관용> 60년대 박정희 정권에 의해서 농지를 강탈당한 농민과 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땅을 돌려 달라 이 소송 낸 지 무려 47년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 이른바 구로공단 얘기인데요. 총 291명, 650억 5000여만 원, 이자까지 합하면 1100억에 달하는 사상 최대 국가배상을 받게 됐는데. 이 47년이라는 긴 싸움의 과정 어땠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당시 땅을 빼앗겼던 허명주 씨의 장남 허의신 씨를 연결합니다. 허의신 씨?

    ◆ 허의신> 네.

    ◇ 정관용> 안녕하세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러니까 원래 아버님께서 그 구로공단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어요?

    ◆ 허의신> 네.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를 지었었죠.

    ◇ 정관용> 할아버지 때부터.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럼 몇 년도에 땅을 뺏긴 겁니까?

    ◆ 허의신> 그때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몇 년도라고는 제가 좀 그런데. 최초로 서울 시내에 철거민을 내보낸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구로동에다가 공영주택, 간이주택, 구호주택해서 철거민들을 보낸 일이 있어요. 그때 60년대 초예요. 그래서 그때 시행이 된 거죠.

    ◇ 정관용> 공단 조성하기도 전에 철거민용 주택 지어야 되니까 나가라, 이렇게 했단 말이죠?

    ◆ 허의신> 나가라는 게 아니라, 그냥 논밭이었거든요? 논밭이 이렇게 그냥 나갈 것도 없이 거기다가 들어선 거죠 뭐.

    ◇ 정관용> 논밭에다 그냥 집을 지어버렸다?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 당시에 우리 허의신 씨는 몇 살쯤이었어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렇게 집을 그냥 논밭에다 지을 때, 허의신 씨는 몇 살 때쯤이었습니까?

    ◆ 허의신> 지을 때는, 그때 한 20살 정도 됐네요. 20살 정도 됐겠네요.

    ◇ 정관용> 그럼 뭐 그 과정을 소상히 다 아시겠네요, 그렇죠?

    ◆ 허의신> 네.

    ◇ 정관용> 아니 그렇게 무작정 와서 집을 짓고 농사를 그만 지어라 이렇게 할 때, 아니 우리 여기 농사짓던 땅이다. 항변 안 하셨어요?

    ◆ 허의신> 항변을 하다니요? 그때 잘못 얘기하게 되면 그냥, 잘못 되면 큰일 나는데.

    ◇ 정관용> 아, 그렇죠. 5.16쿠데타 직후니까, 그렇죠?

    ◆ 허의신> 그럼요.

    ◇ 정관용> 그래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사셨어요?

    ◆ 허의신> 사는 집은 그대로 있고요.

    ◇ 정관용> 사는 집은 있고 농사는 못 짓고.

    ◆ 허의신> 농사만 못 지은 거죠.

    ◇ 정관용> 그러다가 거기다가 구로공단을 조성하지 않았습니까?

    ◆ 허의신> 네. 구로공단을 조성했죠.

    ◇ 정관용> 그 공단을 조성하면서는 살던 집도 아마 뺏기게 되지 않았겠어요?

    ◆ 허의신> 아니에요. 그때도 우리 집 있는 데는 공단조성에 안 들어갔어요.

    ◇ 정관용> 그건 또 빠졌었군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러니까 아무런 보상 없이 그냥 농지를 빼앗은 거예요?

    ◆ 허의신> 보상은 무슨 보상이에요. 그냥 농사짓던 걸 그냥 아무 것도 없고 그냥 농사짓던 땅이니까 그냥 집 지은 거죠 뭐.

    ◇ 정관용> 집 지어버렸고. 그냥 살게는 해 줬고.

    ◆ 허의신> 네.

    ◇ 정관용> 농사를 못 짓고 그러면 아버님은 어떻게 사셨어요?

    ◆ 허의신> 그, 뭐 농사 못 지어도 그냥 그 땅 말고도 또 이쪽에 땅도 있었고 그러니까. 단지 뭐냐 하면 농사가 많이 빼앗기니까 숙여 살았죠, 구차하게.

    ◇ 정관용> 그리고 그 후에 몇 년 후에 이 농민들께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셨다는데. 그때 아버님도 소송제기에 참여했나요?

    ◆ 허의신> 네. 그때는 소송을 했죠.

    ◇ 정관용> 소송에 참여하셨어요, 아버님께서도요?

    ◆ 허의신> 네, 소송 참여했었죠.

    ◇ 정관용> 그래서 처음에는 졌습니다마는, 결국 대법원 가서 ‘농민들의 땅 맞다. 돌려줘라.’ 이런 판결을 받았다면서요?

    ◆ 허의신> 네. 승소를 했었어요. 승소를 해서 대토를 준다고 그러다가 그런데 여기 철거민들 주택 살고 있었잖아요. 그 사람들이 데모하는 바람에 막 잡아들인 거죠.

    ◇ 정관용> 철거민들이 우리 집을 다시 허물고 농지로 돌려줄 수 없다, 이렇게 했다 이 말인가요?

    ◆ 허의신> 아니, 그러니까 농지니까. 농지인데. 농지니까 여기 철거민들을 여기다가 입주시켰잖아요. 그 사람들이 데모하고 그러니까. 소송했던 사람들 전부 다 잡아들인 거죠.

    ◇ 정관용> 소송한 사람을 무슨 죄목으로 잡아들였어요?

    ◆ 허의신> 그러니까 서류위조라고 그러는 것 같아요.

    ◇ 정관용> 서류위조?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래서 아버님도 체포돼 갔어요?

    ◆ 허의신> 체포된 건 아니고. 그때 와서 포기서를 쓴 사람도 있고, 안 쓴 사람도 있는데. 안 쓴 사람은 형을 받고, 포기서 쓴 사람은 그걸로 끝나고 그랬죠.

    ◇ 정관용> 아, 포기서를 써라?

    ◆ 허의신> 네.

    ◇ 정관용> 포기서를 안 쓰면 너 구속시키겠다, 이렇게 했단 말이군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아버님은 포기서를 쓰셨나봐요?

    ◆ 허의신> 포기서를 쓴 게 아니고 이제 그때 당시에 어떻게 했느냐 하면, 제가 그때 시골 아닙니까? 여기가요. 시골인데. 그냥 강아지가, 개가 막 짖어요.,밤에. 그러면 아침에 깨고 나면 누구 잡아갔다, 누구 잡아갔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월남에 취업하러 갔었어요, 그때 당시에. 취업하러 갔었는데. 아버지가 현재 우리나라에 없었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허의신> 그런데 나중에 아버지가 없는 걸 알고 저를 부른 거예요. 저를 부르면서 그때 당시에 백원만이라는 분이 있어요. 백원만이라는 분을 검찰청 입구에 딱 포승을 해서 의자에 앉혀놓고. 봐라, 저렇게 포기서를 안 쓰면 구속한다는, 은연중에 말은 안 했어도, 굳이 그걸 조사해 놓고 포기서 쓰라고 하라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래서 포기서를 쓰셨군요.

    ◆ 허의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써야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분들, 그 소송에 포기하겠다라고 하는 포기서를 쓰지 않으면 다 구속 시켜서. 그때 무슨 죄로 구속을 시켰다고요, 아까? 서류위조?

    ◆ 허의신> 그러니까 포기서를 안 쓴 사람들 구속시키고 처벌받았죠.

    ◇ 정관용> 실제로 처벌을 받았단 말이죠?

    ◆ 허의신> 네.

    ◇ 정관용> 서류위조 혐의로, 이른바?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런데 정말 위조된 서류는 없는 거예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위조된 서류는 하나도 없는 겁니까, 실제로?

    ◆ 허의신> 위조된 서류가. 대법원까지 갔는데 서류위조한 걸 가지고 재판하면 되겠습니까?

    ◇ 정관용> 네. 그래서 아예 그러면 그 땅은 포기하고 계셨겠네요.

    ◆ 허의신> 포기를 해야죠, 뭐.

    ◇ 정관용> 그러다 언제부터 이거 다시 되찾아야 되겠다. 언제부터 그렇게 다시 움직이신 거예요?

    ◆ 허의신> 그게 노무현 대통령 계실 적에 과거진상위원회에서 재심해라. 그래서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 거죠.

    ◇ 정관용> 노무현 정부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래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재심을 해라 했고, 재심에 참여하신 분들이 모두 291명이나 되네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래서 지금 재판결과가 뭐 한 분당 어느 정도씩 돈을 받게 되는 겁니까, 이게? 한 300분 가량이 거의 1000억이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한 분당 한 3억 가량 되나요?

    ◆ 허의신> 평당 한 300만원 되는 것 같아요.

    ◇ 정관용> 평당 300만원?

    ◆ 허의신> 네.

    ◇ 정관용> 우리 허의신 씨는 그러면 농지 몇 평 정도를 갖고 계셨던 거예요?

    ◆ 허의신> 이번에 전체적으로 한 게 아니고 여러 곳으로 나눠서 재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한 200평 정도가 해당이 돼요.

    ◇ 정관용> 200평.

    ◆ 허의신> 그래서 한 6억 정도 되는 겁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47년이나 걸렸다.

    ◆ 허의신> 네?

    ◇ 정관용> 47년이나 걸렸는데, 이런 승소판결을 딱 받고 느낌이 어떠셨어요?

    ◆ 허의신> 느낌이요? 사실은 법원에서 이렇게 애써주시고 그래서, 늘 감사할 뿐인데. 지금 시세대로 하게 되면 300평짜리가 어디 있습니까? 평당 300만 원짜리가 서울에 어디 있습니까?

    ◇ 정관용> 그렇죠.

    ◆ 허의신> 적은 게 좀 불만이네요.

    ◇ 정관용> 그 평당 300만원이라고 하는 거는 그럼 뭘 근거로 해서 그렇게 책정이 됐을까요?

    ◆ 허의신> 그게요. 여기 들어보니까 98년, 농지개혁법 이승만 대통령 때 농지개혁법에서 이루어진 거거든요.

    ◇ 정관용> 이승만 대통령 때 농지개혁법으로 그 땅을 불하받으셨던 거죠?

    ◆ 허의신> 네. 그게 98년도에 그 법령이 폐기가 됐대요. 그걸 기준으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 당시의 시가를 기준으로 했다?

    ◆ 허의신> 네.

    ◇ 정관용> 98년 정도의 시가를 기준으로 했다, 이 말인가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함께 소송하셨던 분들은 반응들이 어떻습니까?

    ◆ 허의신> 반응들이 뭐 저랑 비슷하죠, 뭐. 그렇잖아요.

    ◇ 정관용> 그리고 이웃에 사셨던 분들 가운데, 그 당시에 포기서를 쓰지 않고 감옥에 끌려가서 형을 살고 나오신 분들도 있잖아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 분들도 이제 형 사는 것 자체가 무효다라는 재심을 지금 해서 재심판결에서 무죄를 받으셨다면서요?

    ◆ 허의신> 네. 그거 다 무죄 받고요. 그래서 그거 그 형을 받게 되면 민사재판에 무조건 지게 된다네요. 그래서 형을 무죄를 받고. 그리고 나서 민사로 들어가서 재판이 된 거죠.

    ◇ 정관용> 형사 재판에서 무죄가 먼저 나왔고.

    ◆ 허의신> 네.

    ◇ 정관용> 그분들은 그러면 무고하게 감옥살이한 것에 대한 배상도 받게 됩니까?

    ◆ 허의신> 그건 보상은 없었어요.

    ◇ 정관용> 아니, 앞으로 그 보상신청을 하게 되면 그것도 받게 될 텐데요?

    ◆ 허의신> 글쎄요. 그건 아직까지 잘 모르겠네요.

    ◇ 정관용> 그래요. 이 재판 이후에 언제 어떤 식으로 이런 배상을 한다더라, 그런 얘기를 혹시 들어보신 바 있나요?{RELNEWS:right}

    ◆ 허의신> 그건 없어요.

    ◇ 정관용> 아직 그런 얘기는 못 들으셨어요?

    ◆ 허의신> 네. 형 사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야 그렇잖아요. 그때 당시에 대법원까지 간 것도 아니고 지방법원에서 형을 딱 살면 그걸로 끝이지. 뭐 상소하고 그런 걸 압니까, 시골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걸로 끝난 거죠.

    ◇ 정관용> 아이고, 알겠습니다. 아무튼 늦게나마 다시 이런...

    ◆ 허의신> 그런데 여태까지 10여 년 동안 여기 한무섭과 한동문, 두 분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는데 너무 애쓴 게 많아요. 그것도 좀 얘기해 줬으면 좋겠네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구로동 명예회복추진위원회 대표로 뛰신 한무섭 대표 이런 분들의 공이 크다, 이 말씀이시죠. 고맙습니다. 축하드리고요.

    ◆ 허의신> 네.

    ◇ 정관용> 47년 만에 사필귀정이 됐네요. 허의신 씨의 말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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